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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 진미(珍味), 갈치(葛峙, 葛治) 도어(刀魚: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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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 진미(珍味), 갈치(葛峙, 葛治) 도어(刀魚

갈치란 이름은 형태가 칼과 같이 생긴 데에서 유래된 것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23/05/01 [09:07]

은빛의 진미(珍味), 갈치(葛峙, 葛治) 도어(刀魚

갈치란 이름은 형태가 칼과 같이 생긴 데에서 유래된 것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입력 : 2023/05/01 [09:07]

올해는 거제도 남쪽 안경섬과 홍도 등을 중심으로 연근해에 대규모 갈치 어장이 형성되면서 ‘20년만의 풍어’로 일컬어질 정도로 유례없는 갈치 대풍을 맞았다. 바다 속의 갈치 먹이사슬인 멸치 등의 먹이자원이 풍부해 지면서 갈치어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그래서 작년보다 값이 반이나 내렸다. 하지만 수십 년 전까지는 값도 싼 ‘서민생선’이었다. ‘값싸고 맛 좋은 갈치자반’ ‘값싼 갈치자반 맛만 좋다’는 이야기가 퍼진 이유였다. 1820년 서유구가 쓴 어류전문서 <난호어목지>는 “염장해서 말린 갈치를 서울로 보내는데 맛도 좋고 값도 싸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갈치가 서민생선은 절대 아니다. 어획량의 감소에다 맛이 더할 수 없이 때문이다.

 

갈치란 이름은 형태가 칼과 같이 생긴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정문기(鄭文基)는 신라시대에는 ‘칼’을 ‘갈’이라고 불렀으므로, 옛 신라 지역에서는 지금도 갈치라 부르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칼치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역어유해』에서는 군대어(裙帶魚)라 하고 한글로 ‘갈티’라고 하였다. 『자산어보』에도 군대어라 하고 속명을 갈치어(葛峙魚)라고 하였다. 또는 칼치·도어(刀魚)라고도 한다. 『난호어목지』와 『임원십육지』에서는 가늘고 길어 칡의 넌출과 같으므로 갈치(葛侈)라 한다고 하였으나, 갈(葛)자는 차자(借字)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서 잡히며, 특히 서남해에서 많이 잡힌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청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 지방에서 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갈치는 옛날부터 많이 잡히는 다획성 대중어로 우리 민족이 즐겨 먹어온 바닷물고기이다. 『난호어목지』에서도 갈치는 염건하여 서울로 보내는데, 맛이 좋을 뿐 아니라 값이 싸다고 하였다. 생선을 그대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먹기도 하였으나, 주로 구이나 조림으로 먹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국을 끓이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갈치 젓갈을 가장 맛있게 먹는다.

갈치는 잠잘 때조차 머리를 위쪽에 두는 등 평생을 서서 지낸다. 그래서 여러 명이 꼿꼿이 몸을 편 채로 잔다는 ‘갈치잠(칼잠)’이란 말이 나왔다. 살 속에 가시도 많다. 그래서 성질이 급급하고 예민하여 잡히자마자 제 성질에 못 이겨 죽어버린다. 게다가 굶주리면 갈고리 모양의 이빨로 제 꼬리나, 심지어는 다른 갈치를 뜯어먹는 야만성을 드러낸다. 그러니 동족상잔의 비극을 ‘갈치가 꼬리를 문다’고 일컫는다

 

  다음 시편은 조선말기 학자이자 중추관서기관을 지냈던 김택영(金澤榮)은 퇴직해서 향리에 머물다가, 어젯밤 지역 늙은이를 만나 식사를 함께 했는데, 인색한 이 늙은이가 갈치(刀魚)와 은어(銀魚), 방합조개(蚌)를 내어놓아 맛나게 먹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속이 안 좋았다. 이에 부끄러움이 밀려와 급히 칠언절구 3수(七絶三首)를 지었다. 그 중에 갈치(刀魚)편이다.

1) <갈치(刀魚)> 김택영(金澤榮 1850∼1927)

中筵生戒嚴 연석에서 심히 경계하는 싱싱한

此物滿身針 이 물건은 몸에 가시가 가득하다

價聳味逾好 맛이 너무 좋아 값이 비싸서

一斤過一金 한 근에 한 냥이 넘는다하네

김택영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향리에 머물다가 1908년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에는 주로 우국적인 시작품을 많이 썼다. 특히, 망국의 한을 작품 속에 담아내어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표출 하였다.

  다음은 ‘갈치그물을 조아서 닻을 푸는 소리’인데, 일제강점기 시절에 갈치조업을 나갔던, 거제군 동부면 진경직 할아버지가 기억을 되살려 1979년에 부른 어업노동요이다. 갈치 그물을 당기면서 어부들을 지휘하며, 반복구로 박자를 맞추고 일의 능률을 올리고 사설을 통해 주위를 환기시킨다. 몰이꾼 선장이 부르는 사설은 긴박한 어로 현장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행동에 주의하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이 순간이 가장 긴박하게 움직이는데, 순간의 실수로 잡은 갈치를 다 놓쳐 버리는 수도 있고, 일꾼이 다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말 ‘세노야(せえの 영차)‘와 사노이, 그리고 우리말 ’에헤야‘ 등이 섞인 반복구는 작업을 차분히 진행하기 위해, 일의 박자를 맞추기 위해, 일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함께 부른다. 일본풍의 어휘는 안강망(鮟鱇網)어선이 일본에서 들어와 보급되면서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물 작업에 소리가 없으면 작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최소한 작업의 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작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계속되는 반복구를 되풀이 하다가 가끔씩 선장의 사설이 들어가는데 이 사설은 단조로운 내용뿐이고, 그 내용도 작업 지시에 그치고 있다.

2) ‘갈치그물을 조아서 닻을 푸는 소리’ / 거제시 동부면 진경직

[모두 함께 계속] “어헤야 사노이 자가야 사노이 에헤라 사노이 이~히 사노이 이~히까 사노이”

[몰이꾼 선장] “잘 챙기라 갈치가 마이 들었다 단디해라 이사람 정신차려라 쉬이 조아라“

[모두 함께 계속] “조아라 조아라 요~까 이~까 세노야 세노야 단디해라 세노야 세에~노야 세에~노야”

[몰이꾼 선장] “휘~이 조아라 단디해라 이사람아 엔가이 조아라 단디해라 이사람아 보고해라“

  거제도 해안에는 해마다 희귀종인 심해어 ‘투라치’가 잡히고 있다. 지난해 1월과 7월에 남부면 다포방파제와 일운면 구조라해수욕장에서 1.6~1.7m 가량의 투라치가 발견된데 이어, 올해 8월에 잡힌 둔덕면 어구마을에서도 길이 1.5m 나비 20~25cm 크기의 투라치가 발견되는 등 최근 들어 남해안에서 잇따라 눈에 띄고 있다. 희귀어종인 투라치는 주로 수심 200여 m의 심해에서 살며, 큰 투라치의 경우 길이가 3m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 갈치와 비슷하게 생겨 어민들 사이에서 ‘대왕갈치’로 불리지만 자세히 보면 입의 생김새 등에서 차이가 난다.

갈치의 명칭으로는 동동갈치, 물동갈치, 꽁치아제비, 황알치, 붕동갈치, 검은갈치, 남방홍갈치, 먹점홍갈치, 점줄홍갈치, 갈치의 새끼는 풀치, 청자갈치, 한천갈치, 미두갈치, 칠성갈치, 흑미갈치, 문자갈치 등이 있다. 투라치와 비슷한 ‘산갈치’는 머리 윗 부분에 닭벼슬 형태의 촉수가 자라 있으며, 머리와 배가 만나는 부분에도 길게 뻗어나간 촉수가 달려 있고 몸길이가 5.5m에 이른다. 한국의 여수와 다도해 연안을 비롯하여 일본 남부지역, 캘리포니아 연안, 인도, 아프리카 연안 등지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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