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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최경환노믹스’ 동족방뇨(凍足放溺)를 경계한다

박완규 | 기사입력 2014/07/31 [14:03]

[박완규칼럼] ‘최경환노믹스’ 동족방뇨(凍足放溺)를 경계한다

박완규 | 입력 : 2014/07/31 [14:03]

고종과 더불어 조선조 가장 무능한 왕으로 일컫는 선조(宣祖) 25년인 1592년 왜의 침입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그 이듬 해 기세가 꺾인 일본과 타국에서 굳이 전쟁을 할 이유가 없는 명나라는 우리나라를 빼고 강화협상을 진행하게 되고 우리나라 조정은 일본을 믿지 못하여 대책을 숙의한다.

이 자리에서 참판 심충겸(沈忠謙)은 선조에게 아뢰길 “왜적이 본래는 중국을 침범하려는 것이었는데 중국의 장수들이 당장 편하려고 도리어 서로 강화하니 속담에서 말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은 일입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숙종(肅宗) 29년(1703년),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경험한 조정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북한산성을 쌓자고 논의하게 된다. 하지만 신하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성 쌓는 일에 반대하는 중신들을 보자 숙종은 참았던 화를 토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로부터 전쟁은 풍년·흉년을 구분하지 않으니, 굶주린 백성이 없는 뒤에야 방비할 계책을 하려고 한다면 이것이 말이 되는가  언제 어떤 변고가 있을지 모르는데, 만일 불행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흙처럼 허물어지는 근심을 장차 어찌하겠는가  큰 계책을 이미 정한 바, 만인이 다투더라도 결단코 흔들림이 없을 터, 중국에서 성 쌓는 것을 물어 온다면 내가 스스로 항변하겠다. 유생(儒生)은 물정이 어두워 후일의 염려를 생각하지 아니하니 속담에 이른바 ‘언 발에 오줌 누기’라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속담인 ‘언 발에 오줌 누기’는 속담을 기록한 한적(漢籍) 문헌인 순오지(旬五志), 송남잡지(松南雜識), 동언해(東言解) 등에도 ‘동족방뇨(凍足放溺)’라고 한문으로 표기돼 나온다.

추운 겨울 꽁꽁 언 발을 녹일 데가 없어 급한대로 언 발에 오줌을 눈다고 해 보자. 몸에서 나온 오줌은 따뜻해서 당장은 언 발을 조금 녹이겠지만 잠시 후 오줌이 차가워지면 발은 발대로 얼고 거기에 오줌의 냉기까지 더해져 발은 더욱 꽁꽁 얼어버리게 된다. 잠시의 효력이 있을 뿐이고 곧 그 효력은 없어지고 더 나쁘게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경제살리기에 올인 하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살리기 올인을 선언한 가운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제2기 경제팀의 청사진이 윤곽을 드러냈다. 최 부총리가 기획재정부 관료들과 심혈을 기울여 마련했다는 ‘경제정책방향’은 1기 경제팀의 부진을 씻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음으로써 실추된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승부수에 다름 아니다.

정책방향 핵심은 내년까지 40조원을 투입하는 등 재정ㆍ금융ㆍ세제를 총동원해 확실한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확장적 거시정책’을 유지하고, 핵심 규제를 과감하게 풀겠단다. 아울러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 활성화를 위해 기업소득이 임금 등을 통해 가계로 더 많이 이전될 수 있도록 정책패키지를 가동키로 했다. 이례적인 총력 부양책은 특단의 전환점 없이는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부진의 골이 깊어지면서 ‘저성장-저물가-경상수지 과다 흑자’라는 사상 초유의 거시경제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할 경우 성장과 물가, 수출과 내수, 가계와 기업 모두가 위축되는 ‘축소균형’에 빠진다는 게 최경환 경제팀의 진단이다. 최 부총리가 앞서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도 있다”며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모 아니면 도, 나랏돈 쏟아붓기 경기부양책

‘지도에 없는 길’이란 우선 경기부양책의 전제다. 1기 경제팀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부양 필요성을 알고도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선뜻 실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당장의 재정건전성에 신경쓰지 않고, 경제를 살려 세수가 늘면 이번 경기부양에 쓴 국가채무는 박 대통령 임기내 갚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국내총생산(GDO) 대비 3.9%에 불과하고, OECD 평균(111%)에 비해 1.7%와 33.8%로 적은 우리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도 확장적 재정 운용의 여지가 있다는 게 근거다.

이번 정책방향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원활히 이전시키기 위한 정책패키지를 구상한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업이 돈을 벌면 자연스레 그 돈이 가계로 흘러든다는 ‘낙수효과’를 감안해 기업을 지원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뒀다.

그러나 기업이 돈을 쌓아놓고도 생산성 증가분만큼도 임금을 올리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선 이미 기업소득의 가계이전을 촉진하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소득주도성장론’까지 나온 처지다. 최 부총리가 이번에 가계소득 증대책으로 내놓은 ‘근로소득 증대 세제’ 등 3대 세제패키지와 비정규직 처우개선책은 그런 사회적 요구를 순발력있게 접목한 듯싶다.

예측가능한 위험요소 극복할 대안 강구해야

전경련회합, 방송기자초청토론회, 노사정대표자간담회 등 연일 광폭행보 속에 강력하고 일관된 메시지로 시장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최경환노믹스의 출발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서비스산업은 물론 창조경제를 구현할 벤처, 창업생태계 개선 등 미래형 산업을 일궈내지 못하는 경기부양책은 거품이 꺼지면 진짜 일본식 불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벌써 가계소득 증대책에 따른 내수부진 회복세 흐름 등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칫 이번 경기부양책이 나랏빚만 늘리는 ‘언 발에 오줌누기’가 되지 않도록 박근혜 정부의 새 경제팀은 구체적 실행계획 외에 예측가능한 모든 위험요소를 극복할 대안까지 강구하기를 권고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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