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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처자식을 애도하며[挽詞妻子息] 거제시 고현동 정황(丁?)

어찌 하늘 아래 이런 일이 또 있을까  하늘을 향해 통곡

고영화(高永和) | 기사입력 2021/07/16 [07:40]

죽은 처자식을 애도하며[挽詞妻子息] 거제시 고현동 정황(丁?)

어찌 하늘 아래 이런 일이 또 있을까  하늘을 향해 통곡

고영화(高永和) | 입력 : 2021/07/16 [07:40]

유헌(遊軒) 정황(丁  1512~1560) 선생은 1548년부터 1560년까지 고현동 계룡산 아래에서 귀양살이했다. 측실 정(鄭)씨와 장모가 함께 따라와 그를 보살폈다. 거제도에서 태어난 서얼 장남 호남(好男)과 차남 정남(正男)을 1553년 8월에 돌림병으로 잃게 되었는데, 1554년 같은 날 정(鄭)씨마저 세상을 떠났다. 정황(丁?) 선생은 비통한 심정을 가슴에 안고, 두 자식과 정(鄭)씨를 떠올리면서 눈물로 붓을 적셔 한 많은 슬픔을 자아낸다. “먼 변방 거제가 고향이 아니니 부모와 각각 동과 서에 있구나. 떠난 자식 생각 어찌 끝이 있으랴마는, 천지간에 이 마음 무궁하리라.[天涯非舊土 父母各西東 遊子思何極 乾坤此意窮]”라고 울먹였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아요> Paulo Coelho 브라질의 작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물고 있을 뿐이죠.“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중에서-

1) 두 아들 영결사(長男次男永訣辭)

정황(丁?) 선생은 죽은 두 아들 호남(好男)과 정남(正男)을 떠올리며 영결사(永訣辭)를 지어 올린다. 자식을 둘이나 잃은 아비의 심정,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我心如焚 我言如漏 내 마음이 타는 듯 내 말이 새는 것 같다.

父爲島夷 汝母隨父 아비는 거제도에 있으니 너 어미가 아비를 따라왔다.

體爲蟬脫 汝肢俱體 몸이 매미 허물을 벗듯 너의 사지가 갖추어졌는데

杳杳遊魂 獨向何之 아득히 노니는 영혼, 오직 어디로 향하는가?

父母何欺 肢體何遺 부모를 버려두고 어찌 몸을 버렸나.

提孩之憐 琅琅音韻 손잡고 다니던 예쁜 어린 것 낭랑한 음성이요

皎皎精神 儀觀逈秀 초롱초롱한 정신이고 거동하는 모습 빛나고 빼어났다.

姸姸心目 奈何卽遠 예쁘고 이쁜 마음과 눈, 어찌하여 멀리 갔는가?

慾忘未能 父子情苦 잊고자 해도 잊지 못하니 아비와 자식의 정에 괴롭구나.

一別音容 死生難同 음성과 용모와 한번 이별하니 죽은 자와 산 자는 함께할 수 없네.

宇宙茫茫 曷其爲  우주가 망망하니 어디에서 그 자취가 있으랴

有皇上帝 胡忍於此 크신 하늘의 상제시여~ 어찌 이리 잔인하십니까?

置父子情 奈耳目及 부자간의 정을 두고는 어찌 보고 들을 수가 있으랴합니까?

認父母所 暫留于廊 부모 살던 곳인 줄 알고 잠시 사랑에 머물 있거라

魂魄一過 我實導汝 혼백이 한번 지나갈 터이니 내가 실로 너를 인도하리라

嗚呼痛哉 何以爲心 오호 통제라~ 무엇으로 마음을 삼을까

惟淚有盡 此情無窮 눈물이 다하여도 이 정감 무궁하도다.

??望汝 西北悲風 맥맥하게 너를 바라보는데 서북에서 서글픈 바람 불구나.

● “어찌 하늘 아래 이런 일이 또 있을까  하늘을 향해 통곡을 하고 원망하며 탓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 있나. 남쪽 바다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외다. 불현듯 떠오르는 삶과 죽음의 문제, 나도 몰래 마음속이 잿빛으로 변하구나. 왜  무엇이 빼앗아 갔단 말인가  아마도 귀신의 못된 장난이겠지. 이제는 따라갈 수 없는 길, 멀리 떠나 버렸으니 부디 저승에서 편안하길.... 창해 바닷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는데, 마치 창해의 궁한 물고기 신세 같아 스스로 불쌍토다. 바닷물 마르지 않는 한 너희들 넋도 사라지지 않으리.”

2) 가을 저녁[秋夜] 二首 두 자식을 잃고 감회에 젖어.

蟲吟夜雨沈邊寒 추운 변방 베갯머리에 밤비와 벌레 소리

榻畔呻吟睡可安 평상 가에서 웅얼거리니 잠인들 편하리.

落襁褓爲才兩月 포대기에서 벗어 난지 겨우 두어 달

有何侵暴此多端 어찌하여 이렇게 거칠게 행동하며 바쁜가.

時夜似忘庚戌男 밤마다 경술년(1550)에 얻은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데

爲憐乳下病方  젖 아래서 가련하게도 한참이나 괴로워했다.

卽今兩息無尋處 이제 두 자식이 모두 죽어 찾을 곳도 없는데

漠漠秋天臥海南 막막한 가을 하늘 아래 남쪽 바다에서 누웠노라.

3) 괴로운 생각[苦懷] 二首. 아들과 처의 기일 날.

前年此日兩亡在 작년 이 날에 둘이나 잃었는데

今年此日兩在亡 올해 이 날은 둘이 망인이 되었네.

幽明異道我心苦 저승과 이승의 길로 갈라지니 괴로운 내 마음,

鷄龍山下夏晝長 계룡산 아래 여름날은 길기만 하구나.

夏晝長令我獨居 긴 여름날 나 홀로 거처하는데

誰言日遠不如初 날이 계속 지나면 처음 같지 않다고 누가 말했나.

無由更得暫親炙 다시는 잠시라도 친히 배울 가까운 스승 없고

父子夫妻何以疎 부자간 부부간이 어찌하여 성글어졌나.

● “예로부터 운명은 하늘에서 타고난다지만, 가련타! 창자가 끊어질듯, 끝없는 통곡 속에 흐르는 눈물, 참혹한 일을 당해, 갑자기 죽을 줄 어찌 기약했으리요. 통곡 속에 붉은 만장 멀리 떠나고 이제는 돌아가 구천(九泉)에 누웠구나. 어쩜 그리 운명이 기구했는가  구슬픈 나의 심정이여~ 석양을 마주하고, 멈춰 선 구름 속에 빨려드는 나의 눈물이여~”

“통곡하는 부모형제 하늘을 원망하며, 미친 듯 시신(屍身)을 세 치 두께 나무관에 고이 담는구나. 물어보세! 인생의 갖가지 화와 복을 도대체 그 누가 주관하는가  아무리 통곡해도 끝없는 슬픔, 조물주 그야말로 심술궂도다. 매서운 바람 불어 눈물도 흠칫, 비바람 치는 밤을 어이 견딜꼬. 묻노니 지금 비바람 치는 이 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런가  다시금 이 변고 기억하리라.”

4) 궁색한 홀아비[窮獨] 三首. 아들과 처의 기일 날.

前年兒死哭無過 작년 아이의 죽음에도 곡이 지나치지 않았는데

此日竝兒母奈何 이 날 아이와 어미가 함께하니 어찌하랴.

罔極天涯窮獨坐 끝없이 먼 바닷가 궁색한 홀아비로 앉았으니

有皇上帝忘人多 위대한 상제께서는 사람을 잘 잊어버리네.

前秋兒發慟無過 작년 가을 아이 초상에도 애통함이 지나치지 않았는데

此日竝兒母奈何 이 날 아이와 어미가 함께하니 어찌하랴.

罔極天涯窮獨坐 끝없이 먼 바닷가 궁색한 홀아비로 앉았으니

明明日月覆盂多 밝고 환한 해와 달이 엎어진 사발일 뿐.

前春兒葬踊無過 작년 봄 아이 장례에 슬퍼 뜀이 지나치지 않았는데

此日竝兒母奈何 이 날 아이와 어미가 함께하니 어찌하랴.

罔極天涯窮獨坐 끝없이 먼 바닷가 궁색한 홀아비로 앉았으니

莫寬后土我懷多 너그러움 없는 땅의 신이 내 회포만 쌓이게 하네.

● 세상에는 정말 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다. 병으로 인한 아픔, 이별로 인한 슬픔 등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말로 할 수 없으니 '다만 가슴으로 묻는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예전부터 사용한, 죽음을 당한 슬픔 또는 아픔을 표현한 사자성어를 알아보자.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 즉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했고, 아내 잃은 슬픔을 비유하는 말로 ‘고분지통(鼓盆之痛)’ 즉 장자가 부인이 죽자 동이를 두드리고 노래를 불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쓰이게 되었는데 ‘고분지척(鼓盆之戚)’ 혹은 ‘고분지탄(鼓盆之歎)’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남편을 잃은 아내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은 성(城)이 무너지는 아픔이란 뜻의 ‘붕성지통(崩城之痛)’이라고 하고, 형제자매와의 이별은 반을 잃었다는 의미의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고 했다.《장자(莊子) 〈지락(至樂)〉》.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잃었을 때는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서하지통(西河之痛)’이라 하는데 서하(西河)에서의 아픔이라는 말로,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자식을 잃고, 너무 슬피 운 나머지 소경이 된 옛일에서 온 말이다. 이 일을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말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머리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애절(哀絶)한 고통이라거나, 단장의 아픔(斷腸之哀)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세설신어(世說新語)> 출면(黜免) 편에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사가 나온다. 촉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죄이고자 진나라 장수 환온(桓溫)이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때, 병사 중 하나가 강변에서 놀고 있던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납치하여 배에 데리고 왔다. 그 새끼원숭이 어미는 군사를 태운 함선을 100여 리를 쫓아오다 폭이 좁은 협곡에서 새끼를 태운 배를 향해 몸을 날렸는데, 배에 이르기도 전에 그만 죽고 말았다. 한 병사가 그 어미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어미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환온은 새끼를 납치한 병사를 매질하고 대열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이에 자식을 잃은 슬픔을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 비유되고 있다.

5) 술회[述懷] 5수(五首). 죽은 장남 호남(好男)이 생각나.

愛汝今知倍汝母 너를 사랑하나 너의 어미를 배로 사랑했음을 이제야 알겠고

此心割絶憶汝時 니가 생각날 때마다 이 마음 베어 끊는 듯하다.

憶汝母時解在上 생각하니 너의 어미는 때마다 높이 받들어 주었으니

憶汝母貌最奈慈 생각하니 너의 어미 모습이 가장 자애로웠음을 어찌하랴.

父母愛我我愛汝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너를 사랑했으니

我幸不死父母前 나는 다행이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지는 않았다.

秀氣神淸汝早去 빼어난 기운과 맑은 정신인 네가 일찍 가버리니

欲忘不能今三年 잊고자 해도 잊을 수가 없더니 네가 가버린지 삼년이네.

汝母生男未一月 너의 어미가 남아를 낳고 한 달도 못되어 그리됐는데

汝不食乳方四年 너는 젖을 못 먹고 4살이 되었었다.

彷徨母傍不敢近 엄마 곁을 방황하다 감히 가까이 가질 못하고

跳過忽逼襁褓邊 뛰어 다니다가 포대기 근처에만 갔었지.

我與汝母僞加怒 내가 너의 어미와 더불어 거짓으로 화를 내곤

欲見汝色汝先驚 너의 안색을 살피면 네가 먼저 놀랐었다.

結眉下首欲啼未 눈썹을 찡그리고 고개 떨구고는 울려하다가 그쳤지

憶來?若無我生 생각하면 이젠 나의 삶이 없는 것 같다.

汝去弟去母又去 네가 가고 아우도 가고 어미도 이어 가버린

天涯備嘗三年悲 거제도에서 두루 겪은 삼년의 슬픔이여~

爲此傷心心自病 이 때문에 상심하여 마음의 병이 생겨나

四十未衰今知衰 마흔이 쇠약할 나이가 아닌데도 쇠약함을 알겠구나.

6) 우연히 이루다[偶成] 측실 정(鄭)씨를 그리며.

一去英靈不復缺 한번 간 영령은 다시 오질 않는데

缺磎宿草已焉哉 계곡의 묵은 풀을 생각지 말자.

金陵若有相聞事 금릉(金陵)에 만약 서로 들릴 일이 있다면

夢寐先期面目回 꿈자리에서 먼저 만나 얼굴을 보리라.

[주] 금릉(金陵) :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초나라의 읍(邑). 현재의 난징(南京)의 옛 이름이자 별칭(別稱)이다. 당나라 때에 금릉부라 칭한 데서 연유한다.

7) 죽은 처의 제삿날[亡妻亡日]

舊哭新悲叢一辰 옛 곡소리 새로운 슬픔 모두가 한 때인데

又爲去國念家人 또 떠나게 된 고향 집사람 생각한다.

古今窮獨誰相及 고금의 궁색한 홀아비인데 누가 미쳤다 하리오.

餘外酸幸不可倫 남은 슬픔과 고통 비교할 수 없다.

惟有向途安受命 오직 운명이라 여기고 편히 길을 향해 따르리라.

更無他事以傷身 다시는 다른 일로 상한 몸이 되지 않으리.

雖知罪惡鬼誅慘 비록 나의 죄악은 귀신이 베어갈 참혹함인 줄 아노라.

庶自來時求得仁 부디 다시 올 때는 덕이 있고 명(命)이 길기를 바라오.

● 조선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며, 현대 한국학의 시조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죽은 처의 기제사날, 새벽녘 들판에 나가서 혼자 울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새벽하늘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 두 별은, 서로 반짝이며 서쪽 하늘에 걸려있는데, 직녀가 된 안사람이 흘린 눈물, 서리가 되어 내렸는지 까마귀도 춥다고 울고나. 나는 허허 벌판에 나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운다네. 멀리 불어오는 바람아! 나의 슬픔과 애달픔을 안사람이 있는 하늘에 전해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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