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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飛蚊)에 빠지지 말라. 등화가친(燈火可親)의 문장가 한유(韓愈)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21/08/10 [08:31]

비문(飛蚊)에 빠지지 말라. 등화가친(燈火可親)의 문장가 한유(韓愈)

고영화 향토 고문학 칼럼리스트 | 입력 : 2021/08/10 [08:31]
사진=고영화 페이스북 

중국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정치가·사상가이자,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768~824)는 평소 문자음(文字飮)을 할 줄 알아야 교양인이라고 여겼다. 문자음이란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고 문장을 논하는 것이다.

806년에 지은 ‘취해서 장 비서에게 준(醉贈張秘書)’ 시 내용 중에, “장안의 부자 아이들은 고기와 훈채를 소반에 차려 놓고, 시 지으며 마실 줄은 알지 못한 채, 기녀의 붉은 치마에 취할 줄만 아나니, 한식경의 즐거움은 얻을지 몰라도 모기떼가 윙윙거리는 것과 같을 뿐.(長安衆富兒 盤饌羅肉菜 不解文字飮 惟能醉紅裙 雖得一餉樂 有如聚飛蚊)”이라고 장안 부호 자제들을 조롱했다. 이 시에서부터 ‘비문(飛蚊)’이란 단어를, ‘고상한 풍류는 즐길 줄은 모른 채, 그저 술에 취해서 기생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일컫게 되었다.

본디 이 시(醉贈張秘書)는 《한창려집(韓昌黎集)》2권에 실려 있는데, 한유가 장비서(張秘書)의 초대를 받아 연석(宴席)에서 지은 것이다. 비서(秘書)는 도서비기(圖書秘記)를 관장하는 관직명으로 이름은 분명치 않다. 장철(張徹)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시는 원화(元和) 초기에 지어졌다. 이때는 그가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으므로 맞지 않는다. 당시 이미 진사(進士)가 되었고 한때 비서랑(秘書郞)에 임명되었던 장서(張曙)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한유의 시는 전아하고, 군말이 없는 깔끔한 시를 지었다. 허황되게 호기를 부리지도 않고, 너무 처량한 또는 쓸쓸한 것도 아닌 중용의 마음을 지녔다고 할까. 불교를 배척했지만, 그것은 공적인 일이고, 훌륭한 선사(禪師)들과 좋은 친구사이였으니 참으로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도 지을 수 있었던 게고, 당송팔대가의 제일 서열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한유는 실로 뛰어난 문장가요 시인이었다. 이한(李漢)은 〈한창려집서(韓昌黎集序)〉에서 한유의 학문과 문학을 평하여, “기이하기는 교룡이 하늘을 나는 듯하고, 성대하기는 범과 봉황이 뛰는 듯하다[詭然而蛟龍翔, 蔚然而虎鳳躍]”라고 했다. 실제로 유종원은 정치적으로는 한유와 성향을 달리했지만 한유의 문학을 사랑하여, 한유가 시를 부쳐오면 장미꽃의 이슬에 손을 씻고 옥유향(玉풆香)을 뿌린 뒤에 그 시를 읽었다고 한다. 한유가 죽은 뒤 학자들은 그를 태산처럼 높이 숭앙하고 북두칠성처럼 우러러 존모했다. 한유는 태산북두(泰山北斗)였던 것이다.

한유는 실제로 문자음을 즐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연구(聯句)를 짓기도 했다. 연구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가 한 구씩 짓거나 두 구씩 지어서 전체 시를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맹교(孟郊)와 성남(城南)에서 153운(韻)을 사용하여 1,530자에 달하는 시구(詩句)를 함께 지어 〈성남연구(城南聯句)〉를 엮은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이후로 연구의 작시가 중국과 한국의 문인들 사이에 우아한 놀이로 정착되었다. 일본의 중세시대에는 한 구절은 한시, 한 구절은 일본시(和歌)로 잇는 연구(連句) 양식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812년에 한유는 제자들과 함께 형산(衡山)의 도사 헌원미명(軒轅彌明)과 차 달이는 돌솥인 석정(石鼎)을 소재로 하여 <석정연구(石鼎聯句)>를 이루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한유는 돌솥의 구멍을 지렁이 구멍으로 묘사하고 그 구멍에서 끓는 찻물의 소리를 파리 울음소리에 비유하여 “때로는 지렁이 구멍에서, 파리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리네[時於?蚓竅, 微作蒼蠅鳴]”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 한유는 희화적으로 사물이나 사건을 묘사하고 서술하기도 했다. 희(戱)는 그의 문학적 취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유는 〈코 골며 자는 것을 조롱하다[嘲?睡]〉라는 시에서 정신없이 코 골고 자는 광경을 해학적으로 묘사했다.

雖令伶倫吹 비록 영윤을 시켜 악기를 불게 해도

苦韻難可改 시끄러운 음색은 고치기 어려워라

雖令巫咸招 비록 무함을 시켜 혼을 부른다 해도

魂爽難復在 혼백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워라.

영윤(伶倫)은 고대의 뛰어난 악공이다. 무함은 신령한 무당으로, 은(殷)나라 중종(中宗) 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뛰어난 악공을 시켜 소리를 내게 한다고 해도 코 고는 소리는 아름답게 바꿀 수가 없고, 뛰어난 무당을 불러 초혼굿을 한다고 해도 깊이 잠든 사람의 영혼을 불러올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 것이다.

● 독서를 강조할 때 가장 먼저 인용되는 성어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한유(韓愈 768~824)가 816년 18세가 된 아들 부(符)에게 준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에서 나온 말이다. ‘부야, 성남에 가서 글을 읽어라’는 뜻이다. 성남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의 수도인 장안 남쪽 계하문 안에 있는 정자라고 한다. 5언 고시인 원문에는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으로 돼 있는데 稍는 점점, 차츰 차츰이라는 뜻의 글자다. 초초는 점점과 같다. 한유는 이 시에서 어려서 비슷하던 아이들이 하나는 용이 되고 하나는 돼지가 되는 것, 누구는 군자가 되고 누구는 소인이 되는 것은 배우고 배우지 않은 차이라고 말한다. 말고삐 잡는 졸개가 되어 채찍 맞는 등에서 구더기가 끓을 것인지, 삼공 재상 신분으로 큰 저택에서 의젓하게 지낼 것인지도 글 읽기에 달렸다고 했다. 한유가 아들 성남에게 독서를 권하는 글로 구절구절 사무치는 깊이가 느껴진다. 아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시의 첫 부분은 이렇다. “나무가 둥글고 모나게 깎임은 가구나 수레 만드는 목수에 달렸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들어있는 시와 글들에 달려 있단다.(木之就規矩 在梓匠輪輿 人之能爲人 由腹有詩書)” 시의 끝 부분은 이렇다. “때는 가을이라 장마도 그치고 새로 시원한 바람이 교외에서 불어온다. 등불 점점 가까이 할 만 하고 책 펼칠 만하게 됐으니 어찌 아침저녁으로 생각하지 않으리. 너를 위해 세월을 아껴야 하리. 사랑과 의리는 서로 어긋나는 것, 망설이는 너를 시를 지어 권면하노라.”[時秋積雨霽 新凉入郊墟 燈火秒可親 簡編可卷舒 豈不旦夕念 爲爾惜居諸 恩義有相奪 作詩勸躊躇] 마지막 두 행은 아들을 아끼는 마음과 공부를 채근하는 마음이 엇갈린다면서도 공부를 하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 앞의 행 거저(居諸)는 일거월저(日去月諸)의 준말로, ‘흘러가는 세월’을 뜻한다. 이 경우의 ‘諸’는 어조사 저로 읽는다.

● <취하여 장비서에게 주다(醉贈張秘書)> 한유(韓愈 768~824)

人皆勸我醉(인개권아취) 사람들 모두 나에게 술 권하였으나

我若耳不聞(아약이불문) 나는 귀로 듣지 못한 체하였는데

今日到君家(금일도군가) 오늘 그대의 집에 이르러

呼酒持勸君(호주지권군) 술 가져오라 하여 그대에게 권하네

爲此座上客(위차좌상객) 이는 좌상(座上)의 손님들과

及余各能文(급여각능문) 내가 각기 글 지을 수 있기 때문이라오.

君詩多態度(군시다태도) 그대의 시(詩)는 태도가 많아

??春空雲(애애춘공운) 자욱한 봄하늘의 구름과 같네

東野動驚俗(동야동경속) 동야(東野)는 걸핏하면 세속을 놀라게 하니

天?吐奇芬(천파토기분) 하늘의 꽃 기이한 향기 토하는 듯하고

張籍學古淡(장적학고담) 장적(張籍)은 예스럽고 담박한 시풍(詩風) 배워

軒鶴避鷄群(헌학피계군) 높은 학(鶴)이 닭의 무리 피하는 듯하여라

阿買不識字(아매불식자) 아매(阿買)는 글자 모르지만

頗知書八分(파지서팔분) 자못 팔분(八分)을 쓸 줄 아네.

詩成使之寫(시성사지사) 시(詩)가 이루어짐에 그로 하여금 쓰게 하니

亦足張吾軍(역족장오군) 또한 우리의 진영(鎭營) 넓힐 수 있네.

所以欲?酒(소이욕득주) 술을 얻으려고 한 까닭은

爲文俟其?(위문사기훈) 글을 지을 적에 얼큰히 취하기 기다리려 해서라오.

酒味旣冷冽(주미기냉렬) 술맛이 이미 차고 시원하며

性情漸浩浩(성정점호호) 성정(性情)이 점점 호탕해지니 술기운이 또 얼큰하여라.

諧笑方云云(해소방운운) 해학(諧謔)하고 웃는 소리 바야흐로 커지누나.

此誠得酒意(차성득주의) 이는 진실로 술의 뜻 얻은 것이니

餘外徒?粉(여외도빈분) 이 나머지는 한갓 잡되고 분분할 뿐이라오.

長安衆富兒(장안중부아) 장안(長安)에 여러 부호(富豪)의 자제들

盤饌羅??(반찬라전훈) 소반에 누린내 나는 고기와 마늘 늘어놓으나

不解文字飮(불해문자음) 문자(文字) 지으며 술 마실 줄 모르고

惟能醉紅裙(유능취홍군) 오직 붉은 치마의 여인들과 취할 뿐이니

雖得一餉樂(수득일향락) 비록 잠깐의 즐거움 얻으나

有如聚飛蚊(유여취비문) 날라 다니는 모기떼가 모여 있는 것과 같다오.

今我及數子(금아급수자) 지금 나와 여러 그대들은

故無?與薰(고무유여훈) 진실로 취초(臭草)와 향초(香草) 모인 것 아니네.

險語破飛膽(험어파비담) 기이한 말은 귀신의 간담을 놀라게 하고

高詞?皇墳(고사비황분) 높은 문장은 삼황(三皇)의 글에 짝하누나.

至寶不雕琢(지보부조탁) 지극한 보배는 닦고 다듬지 않고

神功謝鋤芸(신공사서운) 신묘한 공은 호미질하고 김맴 사양하네.

方今向泰平(방금향태평) 지금 태평성세 향하고 있으니

元凱承華勛(원개승화훈) 원개(元凱)가 화훈(華勛)과 같은 군주 받들고 있네.

吾徒幸無事(오도행무사) 우리들 다행히 아무 일 없으니

庶以窮朝?(서이궁조훈) 거의 이대로 아침저녁 보내리라

[주1] 장적(張籍) : 당대(唐代)의 문인. 자(字)는 문창(文昌). 고시(古詩)와 서한행초(書翰行草)에 능함. 저서에 『장사업시집(張司業詩集)』이 있음

[주2] 아매(阿買) : 한유 조카의 소명(小名)이다. 아명(兒名)

[주3] 장오군(張吾軍) : 우리 군진을 펼침, 군진은 필진(筆陣)의 비유로 시를 읊어볼 만하다.

[주4] 인온(??) :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서로 합하여 어림, 여기서는 취기가 오른다는 뜻

[주5] 비문(飛蚊) : 떼 지어 나는 모기떼라는 뜻으로 고상한 풍류는 즐길 줄은 모른 채 그저 술에 취해서 기생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주6] 유여훈(?與薰) : 성격, 취미, 행동이 판이한 사람들의 모임의 비유. 故는 固와 같은 뜻, ?(유)는 누린내 나는 풀이나 악취 또는 악인, 薰(훈)은 향기로운 풀.

[주7] 삼황(三皇) :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세 임금. 천황씨, 인황씨, 지황씨. 혹은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황제씨(黃帝氏).

[주8] 원개(元凱)는 고대의 현신인 팔원(八元)과 팔개(八凱)를 말하고, 화훈(華勛)은 요임금의 호인 방훈(방훈)과 순임금의 호인 중화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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