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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도 대표적인 지명 유래와 어원: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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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도 대표적인 지명 유래와 어원

소비포진(所非浦鎭)은 1750년 권관(權管)이 지휘하는 진영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23/03/17 [08:41]

경남 거제도 대표적인 지명 유래와 어원

소비포진(所非浦鎭)은 1750년 권관(權管)이 지휘하는 진영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입력 : 2023/03/17 [08:41]

▲ 고영화 향토학자    

 

1) 영등포(永登浦)의 명칭 유래는 바로 '바람을 타고 순행하는 포구'로 그 어원을 유추할 수 있다. '永登'은 '진등', 또는 '긴 등성이'라고 한자어를 훈독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육지 속의 지명에 사용할 때 붙이는 뜻이며, 바닷가 포구(항구)는 옛 부터 전해오는 영등할미에 대한 "항해 길의 안전"과 "풍요로운 바다", "바람타고 쏜살같이 달릴 수 있는 돛배" 등을 소원해, 한자의 음을 차용하여 쓴 명칭이다. 수군진영의 변천에 따라 지역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등포 수군진영은 예전에, 장목면 영등포를 구영등(舊永登), 둔덕면 학산리 영등포는 신영등(新永登)이었다. 참고로, 조라(助羅) 수군진영도 일운면은 구조라(舊助羅), 옥포 옆은 신조라(新助羅)였다.

(2) 견내량(見乃梁) “다 보이는 여울”. 지명유래는 1554년 정황(丁?)의 한시에서 그 어원을 유추할 수 있다. [思君見乃見乃見乃梁地名瀧 그대 그리워 "다 보이네" "다 보이네" "견내량" 여울의 지명이 됐다네.] 마주보는 견내량의 빠른 물살에 건너지 못해, 애가 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며, 그 어원은 2가지로 유추된다.

① 빠른 물살 땜에 건너지 못해 "다 보인단다" " 다 보인단다" "기다려" 라고 외치는 거제민의 일상적인 생활 장면과 ② 오양역에 도착한, 거제도로 유배 온 분들의 심정을 나타낸 듯하다. 보고픈 임과 가고픈 곳을 가지 못하는 애통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3) 미륵사상(彌勒思想)에 의한 곳으로는 거제도에는 장목면 대금리 방골 부처바위, 거제면 내간리 미륵소골 돌미륵, 둔덕면 산방리 구절암(貴絶庵)의 미륵과, 통영용화사(統營龍華寺)의 포교소인 산방산 보현사(普賢寺), 거제면 오수리 미륵불당(彌勒佛堂), 거제 해금강의 미륵바위, 미륵이 도운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일운면 지세포리 ‘미조라(彌助羅)’ 등이 있다.

거제통영 남해안에는 신라시대부터 미륵사상이 민중을 통해 전파되어 미륵과 관계된 지명이 아직도 남아 전하고 있다. 통영시의 미륵산은 미륵불이 사바세계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삼회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불교 설화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를 알려주듯 산기슭엔 용화사, 미래사, 관음암, 도솔암 등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4) 오아포(烏兒浦)의 오아(烏兒)는 오아(烏兒)와 혼용하여 기록하기도하였다. 옛 사료를 살펴보면, ① 백제 오차현이 삼국통일 이후 신라 경덕왕 때 오아(烏兒)로 개칭했고(전라도 장흥군), 오차(烏次) 백제 구지명이 오아(烏兒)로 경덕왕 때 지명이 개정되었다. [烏][次]縣이 [烏][兒]縣으로 '차'가 '아'로 변한 예이다. 오아(烏兒)를 한자어로 훈독할 경우에는 '새끼 새'로 번역되며, ②고대 우리 고유말 "오아"는 온전, 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오아포(烏兒浦)는 "완전무결한 항구"로 해석하면 된다. ③ 덧붙여 ≪孟子≫편에 따르면, "오획(烏獲)같은 아이" 즉, '힘센 무인이 지키는 곳'으로 해석해도 된다. 임진왜란 전에 수군절도 진영이 있었던 곳이다.

(5) 옛 거제관문이었던, 사등면 '오양'의 지명어원은 우리나라 고어 '오랑'=뱃대끈, 즉 '안장이나 길마를 소나 말 위에 지울 적에 배에 조르는 줄'을 말한다. 오랑>오량>오양. 역참의 마지막 오양역에서 '역말을 교체하고 다시 안장과 길마를 장착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는 남부지방 곳곳에서 옛 지명에 사용되었다. 당시 고유어 지명을, 한자를 빌려 차용한 것이 지금까지 쓰인 예이다. 현재 거제도에만 한자어 ‘烏壤’을 차용해 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6) 일운면(一運面)의 지명은 조선중기 고현면(古縣面)이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일운면(一運面)' '이운면(二運面)'으로 분화된다. 일운면은 이후 다시 신현면과 일운면으로 분리되었다. '일운' '이운' '삼운'을 지명으로 사용한 곳은 대부분 그 지역이 강가나 해안에 위치했고, 또한 한척의 조운선(漕運船)에 싣는, 조세 납부 크기의 양을 지역에 따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조세를 거두는 지방관의 편의에 따라 한척 배에 싣는 조세지역을 '일운면' '이운면' '삼운면'이라 칭하고 지역이 넓으면 '동서남북(창원지역), 도하, 광내, 상하(고성 통영지역)' 등으로 표기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각종 고지도에서 보면 연안 해상 부근, 진영이나 조창(漕倉), 해창(海倉)등이 위치한 지역에 정박한 조운선의 수에 따라 그 지명이 유래하기도 했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一運面)"은 전국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일한 지역명칭이다. 조선말기 옥포와 지세포에서 통영으로 보내기위한 조운선이 정박했다는 문헌기록에 의해, 일운면과 이운면으로 나눈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7) 가배량(加背梁) 어원은 가배(加背) +량(梁)으로 나뉜다. 가배(加背)의 언어학적 어원을 살펴보면, 고어(古語)중에 가배(柯背)(가:ㅸㅣ)는 사람이 입는 속옷, 속곳, 고의라는 뜻이 있다. 그 한자어에 관계없이 우리 고유어 "가배"는 “한가위”와 “가볍다“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지형이나 관념어 중에 깊이가 있고 ‘은밀한 곳’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리고 해안 지명에는 물이 돌아가는 움푹진 땅 "구미" 동굴처럼 약간 들어간 곳 "강정"이 해안가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 의미 중에 "가배"(가 ㅸㅣ)는 오래되고 잊혀진 지명인데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깊숙하고 푹 들어간 지역’을 나타낸다. 또한 해안방위 측면과 각종 어선의 정박 대피소로는 최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량(梁)의 한자어 예로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목이 있어 물살이 항상 흐르는 그런 해안가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가배량’은 해양 안쪽으로 깊숙하고 푹 들어간 지역이면서 조석으로 인하여 항상 바닷물이 흐르는 그런 곳을 나타낸 고어가 지금까지 현 지명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제도 가배는 그 옛날 고성군의 ‘가배 수군진영’이 옮겨와 그 이름이 지금까지 쓰이게 된 것이다. '경북 구미시'는 우리나라 1000여군데 물이 돌아흐르는 지명의 대표적인 명칭이다.

 

( 가라산(加羅山) 역사유래를 살펴보면, 기원 후 200~600년 사이의 일본과 우리나라 해상지역의 지명에 너무나 많은 "가라(加羅)"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사이에 거제 가라산(加羅山) 지명이 역사서에 등장하기에 "가야"가 "가라"로 변음 되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다. '가라산'의 지명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중원고구려비문]의 내용에서 보면 "고구려군이 일본이 주장하는 任那加羅(임나가라)까지 쫓아가 城(성)을 拔本(발본) 索出(색출)하여 즉시 항복시키었다. 또한 任那(임나)를 또 나누어 三加羅(삼가라)가 되었다." 소위 加羅(가라)는 [가야국의] 수로왕(首露王)이 다스린 邑(읍)을 칭한다. 이 가라를 3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투쟁하였기에 오랜 세월에도 서로 원한을 풀지 못했다. 이 자료에서 보듯이 고대에는 가라(加羅)라는 지명을 여러 국가에서 사용한 흔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거제도 가라산(加羅山)의 지명이 확정되어 진 것으로 보아 분명히 원 삼국시대부터 역사적 사실에 의해 이름이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가라(加羅)’라는 말(馬)을 키운 목장지이기도 하다.

*고대어 라(羅)는 하라(河羅)조라(助羅)신라(新羅)가라(加羅)을라(乙羅)망라(網羅) 등등. '羅'는 고대 한자어로 '땅, 지역'을 의미한다. 또한 옛 선조들은 유독 어떤 산 위에 서서, "비단처럼 별들이 수많이 모여, 수를 놓은 듯"이 보인다고 하여 그 이름을 "가라뫼"라 이름을 붙였고 한자어 표기로는 가라산(加羅山)이라 칭하기도 했다.

(9) 지세포(知世浦)와 같은 땅이름을 전국에서 찾아보면,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 항구가 먼저 있고 제주도 용흥리 용수리가 몇 십 년 전까지 지명이 지세포(지서개,지섯개)라고 불리었으며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에도 지세봉이라는 산이 있다. ‘지세’ 지명은 그 지역에 가마터, 기와 그릇 등을 굽는 도요지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와"의 고유어가 "지서" "지세(지새)" "재세"라고 불리어졌다. 한자어는 음을 차용한 것이다.

[디세(디새) 15세기> 지세(지새) >지와 >기와 18세기].

가마터, 도요지와 관련된 섬은 지서섬 지섯섬 지석섬 지사섬으로, 한자어 차용으로 지석도 지사도(지심도) 등으로 불린다. 도요지 가마터와 관련 있는 산을 지석산(강원도 정선군) 지석봉(인제) 지세봉(강원도 고성군)이다. 도요지 가마터가 있는 포구를 지사개 지섯개 지석개 지세개 로 통용되어 있다. 또한 제주도 용수리 지세포의 순 우리말이 지서개(지섯개) 라고 한다. 이는 우리말 "개"가 포구를 뜻하는 말이라 지서개가 지세개로 되었다가 한자어 표기로 "지세포"로 바뀌어 졌음을 알 수 있다. [ 음독 차용 + 훈독(뜻) 차용 = 지세+浦, 고려말~조선초 ]. 어원의 유래와 관계없이, 한자어 뜻으로만 풀이 한, “知世浦”(세상이 알아주는, 세상에 알려질 항구)의 한자어 뜻은 참 멋있다.

(10) 소비포진(所非浦鎭)은 1750년 권관(權管)이 지휘하는 진영으로, 現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로 옮겨와 가배량진영 곁에 있다가, 1756년 영조32년 당시 통제사(統制使) 이경철(李景喆)의 장청(狀請)에 의해 영등진에 흡수되고 영등진에는 만호(萬戶)를 두게 되었다. 조선시대 소비포(所非浦)진영은 해안방어의 상황에 따라 이곳저곳 여러 번 이동하였고, 결국에는 다른 진영보다 일찍 흡수되어 사라진 대표적인 수군진영이었다.

소비포(所非浦)의 한자어 지명 뜻은, 온갖 모양이 빈자리[非]에 들어가서 빈 자체[非: 能空], 비운 곳, 비운 바, [所非: 所空]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거제도의 소비포는 단지 수군진영(水軍鎭營)이 옮겨와서 진영의 이름이 그대로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수군진영 명칭의 한자어 의미와 그 역사가 맥을 같이 한 수군진영이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적조, 적도(赤鳥, 赤島)"를 소비포(所比浦)로 개명한 기록이 있다.(赤鳥縣 本百濟 所比浦縣 景德王改名, 今德津縣). 붉은 섬(赤島, 赤鳥 붉은 항구)가 '소비포'로 바뀌면서 소비포의 고대어 '사비 가리' >'사비 가이' >'소비 개' >결국 '소비포(所比浦)'로 개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비포의 원 지명 적조(赤鳥)의 뜻을 헤아려보니, “해질녘 풍경이 아름다운 항구”였으리라 짐작된다.

?  참고로 한자어 차자표기 예를 소개한다. 所非浦 소비포 → 所乙非浦 솔비포. 尹石乙島 →윤돌도. 沙乙木花 → 살나모곶(살나무꽃) 몰나모곶. 汝注乙豆 → 너줄콩. 加乙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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