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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화(高永和) 칼럼]이색(牧隱)의 ‘들꽃(野花)‘,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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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화(高永和) 칼럼]이색(牧隱)의 ‘들꽃(野花)‘,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21/08/06 [07:13]

[고영화(高永和) 칼럼]이색(牧隱)의 ‘들꽃(野花)‘,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입력 : 2021/08/06 [07:13]

<이색(牧隱)의 ‘들꽃(野花)‘,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고영화(高永和)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길가에 마음대로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도 거기까지 굴러온 사연과 이유가 있는 법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힘겹게 뚫고 올라온 이름 모를 풀도 마찬가지고, 높아진 가을 하늘을 여유롭게 흐르는 구름마저도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유가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건 아니건, 생물이건 아니건, 생명이 있던 없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는 의미가 있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하늘은 봉급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키우지 않는다.(天不生無綠之人 地不長無名之草)’고 하였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강설한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에 어찌 허튼 것이 있으랴. 요컨대 모든 것에는 존재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누구나 제 역할과 몫(먹고 살길)을 타고 난다. 그래서인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쓸모없고 의미 없는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전제를 통해 이 우주가 이처럼 광활한 까닭은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인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들 천지이다. 내 텃밭의 부산스러운 잡초도 갑작스런 호우에도 밭의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막아주고 건조한 날 먼지나 바람에 의한 피해를 막아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물론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1945~ ) 시인의 그 유명한 ‘들꽃(野花)’이다. 보잘것없이 보이는 사물도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과 가치가 달라진다. 작은 미물 하나하나에다 집중하다보면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꽃이 예쁘고 화려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름 없는 들꽃의 무리도 더욱 매혹적으로 우리 가슴에 다가와 설레게 만든다. 시인은 궁궐(상림원)에 핀 꽃이나, 산야에 핀 야생화나 모두 아름답듯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마음껏 도전하고 발휘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외치는 것 같다.

<들꽃(野花)> 야생화.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

野花隨處不知名 어딜 가나 핀 들꽃, 이름은 모르지만

堯?樵童眼界明 초동과 목수의 시야를 환히 밝히지

豈必上林爲富貴 꼭 상림원 꽃들만 부귀하겠나?

天公用意自均平 하늘의 마음 씀씀이 공평하구나

  강아지 똥에서도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하지 않더냐. 우리는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고, 사람마다 제 몫을 가지고 살고 있다.

위 들꽃(野花) 7언절구 하나의 시(詩)로써 이색이 남긴 6000여 수의 시를 다 설명할 수는 없으나, 이색의 성품과 사물을 보는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이색은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물에 저마다 각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나 핀 들꽃, 이름은 모르지만 초동과 목수의 시야를 밝게 해준다.’ 흔해 빠진 들꽃이지만 나무하는 어린아이 땔나무 하러 온 늙은이한테는 시야를 밝게 해주는 사물이다. 이색은 들꽃의 존재 이유를 여기에서 찾은 것이다. 상림원은 옛 궁궐에 딸린 정원의 이름인데 옥같이 고운 풀에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이 가득 피웠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상림원에 핀 꽃만 부귀하겠냐고 되묻고 있다. 부귀는 사람이 만든 기준에 따라 형성된 가치이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가치 기준도 달라진다. 들꽃이라고 해서 빈천해야한다는 기준이 어디 있더냐. ‘하늘의 마음 씀씀이 공평하다.’는 말은 혹시 체제에 순응하고 거기에 맞춰 살라고 하는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겠다. 현실에선 엄연히 부귀와 빈천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데 눈을 감고 체념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당시는 신분이 엄연한 때인지라, 우리는 그렇게 읽고 이해해야 하겠다.

  고려 말의 대학자로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와 조선의 교체기에 살면서 이성계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세력의 반대편에 서서 고려를 부지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고려가 멸망하자 망국대부(亡國大夫)로 자처하며, 불우하게 살다가 죽었다. 이색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名士)와 조선 왕조 창업에 공헌한 사대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이숭인(李崇仁) 등 제자들은 고려 왕조에 충절을 다하였으며, 정도전(鄭道傳)·하륜(河崙)·윤소종(尹紹宗)·권근(權近) 등 제자들은 조선 왕조 창업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색-정몽주·길재의 학문을 계승한 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은 조선 왕조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색은 약 6000여 수의 한시를 남겼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물에도, 그들만의 가치를 각기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위 시편에서 알 수 있듯 들꽃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어찌 궁궐의 정원인 상림원에 핀 꽃들만 부귀하랴. 들꽃이라 해서 빈천해야한다는 법이 어디 있으랴. 하늘의 마음 씀씀이는 고루 공평할 뿐인데.

● 참고 : ‘야화(野花)’는 들꽃과 같은 용어이다. 근데 들 이외의 지역 즉, 산이나 바닷가 등에서 자라는 식물을 모두 아울러 부를 수 있는 말은 ‘야생화’밖에 없다. 그러므로 산이나 들에 자생하며 피는 꽃인 야생화 정의에는 반드시 ‘저절로’ ‘자생’ 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라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인공적인 노력이 가해지지 않은’ 뜻이다.

사진=고영화 페이스북
사진=고영화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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