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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칼럼] 늙음이 낡음은 아니다.....원로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의 친일·극우 논란에 관하여: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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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칼럼] 늙음이 낡음은 아니다.....원로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의 친일·극우 논란에 관하여

늙음은 낡음이 아니다. 건강한 늙음은 단연코 축하일 일이다.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 기사입력 2021/09/03 [08:16]

[김성우 칼럼] 늙음이 낡음은 아니다.....원로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의 친일·극우 논란에 관하여

늙음은 낡음이 아니다. 건강한 늙음은 단연코 축하일 일이다.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 입력 : 2021/09/03 [08:16]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백 세가 넘은 연륜에 교회 설교를 포함하여 160회 넘게 강연하고 신문에 정기적으로 사설을 쓰며 기자들과 긴 인터뷰를 한다. 이처럼 장수하는 인생은 기적에 가깝거나 축복이라 불릴 만하다. 올해 102세에 접어든 제1세대 원로 철학자로 근래 보수 언론들에서 추앙받으며 한때 수필로 명성을 날린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그런 인물이다.

 

지금은 칠순에서 여든에 접어든 다음 세대의 철학 연구자들은 독일 유학파가 주류였다. 학문적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 교수들은 대선배들의 철학적 역량을 얕본 것이 사실이다. 했다. 물론 주로 사석에서 행해진 신랄한 비판의 요지는 원로들이 전문적인 논문을 쓸 수 없기에 원로들이 수필을 주로 쓴다는 것이었다.

 

헤겔이 말했듯이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공부했던 원로 철학자들은 해방 이후에 성장한 독일 유학파처럼 제대로 공부할 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학자의 한계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로들이 주로 수필을 쓴다고 해서 나쁘게 보지 않았다.

 

한동안 잊혔던 이름이 근래에 행복한 장수로 회자되며 자꾸 언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로 철학자로서 문학과 고전 독서를 강조하니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색적인 수필로 유명한 그 원로 철학자가 최근에 친야 성향의 보수 언론들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사설을 싣고, 급기야 일본 우익 성향의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세간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원로 철학자가 지닌 사회 참여 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회에 대한 걱정, 민족과 국가에 대한 걱정을 그대로 하는 사람은 오래가요.” 이 발언은 친야 성향의 보수 매체인 <월간조선>과 행한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물론 이승만 독재 정권이나 박정희의 유신 체제, 전두환의 군부독재 시절에 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느냐는 힐난의 목소리도 있다. 그 비판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젊어서 안 했다고 해서 나이 들어서 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수필 쓸 때와 사정은 달라진다. 아무리 원로 철학자라도 현재의 치열한 사회적 논쟁에 참여한 만큼 다른 입장에서의 예리한 비판이나 감정적인 대응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형석 교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시인 윤동주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고 김일성 위원장과 조찬을 한 후에 1947년에 월남한, 우리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6·25 때 남으로 내려온 우리 아버지처럼 독실한 개신교 신자자만 제도화된 교회 중심주의를 불신하고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성향을 보인다.

 

실향민의 정서를 모르지는 않는다. 북한식 공산주의나 현재의 중국의 시진핑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철학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비판의 관점이 냉전 시대의 반공 의식과 일본 극우적인 시각과 짝을 이루는 친일 의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난 72일에 친야 성향의 보수지인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김 교수는 다음과 발언했다. 현 문재인 정권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하기보다는 20세기 좌파정권으로 변질시켰다.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식 사회이념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었고, 실천에 옮기려는 세력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유주의의 불평등을 민주화를 통해 개혁하려는 중도적인 성향의 정부를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철학자로서 개념의 사용이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파는 통상 파시즘적인 민족주의나 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한다. 중도는 복지국가나 사회국가를 주장한다. 좌파는 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를 선택한다. 물론 스탈린 체제와 같은 좌파적 전체주의도 있고 우파적 무정부주의도 있으며 민족해방의 민족주의도 있어 개념 규정에 애매모호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좌파와 중도를 착각할 정도는 아니다.

 

중도적인 현 정부를 좌파, 친중 정부로 규정하는 태도는 철학적인 인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프레임에서 기인한 것이다. 더욱이 우려되는 부분은 태극기 부대와 극우 개신교의 친일·반공적인 의식과 맥을 같이 있다는 점이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적인 시선이 드러난 김 교수의 <백 세 일기>가 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김 교수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 그건 확실해요.”라고 연대감을 표시한다. 윤 후보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을 신봉하며 선택의 자유 예시로 120시간 근무’, ‘부정식품의 사례를 들며 망신당한 바 있다.

 

더욱이 김 교수가 공감을 표하는, 또 한 명의 야당 대선 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국가가 국민의 삶은 책임지는 것은 사기라고 말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이들의 자유민주주의는 1%의 부자만을 위한 신자유주의이다. 여기에 민생과 서민은 없다. 이것이 김 교수가 공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얼굴이란 말인가 

 

그 원로 철학자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현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돈을 많이 주잖아요. 나는 사실 선거 때문이라고 봐요. 젊은 사람들한테도 정부가 돈을 베푼다고 하잖아요. 거기에 난 좀 불만이 있어요. 내 아들딸들 사랑하면 공짜로 안 줄 거예요. 그건 자식 버리는 거지요.” 그 원로가 생각하는 나라에 코로나 19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소 상인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현재 문재인 정부는 미국 바이든 정부와 경제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북미 간의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남북평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미 동맹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사실은 미국 하원이 영미권 국가의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미 국무부가 인도·태평양 안보 증진을 위해 핵심 전략자산인 정밀유도무기 관련 장비와 부품에 대한 한국 판매를 승인한 데서 잘 드러난다.

 

최근 펼쳐지고 있는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친중 정부이며 중국에 의지해 북한과 통일을 시도하려 한다는 김 교수의 발언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 언론의 정치 프레임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흑백논리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성찰하며 영미식 대화 사회로 가자는 원로 철학자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흑백논리를 답습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지점에서 원로 철학자의 사회적 인식이 철학적 성찰의 결과가 아니다. 친야 성향의 친일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닌가  보수 신문에 글을 쓰고 보수 언론과 인터뷰하며 보수 매체가 치켜세운다. 이를 근거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보수 언론과 마찬가지로 친일을 좌파의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며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잊자고 주장한다. 친일파로 규정된 인사들, 특별히 동아일보 사주인 인촌 김성수와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데 인촌 김성수의 친일행위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되었다. 김활란의 경우, 후배인 이화여대 학생들로부터 그의 친일 행적 알림 팻말 세우기와 그의 동상 철거를 요구 받고 있다. 안익태의 경우에는 친일을 넘어 친나치의 행각까지 드러나고 있다.

 

친일적 인식의 절정은 일본 우익 성향의 신문과 행한 인터뷰이다. 아시아의 향후 50년은 일본의 선택에 따라 향방이 결정될 것이고 한일은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특히 문제로 보인다. 이러한 발언은 현재의 한일 갈등이 일본 아베 정부의 혐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버젓이 부인하고 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경험 때문인가 

 

근래에도 94세의 노인에게 4년 형을 선고할 정도로 여전히 독일은 나치 전범을 끝까지 찾아내 처벌하고 있다. 프랑스도 시효 없이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나치 부역 행위자를 재판정에 세운다. 가해자의 사과 없이 피해자는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잊자는 것은 가해자의 방어기제에서 비롯된다. 역사는 잊는 게 아니다. 기억하며 넘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아베 정부 이후로 여러 가지 지표에서 보듯이 쇠퇴를 하고 있으며, 경제와 외교 그리고 국방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원로 철학자는 그 낡은 인식으로 인해 부정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과 떠오르는 신흥 대국인 중국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계정세를 제대로 통찰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늙음은 낡음이 아니다. 건강한 늙음은 단연코 축하일 일이다.

 

하지만 인식은 낡을 수 있다. 이를 이용하는 언론이 있어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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