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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과 마주한 과거에로의 집착..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야!: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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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과 마주한 과거에로의 집착..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창조적인 작업을 방해하고 변화를 막는 것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적이 좋았던 과거에 대한 집착이다.

고영화(高永和) | 기사입력 2021/07/08 [10:27]

타인의 시선과 마주한 과거에로의 집착..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창조적인 작업을 방해하고 변화를 막는 것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적이 좋았던 과거에 대한 집착이다.

고영화(高永和) | 입력 : 2021/07/08 [10:27]

<타인의 시선과 마주한 과거에로의 집착> 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야! 고영화(高永和).

고영화 칼럼리스트
고영화 칼럼리스트

 

인생을 살아가면서 창조적인 작업을 방해하고 변화를 막는 것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적이 좋았던 과거에 대한 집착이다. 지나간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으나, 과거의 달콤한 기억이나 성공에 집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현실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거를 먹고 사는 노인이 아니라면, 현재의 삶이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더구나 인간의 뇌는 망각과 함께 이미 지나간 기억을 아름답게 미화(美化)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의 집착보다 미래의 희망으로 살아간다. 거제학자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선생도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길, “맺고 풀지 말라. 속박이나 집착에서 벗어나라(莫結脫也)”고 강조했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한다면, 당신은 결코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없다.

○ 우리는 주위 지인들에게서 흔히 ‘옛날에....왕년에....’라는 첫마디 말을 듣곤 한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으니 과거에 집착한다. 이는 모두 타인의 시선에 매몰된 자아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제는 벤츠를 타고 다녔는데 지금은 티코를 타고 다니니 과거의 여유를 떠올리며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쓴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 잘 살던 집안의 영화(榮華)나, 또는 젊은 시절 좋은 대학을 다니었고 돈도 권력도 잡았던 우쭐대던 과거가 생각나겠지만 그것은 추억일 뿐이다. 과거를 품고 살면 삶이 힘들고 괴롭다. 대신 죽을 때까지 미래를 꿈꾸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미래라는 목표에는 노력과 열정이 솟아나니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노인들 중에는 내가 학교 교장 출신인데, 내가 시청 과장 국장 출신인데, 내가 대기업 부장 임원 출신인데 등등, 과거에 집착하면서 사람들이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지  한탄만 한다. “야~ 임마! 내가 누군데....” 고래고래 소리치는 자, “나는 박사 학위를 보유한 사람이야!” “내가 시장을 키운 사람이야!“ “우리가 죽고 나면 너희들은 아무것도 못해!” “내 죽으면 공적비라도 세워 줘야 해!” 오직 자기를 알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1차원적이며, 미성숙한 자들이다. 풀도 시들고 꽃도 언젠가 떨어진다. 인간의 부귀영화도 때가 되면 저문다. 우리 인간이 모두 멸종해도 지구는, 태양계는, 우주는 변함없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주의 작은 미물로 태어나 언젠가 우주의 입자로 사라지는 자연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스스로 성찰하지 못한 천박한 이들의 아우성 속에, 인간의 경박하고 찌질한 모습들을 본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동안 가족과 사회, 국가를 위해 끊임없이 창의적인 일과 더불어, 봉사하는 열정으로 살아야 한다. 더하여 “남을 평가하는 사람보다 평가 당하는 이가 역사에 남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타인의 시선과 혹평에 과감히 마주하라! 외면하면 또 다른 시선과 부딪친다.’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주위 지인들이 참 많다. 자신의 능력보다 비싼 외제차를 구입하곤, 허세를 부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자녀 혼수품을 분에 넘치게 구매하면서 나에게 돈을 빌려가기도 했다. 또한 내 친구 중에는 서울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이 있다.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 시절, 좋은 직장에 다니었고 그 후 회사의 어려움으로 40대 중반에 명퇴하고부터 동기회에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5년쯤 후에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해서, 수소문하여 전화를 했더니, “요즘 힘들게 살다보니 부끄러워서 나가기가 좀 그렇타“한다. 내가 ”뭐가 부끄러운데... 아무도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 없다. 단지 옛 친구들끼리 모여 술 한 잔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전화 후 지금까지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다. 그 친구는 타인의 시선에 줄곧 그의 인생이 지배당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죽을 때까지 행복의 문턱을 넘지는 못할 것 같다. ‘왕년에 내가 잘 나갔는데, 그래도 내가 명문대 출신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겠어!’ 삶이 비루할지언정 자존심만 지키고자한다.

이에 더하여, 인간이 앓고 있는 모든 정신적인 질환은 과거의 집착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을 살아가니 과거의 마음을 가볍게 놓아주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했을 때, 더 이상 이러한 마음의 병으로부터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뿐인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해,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왕년에 한때 잘 나가지 않은 사람 누가 있으랴!’ 문디야! 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야!

○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현상을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한다. 남들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이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대체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지수가 높기 마련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불행해지며 비교의 대상으로써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러니 완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바쁜 현대인들이 자기 앞가림에도 벅찬데 누가 남을 신경 써가며 보겠는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착하고 모범적인 행위를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체면치레 문화에 익숙한 우리민족은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평판에 너무 의식하며 살아 왔다. 우리를 옮아 매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사회규범과 통념에 벗어난 행동은 자제해야겠지만....

● 과거·현재·미래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 중 어느 지점의 ‘생각’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시간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지점이던지 시간은 마음에 의해, 생각에 의해 시점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코 어느 한 지점의 시간에 머물러 있어야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미 일어난 과거의 생각에 머물지 말고, 미래에 일어날 생각도 하지 말자. 이미 일어났던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번뇌가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G.무어‘는 “우리들은 과거의 집착보다 미래의 희망으로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영광이나 아픔은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의 편린일 뿐이다. 빨리 내려놓고 벗어날수록,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문디야! 당신 삶의 주인은 당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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