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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 정치 키워드 ‘사화(士禍)’와 ‘붕당(朋黨)’과 현실 정치: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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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 정치 키워드 ‘사화(士禍)’와 ‘붕당(朋黨)’과 현실 정치

윤병화 회장 | 기사입력 2021/07/30 [06:51]

조선시대 대표적 정치 키워드 ‘사화(士禍)’와 ‘붕당(朋黨)’과 현실 정치

윤병화 회장 | 입력 : 2021/07/30 [06:51]
사진=윤병화 회장 페이스북
사진=윤병화 회장 페이스북

우리가 운전을 할때 양옆의 사이드 미러와 차안의 백 미러로 뒷편 후방을 수시로 봐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함입니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당위성도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가 전진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나간 역사의 교훈을 새겨야 하는 이치이겠죠. 올 여름도 고전과 역사서적 몇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사화, 붕당, 그리고 조선의 위기

조선시대 정치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사화(士禍)’와 ‘붕당(朋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세조의 계유 정난 이래 기득권을 가진 기존 관료 집단인 훈구파가 조정을 좌우하고 있었는데, 15세기 말엽 부터 훈구파를 비판하는 사림파가 대두했고, 이후 양자의 충돌로 여러 차례 사화가 발생 하여 사림의 무수한 선비들 옥사 하였습니다.

그 후 선조 대에 이르러 윤원형 같은 외척세력이 쇠퇴하자 사림이 다시 정계로 대거 진출 하였 는데 사림 사이에 정치적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무리끼리 뭉쳐 상대방과 반목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붕당입니다.

선조 대에 김효원과 심의겸의 이조정랑 추천 문제로 생긴 양자의 반목 으로 관료들이 동인과 서인이 갈린 이래, 나아가 재야의 유생들 까지 도 어느 한쪽을 지지해, 결국 거의 모든 사림이 대를 이어 가면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사림의 동서분당 이후 붕당은 계속 핵분열을 일으켜, 동인은 정여립 모반사건을 계기로 강경론을 주장한 남인과 온건론을 주장한 북인으로 갈리었습니다.

또한 서인은 나중에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니, 이와 같이 남인, 북인, 노론,소론을 흔히 사색당파라 하였습니다.

붕당간의 대립은 지극히 배타적 이었을 뿐더러 주로 복상(服喪) 문제, 세자책봉 문제 등 민생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즉, 치열한 붕당간의 대립은 영조, 정조 등의 탕평정책으로 다소 누그러졌지만 19세기에는 세도 정치로 발전해 망국의 길을 초래 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선조 즉위 이래 조선은 이와 같이 동인, 서인으로, 동인이 다시 남인, 북인으로 나뉜 붕당정치에 골몰 하고 있었고, 역사의식과 통찰력이 없는 임금은 붕당을 이용해 왕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을 둘러싼 주변의국제 정세는 급격하게 위험한형국 으로 치닫고 있어, 아차 하다가는 백성은 몰살을 당하고 나라는 통째로 사라질 판이 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형국을 호랑이 앞의 토끼 신세인 조선만 정작 모르고 있었으니, 불쌍한 것은 오로지 백성이었습니다.

계파싸움하다 시간다 보내고, 저들의 권력싸움에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피폐 해진다.저들의 정치는 과연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국민의 대표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본인 권력에 더 악착같은 현실,

우린 늘 감시하고 있어야 한다.

임진왜란,병자호란앞에서 처참해지는건 백성들...

현재도 주류.비주류.중도

게다가 유력 정치인 계파 등으로

나뉘어 정치력을 형성하는게 꼭 나쁜 것 만은 아니지만, 권력을 이용하여 매관매직, 부정부패로 개인의 부를 축적하고 국정을 농단하면 국민들의 지탄과 분열을 가져오고, 국력이 쇄약해지는 것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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