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추연수 기자의 구중단상] 하와이 한인문화회관과 역사적 양심:내외신문
로고

[추연수 기자의 구중단상] 하와이 한인문화회관과 역사적 양심

추연수 | 기사입력 2014/03/23 [19:41]

[추연수 기자의 구중단상] 하와이 한인문화회관과 역사적 양심

추연수 | 입력 : 2014/03/23 [19:41]

[내외신문] 지난 주 기자는 하와이의 한인문화회관 건립과 관련된 한인 사회의 갈등과 문제, 현황을 취재하기 위해 하와이에 다녀왔다.

 

한인문화회관과 관련하여 두 번째 방문이었다. 현지 교민들은 물론, 문추위(한인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 관계자들과 몇 몇 한인단체관계자, 현지 한인교회 목회자 등을 만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와이 현지 뿐만아니라 고국에서도 하와이 한인사회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최근 하와이 한인회와 문추위 간의 여러 이야기들과 주 호놀룰루대한민국총영사관의 조정에 따른 혼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특히, 지난 2월 영사관의 정부지원금 100만불에 대한 공식입장을 보며, 실로 그 고압적 태도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와이 현지 취재 중 영사관의 입장변화가 있었지만, 한인회측의 비난성명과 한인단체들의 한인회에 대한 엄중한 경고 성명 발표 등 그야말로 하와이 한인사회는 풍랑속에 있었다.

 

과거 백성들이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 빼앗길 즈음인 1902년 12월 22일 50 여명의 남녀 기독교 신도와 20 여명의 부두 노동자 그리고 농민들이 중심이 된 102명을 시작으로 하와이 이주가 시작되었다. 그 후 약 7천여명의 동포가 하와이로 이주를 하였고, 그들 이민1세대들은 민족혼을 지키고 조선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조선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하루 일당으로 받은 노임을 모금하여 조국의 독립운동자금으로 송금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자금을 모아 하와이에 땅을 사고 그 곳에 한인기독학교를 세우고 민족교육과 신앙을 지키며 살아갔다.

 

이승만 전 대통령 또한 오도 가도 못하는 조선의 여자 이민자들을 데리고 호놀룰루로 가서 스산나 웨슬리 홈이라는 곳에 머물게 해 주었고 자신의 비상금을 털고 감리교단의 도움을 받아 하와이 교민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한 역사의 흔적들이 하와이 한인교회(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한인기독교회 등)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왔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광복을 맞아 건국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자 이주한인들과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이 조직한 동지회 등 후원자들의 모금운동으로 1949년 하와이 영사관 건물을 마련하고 그 이듬해인 1950년 한국정부에 기증까지 하였다고 한다.

 

하와이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교육과 종교활동 통한 국가 정체성 확립, 이른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꿈꾸었다. 한인여학원부터 4만3000평의 칼리히 계곡 한인기독학교까지...

 

이주 당시 하루 10시간 노동에 69센트를 받는 플랜테이션 소작농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 하와이에서 한인이 주 대법원장까지 할 정도로 자리 잡은 한인들의 사회적 지위의 이면에는 그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교육정책과 교민들의 뜻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된 배경에는 조국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하와이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일하고 기도했던 그들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적지인 그 땅의 한인기독학원은 하와이 정부에 팔렸고, 그 매각대금은 한국 인천에 소재한 인하대학교(‘인천’과 ‘하와이’의 앞 두 글자가 학교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를 세우는 자금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은 그곳에 리키리키 엘레멘터리 하이스쿨이 들어서 있다.

그 지역은 아직도 하와이에서는 “쿨라코리아”라고 부른다. “한국 학교의 거리” 또는 “한국의 초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나 한인여학원 같은 교육기관, 최초 영사관 등은 오늘날 민가가 되어 있으며 신흥국어학교의 경우 도로명이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주민들이 싫어하는 탓에 민가가 된 사적지에 기념비조차 세우기 어려운 상황이라 한다.

 

심지어 이민1세대와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우리 선조들의 묘소와 묘비들은 아직도 일본인들의 소유인 추모공원에 남겨져, 버려지고 방치되어 일본인들의 발로 밟고 다닐 실정이었다.


그 “쿨라코리아” 인근 땅을 한국인들이 다시 사들이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정말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곳에서 우리 한국인이 다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한인 기업인 엘피스디벨럽먼트가 추모공원을 세우기 위해 한인기독학원이 있던 쿨라코리아 지역에 땅을 구입했으나 그 지역이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임을 알고 문추위에 매입한 땅의 일부를 한인문화회관 건립부지로 기증한 것이다. 문추위는 그 곳에 한인문화회관과 추모공원을 세워 유공자와 이민1세대의 유해 등을 안장하고, 이민역사를 전시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 말과 글, 전통을 가르치고 미래를 꿈꾸며, 세계인들과 소통하며 우리의 이민 후세대들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자랄 수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센터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른바 “하와이 무궁화 프로젝트” -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국화이기도 하지만, 하와이의 주화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과 하와이는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많은 인연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무궁화 프로젝트"는 하와이 교민들이 하와이에 "무궁화동산"을 세우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와이 한인들은 하와이 무궁화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그간의 갈등과 혼선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고 하와이 한인사회의 역사를 바로세워 알리고, 미래를 준비하려고 한다.


이곳에는 조국을 잃고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들의 문화회관은 없고, 일본과 오키나와 문화원 등 타 국가의 문화원들이 즐비하게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최소한 1,000만불 이상이 소요되는 문화회관 건립에 우리 정부는 6년전 고작 100만불(약10억원)의 지원금을 배정하고서 이제는 그 지원금마저도 회수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하와이 이주민들의 피땀어린 조국애로 모금하여 송금했던 독립자금의 뜻을 생각하면 말하기도 부끄럽고 참담한 발상이다.

 

일본문화원을 다녀오고, 학교에서 일본 문화에 대해 교육을 받고 있는 하와이 한인들의 자녀중에는 "Mom, Why I'm not a Japanese?"-"엄마 나는 왜 일본인이 아니죠?"-라며 울먹이는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하와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가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정부와 한인사회의 움직임을 보며 은근한 실소를 머금고 있지 않을까?

 

이번, 문화회관 건립과 무궁화프로젝트의 추진 과정을 통해 하와이 한인사회와 조국인 대한민국은 정체성, 역사, 정치, 문화적인 동질성의 회복과 문화적,경제적 연합과 협력방안을 함께 만들었으면 한다.


하와이로 떠나기 전 하와이 호놀룰루총영사관을 감사했던 국회의원에게 한인문화회관에 관한 내용을 질의했지만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한국정부도 과거 하와이 이민동포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한국정부와 국회, 대한민국건국회나 광복회,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들은 물론 재계와 학계, 특히 인하대학교 등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과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조국인 대한민국과 한국인으로서 최소한의 역사적 양심이 아닐까?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