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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칼럼] 인문학의 위기 담론과 철학의 역할

인문학은 한국의 다른 어떤 학문 보다 오랜 역사적 자산과 전통을 가진 학문한국 경제가 오늘 날 이렇게 커진 데에는 크고 작은 이런 신화 창조와 같은 모험과 돌파가 있었기 때문

이종철 교수 | 기사입력 2021/07/12 [19:23]

[이종철 칼럼] 인문학의 위기 담론과 철학의 역할

인문학은 한국의 다른 어떤 학문 보다 오랜 역사적 자산과 전통을 가진 학문한국 경제가 오늘 날 이렇게 커진 데에는 크고 작은 이런 신화 창조와 같은 모험과 돌파가 있었기 때문

이종철 교수 | 입력 : 2021/07/12 [19:23]
이종철 칼럼
이종철 칼럼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했을 때 국민 대부분이 반대를 했다. 현명한 DJ조차 고속도로 위로 다닐 차도 없는 데 무슨 고속도로냐고 하면서 반대를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물류나 관광등 모든 면에서 경부고속도로의 파급효과는 상상할 수 없이 컸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여기서 시작된 도로 인프라의 구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정주영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해서 포니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많은 전문가들이 경제성이나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들먹이면서 반대를 했다. 하지만 정주영이 그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오늘 날 현주소는 어떤가?

 

한국 경제가 오늘 날 이렇게 커진 데에는 크고 작은 이런 신화 창조와 같은 모험과 돌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거대한 장벽에 피를 흘리고 부딪히면서 균열을 내고 마침내 그것을 뛰어 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정책 당국자들이나 기업가들의 이런 과감한 도전과 노동자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삼위일체가 되어 오늘 날 한국 경제를 이만큼 키워낸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완성품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판 것이 아니라 원자재들을 조달해서 직접 제품을 만들고 그것을 들고서 세계 시장을 누비면서 판매했다. 처음에는 단순 가공품을 수출했고, 점차적으로 중화학 제품들을 만들어서 판매했고, 마침내 반도체와 같은 최 첨단 제품들이 경쟁하는 시장도 주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이런 도전과 모험을 하지 않고 단순히 완성품을 수입 가공하는데 그쳤다고 한다면 현재와 같은 경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사실 세계 최빈국에서 시작할 때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 조차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런 발상 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런 도전을 했고, 마침내 거대한 장벽을 넘어선 것이다. 2년 전 한일 간의 갈등이 치열해진 상태에서 일본이 반도체 부품 시장을 막았을 때도 한국 경제는 그 파고도 회피하지 않고 넘어섰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 인문학은 한국의 다른 어떤 학문 보다 오랜 역사적 자산과 전통을 가진 학문이다. 불교와 유학이 한반도에 유입된 지는 거진 2천년이 넘었고, 그 이후 원효나 의상, 조선의 퇴계나 율곡, 그리고 조선 후반기의 다산이나 동학의 최제우처럼 독자적인 사상가들을 배출할 만큼 학문적인 축적도 적지 않다. 비록 20세기에 들어와서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사상적 탄압도 받고 그 영향도 크게 받은 적이 있지만, 오랜 문화적이고 정신적 자산이 완전히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다른 어떤 학문들보다 중화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지의 영향권을 쉽게 극복하지 못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문화와 사상의 일방적 수입국을 탈피하지 못했다. 물론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참혹한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 모든 것이 초토화된 후진국이 근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사상과 제도 등을 배워야 하고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해방 이후 70여년의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정치나 경제의 다른 부분들이 끊임없이 장벽을 돌파해온 것처럼 인문학도 그런 돌파를 해왔는가고 자문해본다면 부끄럽게도 거의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인문학, 특히 철학 연구자를 양성하는 방식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여전히 유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유럽이나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대학 교수의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국내 박사 학위의 경우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지만 생업 조달의 문제와 지도 교수의 연구 지도의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 박사 학위자들의 임용이 현실적으로 제약을 받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학위 양성 과정이 부실하다 보니 최근 윤성열 전 검찰총장의 처의 경우와 같은 황당한 케이스 조차 적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박사학위를 학문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허례허식하듯 외양적으로 과시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고 돈만 주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국내 대학들이 학위를 남발하다 보니 학문적 수준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독립적인 사상을 확립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기대불망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에 불만을 느낀 연구자들이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경우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수십년이 지나도 그 시스템이 바뀌지도 않고 개선되지도 않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인문학 위기 담론이 유행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인문학과들 유지를 위한 교수들의 위기의식만 반영할 뿐 진정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인문학의 현 수준에 대한 위기의식을 반성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해보려는 태도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인문학 위기 담론은 직장에서 퇴출 일보 직전에 몰린 자들의 구걸 담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들이 학문적 사대주의와 식민 사상에 안주한 채 전혀 독립할려는 의식이나 노력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나는 왜 인문학자들이 앞서 말한 것처럼 민주화를 달성한 정치나 산업화를 이룩한 경제처럼 자기 담론을 구축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국에서 인문학 혹은 철학자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작업의 대부분은 그저 남의 사상을 번역 소개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도 그런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자기 생각을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정립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기 힘든게 한국의 인문학계의 풍토이다.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열심히 싸우지만 결국은 한참 울고 보니 남의 초상집 앞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수십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을까  인문학은 여전히 보편주의와 학문적 수준을 빙자해서 유학을 통해 학문과 사상을 수입하는 것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한국의 철학자들이 하는 작업의 대부분은 내가 오퍼상과 고물상이라는 표현으로 단순화한 감은 없지 않지만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되든 안 되든 독립적인 사유를 수립하려는 최소한 노력 조차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한국의 경우는 서구의 사상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오랜 학문적 전통과 문화, 그리고 오랜 불교 문화의 전통도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학문을 정립할 수 있는 좋은 지적 환경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그런데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유독 한국에서는 그런 지적 자산들이 방기된 채 오로지 선진이나 신진 사상을 수입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현상들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정신적으로 유아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렇게 사유하는 것이 고속도로를 달리듯 안전빵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현재의 한국의 인문학과 철학의 진짜 위기는 자기의 언어와 자기의 문제의식이 없다는데 있다고 해도 크게 잘못한 것이 아니다.

내가 최근에 내 놓은 <철학과 비판: 에세이 철학의 부활을 위해>(수류화개)라는 책은 현재의 한국적 실정에 비추어 본다면 아주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외양적인 형식은 에세이 철학을 부활시키자는 것이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은 외부의 다른 어떤 사상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언어로 자기의 삶을 대상으로 자기 철학을 시도한 것이다.

에세이라는 형식은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런 자기 언어와 생각을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펼칠 수 있는 적절한 형식이자 방편이기 때문에 끌어들인 것이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과 자기 언어, 자기의 삶과 현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길러낸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일반적 의미의 철학 책에서 기술하는 것처럼 철학자들이나 철학사 혹은 철학의 문제들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런 시도는 마치 경제 영역에서 정주영이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포니 자동자를 만들었던 심정과 결코 다르지 않다. 나는 지금의 이런 시도가 다소 부족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을지라도 꾸준히 개선하고 발전시키다 보면 우리의 독립적인 사상과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서평을 보았지만 이런 문제 의식을 제대로 짚어내서 분석하거나 비판한 경우들이 거의 없다. 내가 시도한 것은 단순히 철학을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려거나 현대 철학이 상실한 생활세계와의 연관을 회복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언어로 쓰는 우리 철학이다. 이 책은 한국 철학계가 갇힌 높은 장벽을 돌파하려는 하나의 치열한 시도이다.

약력 

연세 대학교, 서울 (Yonsei University, Seoul)에서 근무
푸른아시아 에코투어에서 근무
Mongol Huree Ict University에서 교수로 근무했음
연세대학교 - Yonsei University에서 철학 전공
연세대학교 - Yonsei University에서 법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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