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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칼럼]무지의 앎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말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화법은 상대의 무지를 일깨우는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에 근거-공부를 하면 할 수록 느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안다기 보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를 아는 것-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짧은 앎을 가지고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종철 교수 | 기사입력 2021/07/13 [08:56]

[이종철 칼럼]무지의 앎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말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화법은 상대의 무지를 일깨우는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에 근거-공부를 하면 할 수록 느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안다기 보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를 아는 것-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짧은 앎을 가지고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종철 교수 | 입력 : 2021/07/13 [08:56]
이종철교수
이종철교수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명언이다. 사실 이 말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신탁을 구하는 델포이 신전 바닥에 써있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무지를 일깨우는 이 말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의 정신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에 이 말을 바로 소크라테스와 함께 연상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소크라테스의 화법은 상대의 무지를 일깨우는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에 근거해 있다.

이것은 상대의 앎을 전제로 세우지만 그 앎이 근거없다는 것을 논증하고, 결국은 상대의 앎이라는 것이 무지에 기초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무지를 일깨우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대화법은 한편으로는 앎의 한계를 일깨우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확실한 앎에 대한 추구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깨우침은 학문의 세계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느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안다기 보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거대한 학문과 진리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뉴턴이 이야기를 했듯 백사장의 모래 한 주먹도 되지 않는다.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많이 발전을 했다고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해 수백만이 죽어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과학이 성취한 결과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은 앞으로 밝혀야 할 미지의 세계에 비교하면 참으로 미미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를 위시해 인간 지식의 경계를 끊임없이 넓혀가는 모든 활동은 앎에 대한 오만(hybris)을 자랑하기 보다는 모름에 대한 자각과 겸손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런 태도는 개인의 탐구 자세에서도 똑 같이 요구된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배움의 경지가 높은 사람일 수록 겸손하다.

그런데 간혹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짧은 앎을 가지고 멋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령 그렇게 비판과 재단을 한다 하더라도 겸손과 예의가 필수의 미덕인데, 마치 자신이 대단한 고수이고 하수들에 대해 한 수 가르켜 준다는 식으로 방자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과학의 세계에서 이런 현상은 비교적 드물지만 문사철로 이어지는 인문의 세계에서는 의외로 적지 않다. 전문적인 철학회에서도 종종 이런 분들이 나와서 자기의 앎을 과시하거나 섯부른 용어 문제들을 가지고 아득 바득 우겨대는 경우들이 있다. 재야 사학도들의 모임에 가보면 이런 분들이 넘친다. 과학의 세계 보다는 인문의 세계에 무지가 설칠 공간이 더 많아 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일수록 이런 아집(Eigensinn)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은 말을 받아주면 더 의기 양양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나 역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그저 웃어 넘기곤 했다. 어제 만난 수군* 이라고 하는 내 후배 역시 그와 비슷한 부류다. 그는 다짜고짜 신영복 선생이 기본 개념도 이해를 못하는 개똥철학이라고 반말투로 조롱을 해대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처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비판을 할 때는 충분한 논거를 제시한 다음에야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예의이고 기본이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이 그런 한 두 마디 말로 칠만큼 가벼운 분도 아니다. 한 마디로 버르장머리가 없는 독선적인 태도인데, 내가 너무 쉽게 받아준 면도 없지 않다.

일인 미디어가 판치는 지금 시대에는 그저 자기 앎을 과시하듯 자기 주장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앎이 얼마나 부실하고 근거없는 지부터 따져 묻는데서 앎이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무지에 대한 깨우침과 앎에 대한 겸손이 없기 때문에 말은 많이 해도 건질 말이 없고, 소통도 되지 않는 불통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으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들의 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약력 

연세 대학교, 서울 (Yonsei University, Seoul)에서 근무
푸른아시아 에코투어에서 근무
Mongol Huree Ict University에서 교수로 근무했음
연세대학교 - Yonsei University에서 철학 전공
연세대학교 - Yonsei University에서 법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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