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박정기의 문화산책) 국립극단, 강량원 연출 ‘어느 계단 이야기’

편집부 | 기사입력 2015/06/27 [21:18]

(박정기의 문화산책) 국립극단, 강량원 연출 ‘어느 계단 이야기’

편집부 | 입력 : 2015/06/27 [21:18]


사진제공/국립극단

 

[내외신문=박정기 문화공연 칼럼니스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작, 김보영 역, 강량원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를 관람했다.

 

안토니에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1916~2000)는 스페인의 극작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의 현대 스페인 극작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1934~36년에 마드리드와 과달라하라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스페인 내란(1936~39) 당시에는 공화국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민족주의자들이 사형을 선고했으나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6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했다.

 

1949년 희곡 ‘계단의 역사(La Historia de una escalera)’로 주목을 끌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인 로페 데 베가 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 빈민가의 가난한 아파트 주민들이 겪는 좌절을 현장감과 객관성을 갖추어 묘사하고 있다. 같은 해에 발표한 단막극 ‘모래 위에 쓴 글자 Palabras en la arena’는 간통과 자비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 그 뒤에 발표한 많은 희곡처럼 또 다른 스페인 문학상을 받았다.

 

2번째 장편 희곡 ‘불타는 어둠 속에서 En la ardiente oscuridad’(1951)에 등장하는 맹인들의 집을 소재로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꿈을 짜는 직공 La tejedora de sue?os’(1952)은 신화적인 내용이며, ‘이레네 보물 Irene o el tesoro’(1955)은 공상적인 이야기이다.

 

그가 다룬 기본 주제는 인간적 행복에 대한 갈구와 그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오늘은 축제일 Hoy es fiesta’(1957)에서는 사실적.냉소적인 소재로 다시 마드리드의 빈민가를 묘사했다. 그는 아서 밀러의 문체를 흉내낸 사실주의를 추구했는데, 후기 작품들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또한 그는 브레히트의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친 역사극들을 썼는데, 이러한 작품으로는 찰스 3세 시대에 스페인을 현대화하려던 개혁의 실패를 다룬 ‘나라를 위한 몽상가 Un so?ador para un pueblo’(1959), 벨라스케스에 관한 ‘시녀들 Las meninas’(1961), 프랑스 대혁명 기간의 파리를 무대로 한 ‘성 오비디오의 음악회 El concierto de San Ovidio’(1963), 스페인 내란을 다루고 있는 ‘지하실의 창 El tragaluz’(1968) 등이 있다.

 

후기에는 ‘이성(理性)의 꿈 El sue?o de la raz?n’(1970), ‘발미 박사의 이중생활 La doble historia del doctor Valmy’(1978) 등을 썼다. 1971년에 스페인 학술원 회원으로 뽑혔으며, 그에 관한 연구로 R.L.니콜라스의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비극 The Tragic Stages of Antonio Buero Vallejo’(1972)이 있다.

 

‘어느 계단 이야기’는 2000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송지현 기획, 노성민 연출로 공연되었고, 2007년에는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오태석 예술감독, 이송 연출로, 백성희, 이승옥, 오영수, 최상설, 이혜경, 이상직, 서상원, 계미경, 이은희, 이문수, 우상전, 김종구, 조은경, 남유선, 김진서, 곽명화, 한윤춘, 안민석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두었다.

 

‘어느 계단 이야기’는 마드리드의 한 허름한 연립주택 계단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사건의 중심적 공간은 계단으로서, 이곳을 중심으로 한 네 가족, 등장인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대를 물려 이어가는 사랑, 증오,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며 사건 들이 전개되어 나간다.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제1막은 1919년의 어느 날, 제2막은 10년이 흐른 1929년의 어느 날, 제3막은 20년이 지난 194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막은 1919년의 어느 날이다. 홀아버지의 무남독녀인 엘비라, 홀어머니의 외아들인 페르난도, 철도 공무원인 아버지 그늘 아래서 어머니와 건달 오빠 페페와 살아가는 카르미나, 걸걸한 성격의 소유자인 파카와 잘못된 딸 로사를 못 마땅히 생각하면서도 아버지로서의 정 때문에 조용히 딸을 돕는 후안, 그리고 그의 장남이면서 노동자인 우르바노. 한 연립주택의 1호, 2호, 3호, 4호의 1실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잘생겼지만 게으른 낭만주의자인 페르난도와 현실적이지만 희망이 없는 우르바노는 친구 사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인 엘비라는 아버지를 이용해 잘생긴 페르난도를 차지하려고 하지만 페르난도는 아름다운 카르미나를 사랑한다. 페르난도는 카르미나에게 이 구질구질한 연립주택을 떠나자며 장미빛 미래를 약속한다.

 

2막은 1929년의 어느 날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으로 설정이 된다. 페르난도의 어머니와 카르미나의 아버지, 엘비라의 아버지가 죽어나갔을 뿐 이 연립주택의 사람들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카르미나에게 사랑을 약속했던 페르난도는 결국 현실에 굴복하여 돈 많은 엘비라와 결혼하고, 배신당한 카르미나는 곁을 지켜주는 우르바노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자유분방한 로사와 바람둥이 페페, 트리니 등 주변 인물들의 자잘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희망 없는 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3막은 1949년의 어느 날이다. 또 다시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페르난도와 엘비라 사이에서 난 아들 페르난도와, 카르미나와 우르바노 사이에서 난 딸 카르미나가 자라 성숙해지고, 이들은 부모의 맹렬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연애를 시작한다. 서로 맞닿지 못했던 부모들의 애정은 배신과 절망, 혐오와 비난으로 어긋나 있지만 두 젊은이는 사랑을 약속한다. “카르미나,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앞으로 십장이 되어 돈을 많이 벌 것이고 즐겁고 깨끗한 가정을 꾸밀 거야. 여기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 나는 공부를 더해 이 나라 제일가는 기술자가 될 거야….” 아들 페르난도는 딸 카르미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20년 전에 페르난도가 카르미나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은 말로 새로운 약속을 하며 둘은 끌어안고 입 맞추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중앙에 이층으로 오르는 긴 계단이 있고, 계단 위 무대 좌우로 연결된 통로가 있다. 그 통로 좌우 벽면에는 마치 연립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처럼 1실마다 문이 있고, 모두 네 개의 방문이 달린 것으로 보아 4가구가 사는 건물임을 알 수가 있다. 통로 밑은 커다란 공간인데, 오래된 가구를 쌓아두거나, 마시고 버린 럼주나 데킬라(Tequila) 술병이 여기 저기 잔뜩 놓여있다. 출연자들의 의상이 회색과 갈색계통이라 마치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움직이는 그림을 대하는 느낌이다.

 

연극은 도입에 나이든 페르난도가 높은 계단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다가 페르난도는 다리를 휘청거리게 되고, 다시 몸의 중심을 잡으면 암전과 함께 1막의 첫 장면인 전기요금 수취인이 방마다 노크를 하며, 문을 열고 나온 여인들에게 고지서와 요금을 수취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연극은 원작의 줄거리대로 전개되고, 100년 전의 스페인 서민들의 삶이 5, 60전의 우리의 삶과 별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20대 젊음에서부터 50대의 연령으로 되기까지 출연자들의 사랑과 삶, 고통과 애환이 펼쳐지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연극에 시종일관 몰입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아버지나 어머니 대의 구애를 하던 모습과 말투를 꼭 빼어 닮은, 원수지간 같은 상대가족의 자녀의 사랑이 부모대의 모습대로 펼쳐지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곽정환, 권수진, 김계남, 노창균, 박주영, 박한솔, 박혜미, 방미라, 배수진, 안소영, 연해성, 이정근, 정보현, 정수지, 지석민, 허진 등 새 세대 출연자 전원의 열정과 노력이 공연에 드러나 신선한 느낌으로 관극을 하게 된다.

 

제작총괄 박현숙, 프로듀서 정선미, 무대 박상봉, 조명 설미림, 의상 김우성, 음악 장영규, 분장 이지연, 조연출 김지영.변호진, 무대감독 김탁수, 기술감독 최슬기, 조명팀 정하영.정주연.정호진, 분장팀 변금슬.조진솔, 조명오퍼 홍유진, 무대제작 스테이지, 홍보물인쇄 문성인쇄, 옥외광고 모티브, 그래픽 박미옥, 전단 김영숙, 웹 홍보 원성연, 사진 임영환, 기록영상 최민석 등 스태프 모두의 예술적 기량이 합하여,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Antonio Buero Vallejo) 작, 김보영 역, 최용진 연기지도, 강량원 연출의 ‘어느 계단 이야기(La Historia de una escalera)’를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