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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실버레이크’할리웃 그들이 감춘 것은 ‘상실’인가 ‘망각’인가?: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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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실버레이크’할리웃 그들이 감춘 것은 ‘상실’인가 ‘망각’인가?

- 조화로움에서 혼돈으로 가는 할리웃 여행기 ‘언더 더 실버레이크’

조동현 기자 | 기사입력 2019/11/23 [13:09]

‘언더 더 실버레이크’할리웃 그들이 감춘 것은 ‘상실’인가 ‘망각’인가?

- 조화로움에서 혼돈으로 가는 할리웃 여행기 ‘언더 더 실버레이크’

조동현 기자 | 입력 : 2019/11/23 [13:09]
[언더 더 실버레이크; 화면 캡쳐]
[언더 더 실버레이크; 화면 캡쳐]

[내외신문 = 조동현 기자] ‘겨울왕국 2’의 흥행 중에 칸느영화제 등에 관심 받았던 몇몇 작품들은 여전히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중에 한편이 지난 919일 국내에 개봉한 언더 더 실버 레이크 (2018)’로 영화 팔로우(It Follows)’로 유명한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의 칸느영화제 도전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 여주인공의 실종에 초점이 맞춰져 소개가 되어 감독의 의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미국 개봉 시 포스터를 보면 그들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를 보면서 시니컬하게 웃는 우리들의 시선을 느낄수 있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좌-국내개봉 포스터 , 우-미국 개봉 포스터]
[언더 더 실버레이크: 좌-국내개봉 포스터 , 우-미국 개봉 포스터]

 

LA와 할리우드의 대규모 맨션에 사는 군상들이 숨기고 사는 비밀이 무엇인지를 훔쳐보는 훔쳐보기(Peeping Tom)’의 은밀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했던 앤드류 가필드(스파이더맨)의 연기변신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손녀인 라일리 키오가 주연으로 참여함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지하세계로 자신의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가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처럼 배우지망생이었던 샘은 이웃집의 썸녀 사라(라일리 키오)’를 찾아 온갖 음모, 폭력 그리고 위험으로 가득한 LA의 낯선 세계를 훔쳐보며 헤맨다.

 

이 기묘한 공간에서 사라의 실종과 관계된 흑막(黑幕)을 알아가며 관련된 해적모자, 노숙자 왕, 부엉이의 키스, 개 도살자 등을 만나며 위기를 겪는다. 과연 오르페우스처럼 음악으로 사람을 홀리는 재능을 가지지 못한 샘이 사라진 소녀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조바심은 보는 이들에게 답답함과 함께 끝까지 흥미를 자극한다.

 

이 영화는 지옥의 묵시록같은 뒤집혀진 교양소설같은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교양소설의 흐름은 혼돈(카오스)에서 조화(코스모스)로 진행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반대로 주인공 샘의 시선이 조화에서 혼돈으로 간다.

 

현대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사상과 이념에 대한 회의(懷疑)가 조지 루카스나 짐 모리슨같은 UCLA LA쪽 영화풍의 특징인데 이 영화에서는 사상이나 도덕은 존재하지 않고 상황 자체만이 존재한다. 상황자체만이 진실인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은 결국 파괴와 분리이다.

 

완벽한 기계에 나사가 틀어져 삐걱거리는 듯 한 세상에 놓여진 주인공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분리시킨다.(낭만적인 아이러니) 1994년 시고니 위버의 진실에서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진실을 부정당하는 주인공의 처지는 결국 현실은 없지만 상황만 존재하는 세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샘의 주변에 등장하는 많은 아방가르드한 예술가들과 배우인지 콜걸인지 알 수 없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런 분리에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집세를 내지 못해 쫒겨날 상황과 성공하지 못한 배우생활의 괴리감은 주인공 샘의 자아를 분리시킨다. 자연스레 그의 눈으로 보게 되는 여정들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보여지게된다. 어쩌면 이 배경이 LA, 헐리우드라고는 하지만, 현실 세계를 비꼬는 영화 기생충과도 같이 굳이 헐리우드가 아니라도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감독은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개 학살자(Dog killer)를 찾는 재미와 왜 샘이 사라진 여자를 찾는가에 대한 미스테리는 감독이 히피문화 세대의 부정적인 면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얻어지는 효과는 진지한 것은 장난스럽게 장난스러운 것은 진지하게보인다. 결국 우리는 애인을 찾아 헤메는 아마츄어 탐정을 보는지 아니면 한 범죄자의 자기 합리화에 가득한 한편의 살인자의 일기를 보고 있는지 혼란스럽게 된다.

[언더 더 실버레이크; 화면 캡쳐]
[언더 더 실버레이크; 화면 캡쳐]

 

라일리 키오가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은 마릴린 먼로의 1962년 유작인 썸씽스 갓 투 기브(Something's Got to Give (1962))와 똑같은 모습이다. 히치콕의 이창(1954) 등에서 창문 틈으로 내려다보는 시선 등 감독은 할리웃 명작들에 많은 오마쥬를 영화 내에서 시도했고 이 장면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점이다.

 

하지만 무서운 영화시리즈나 총알 탄 사나이(1982)’ 같이 흥미로운 패러디나 데이빗 린치나 히치콕 등의 탐정 스토리의 기본재미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데는 아쉬움이 남는다.

 

탐정영화라면 관객에게 해명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나중에 보여주던가, 환타지라면 분리된 자아나 환상의 단서를 남겨주던가 해야 했다. 어쩌면 이두가지가 불확실한 점은 공포 영화 감독출신의 스토리텔링의 한계였을 수도 있다. 두 가지 다른 장르 모두를 한곳에서 표현하는 것에 성공스러운 결과를 얻기는 힘들 때가 많다.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주문한 아이스커피가 럼이 잔뜩 들어간, 잘못 바꿔나온 알콜 커피를 마신 기분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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