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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새누리당 정종섭의원을 만나다.: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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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새누리당 정종섭의원을 만나다.

편집부 | 기사입력 2016/07/13 [20:51]

[인터뷰]새누리당 정종섭의원을 만나다.

편집부 | 입력 : 2016/07/13 [20:51]


[내외신문=김홍일 기자) 권력구조 개편에 중점을 둔 원포인트 개헌을 연내에 마쳤으면 합니다. 내년은 대선이 있어 개헌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국가혁신은 국민을 위한 것이었냐 합니다. 국민에게 국가혁신의 방향과 과정을 설명하여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혁신으로 새롭게 향상된 구가 모델에서 우리 미래세대가 지냈으면 합니다. (중앙일보 인터뷰한 기사 공유 ?/사진 중앙일보 전민규 기자)

 

서실(書室)에 들어선 느낌이다. 국회 의원회관 1016호실. 정종섭(59) 의원 방에는 벽마다 다른 느낌의 글씨가 걸려 있다. 본인 책상과 회의용 테이블 사이에는 병풍까지 놓였다. 그의 조상인 포은(圃隱) 정몽주의 대책문(對策文). 과거에 장원급제한 답안을 필사한 것이다. 정 의원에게는 출사표 같은 기운을 주는 글로 보인다. 정 의원도 이름난 명필이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달 30일 오후. 몇명의 가자들과 함께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 발언 파문 전이다. 그는 “요즘 이슈가 뭐냐”고 묻더니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차이와 면책특권의 필요성을 한참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야당 의원의 정권 의혹 제기로 면책특권 폐지가 거론된 적이 있다.

 

“옛날 대통령 부인의 옷과 신발을 따진 적이 있잖아요. 대통령 부인 옷 입는 것까지 간섭하느냐는 시비가 될 수 있어요. 공적 예산이 들어간 건 아닌지 물어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불체포특권은 이제 필요 없지만 면책특권은 다릅니다. 그런데 그걸 다 내려놓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는데, 한심한 짓입니다.”

그는 개헌론자다.

 

18대 국회 때는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와 함께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에 참여했다. 지금도 소위 ‘친박(親朴·친박근혜)’으로 분류되는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개헌을 외쳤다.

 

Q : 친박 중 유일하게 개헌을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A : “정치권에서 개헌 얘기를 하면 음모론부터 제기합니다. 색깔이나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민주화 이후 우리가 잘할 수 있었는데 안 풀린 게 무엇일까, 이것을 찾아내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역대 정부마다 통합을 외쳤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역 통합이 제일 중요합니다. 지역 갈등은 자원배분의 왜곡을 가져와 우리 국민 마음에 벽을 쌓습니다. 이 벽을 허물어야 한 단계 도약합니다.” 개헌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봇물이 터지듯 의견을 쏟아냈다.

 

“당장 필요한 것은 권력구조 문제인데, 세 가지가 있습니다. 4년 중임제 대통령제, 독일형 내각제, 대통령 직선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 역대 정부에서도 의견이 거의 모아졌습니다. 연구도 다 끝났고 조문까지 거의 다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젠 선택만 남았습니다.”

 

Q : 현행 헌법에 뭐가 문제입니까.

A : “제일 문제는 5년 단임제입니다. 단임제라서 책임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심판받을 기회도 없고. 대통령이 일을 하기에 임기가 너무 짧습니다. 출범 1년, 마지막 1년 빼고 사실상 일할 수 있는 기간이 3년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원래 그렸던 결과를 못 가져옵니다. 승자독식 구조라서 대통령 선거 끝난 뒤 승복의 문화가 없고 그다음 날부터 또 투쟁합니다.”

 

Q : 대통령 직선내각제고 표현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지하는 이유는.

A : “4년 중임 대통령제는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고 5년 단임제 약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국민통합인데, 4년 중임제로 가서 한쪽에서 8년 하고 나면 지역이 완전히 갈라져서 심각한 상황이 됩니다. 대통령 직선내각제로 가면 공존의 정치 틀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Q : 대통령은 ‘블랙홀’이라면서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A : “헌법 개정하자면서 모든 것을 다 얘기하자고 하면 복잡해집니다. 내년까지 끌고 가면 헌법 개정이 안 될 뿐 아니라 대선후보자들이 정해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블랙홀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오히려 개헌 논의를 안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올해 안에 합의점을 만들어내면 됩니다.”

 

Q : 청와대에 건의해본 적이 있습니까.

A : “허허… 그런 거 없습니다. 우선 이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제가 봤을 때 중요 합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발전을 생각하면 국정혼란 우려는 해소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 김무성 전 대표처럼 질책은 안 들었습니까.

A : “그런 거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고, 대통령 직선내각제를 말해왔습니다. 그게 무슨 계파별로 갈라질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Q : 연내 개헌하려면 대통령이 반대하는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A : “역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많이 있었는데도 그때마다 대통령이 흔쾌히 동의해 주지 않아 진행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도 청와대에서 반대합니다. 전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그 논의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제일 중요한 건 헌법 개정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민입니다. 국민을 납득시켜 국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Q : 개헌 논의가 진행되면 정계 개편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없습니까.

A : “그건 어떻게 볼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직선내각제라고 했을 때는 경우에 따라 정계개편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연정이 가능한 틀이기 때문에 정당이 3~5개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것이고, 서로 어떻게 연대하고 결합할지 열려 있다고 봅니다. 유럽과 같이 다당제로 연정이 되면서 정국이 안정되는 형태로 갈 겁니다.”

 

Q : 개헌과 선거법 개정이 맞물려가야 하는지.

A : “그렇죠. 지금 소선거구제로선 좀 문제가 있죠. 권력구조만 바꿔줘도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가 된다고 봅니다. 소선거구제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1구 3~5인제로 가면서 선거구도 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Q : 국회의원과 대통령 임기는 어떻게 하는지.

A : “반드시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총선하고 대선이 오히려 어긋나는 것이 중간 평가적 성격을 가지게 되고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 개헌이 된다면 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어떻게 되나요.

A : “그것은 개헌하고 관련시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역대 대통령이 다 물러난 뒤 어떤 정치적 지위와 영향력을 가질지 검토했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난 대통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부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대통령도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봐야죠.”지난 4·13 총선 때 그는 ‘진박(眞朴)’ 후보로 대구 동구 갑에 출마했다. 공천에 떨어지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북고 동기 류성걸 전 의원과 경쟁했다. 동구 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유승민 의원은 고교 동기다.

 

Q : 총선 실패가 정체성 혼돈 때문이라고 했죠.

A : “원인이 여러 가지 있을 텐데, 새누리당이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제대로 기능하느냐 하는 문제를 지적한 겁니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없었고 당 운영·소통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정체성 위기가 있는데, 이게 견고하지 않아 몇 가지 변수에도 정당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겁니다.”

 

Q : 유승민 의원의 정체성이 그렇게 다릅니까.A : “그건 오히려 사소한 문제입니다. 새누리당이 우파 정당으로서 정책노선이나 이념, 이걸 정말 분명하게 국민에게 제시했느냐, 그런 이념에 따라 정책 하나하나를 다 섬세하게 디자인했느냐, 그게 정체성입니다.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이런 상황이 온 겁니다.”

 

Q : 임기 4년 동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뭡니까.

A : “제가 평생 하던 것이 국가개혁 문제입니다. 국회 개혁을 하고 싶었는데 그와 관련해 법률개정안을 꾸준히 낼 겁니다. 그다음에 새로운 형태의 국가 모델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좀 더 천착하려 합니다. 국내적으로는 30년 동안 고민해 온 지역 통합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경북 경주 출신인 그는 광주 출신으로 전남대 의대를 나온 안영안씨와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가능한 한 다른 도 출신과 결혼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과 건국대·서울대 교수, 서울대 법학대학원장,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S BOX]

“시서화에 능하고, 정치 개혁 해보려 한 소동파 좋아해” 정 의원은 한글보다 한자를 먼저 배웠다. 한학자인 선친 정병찬씨에게 한문과 글씨를 배웠다. 조선시대 정연(鄭沇)과 정충필(鄭忠弼) 같은 명필이 그의 조상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서예에 재능이 있었다. 국내에는 서예에 대한 체계적 이론서가 없어 일본과 중국의 책을 구해 읽으며 독학했다. 중국의 각종 명필들을 공부했다. 이들과 자주 교류하고, 이들과 서로 선물한 글을 걸어놓았다.

 

“마지막에는 자기 성격하고 비슷하게 갑니다. 기본적으로는 다시 왕희지로 돌아가는 거죠. 송의 미불(米?), 명의 동기창(董其昌) 하지만 결국 많은 명필이 왕희지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여전히 저도 그렇죠.”

그는 손재주로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서예에 대한 체계적 공부와 동서양의 지식에 대한 터득이 있어야 그 경지가 글씨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가 유·불·선(儒·佛·仙) 동양 삼교에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갑골문과 종정문에 관심을 갖고 전각도 직접 한다.

 

그는 법첩(法帖) 제작과 서예박물관 활성화에도 앞장섰다.

그는 명산대찰의 현판들을 썼다. 부산 범어사(祖師殿), 대구 대견사(大見寶宮), 동화사(靑虛堂), 강화도 전등사(無說殿) 등에 걸려 있다. 그가 한 기부행사에 낸 글을 본 한 전문가는 “유가와 불가의 가르침을 절묘하게 한데 표현했다”며 “최소 1000만원을 호가할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Q : 제일 좋아하는 글은.

A : “소동파(蘇東坡)입니다. 글씨도 좋고, 시도 좋고, 사(詞)도 좋고, 경세가로서도 현실정치에 참여했고, 소동파도 나름대로 개혁을 해보려고 했고 유교·불교·도교에 다 회통했고, 그러면서 예술의 경지에서도 대단한 수준으로까지 올라가서 저는 소동파를 최고로 칩니다.”

그의 소탈하고 핵심 있는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넓게 알게 되는 시간 이었다. 앞으로 기대하고 소통하는 정계의 한사람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되는 한사람으로 우뚝 서시길 바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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