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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은 쫄보들의 합창…‘팀 김어준’ ...반성이 없는 이유

1980년 광주에서 피신한 사람과 현장으로 뛰어든 사람들…44년 뒤 12·3 국회에서 되살아난 기억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위험이 지난 뒤 타인의 용기를 재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팀 김어준’을 바라보며 다시 묻게 되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영향력의 문제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6/10/01 [07:40]

욕심 많은 쫄보들의 합창…‘팀 김어준’ ...반성이 없는 이유

1980년 광주에서 피신한 사람과 현장으로 뛰어든 사람들…44년 뒤 12·3 국회에서 되살아난 기억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위험이 지난 뒤 타인의 용기를 재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팀 김어준’을 바라보며 다시 묻게 되는 민주주의와 정치적 영향력의 문제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6/10/01 [07:40]

'시골에서 흔히 보는 개 '시고르자브종' 들이 짖는 이유는 무서워서 라고 한다. 

 

이른바 ‘팀 김어준’을 둘러싼 최근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다소 거칠지만 ‘욕심 많은 쫄보들의 합창’이라는 표현과 함께 1980년 광주에서 목격했던 오래된 장면들이 떠오른다.

 

당시 13살이었던 필자가 바라본 광주에는 똑같은 공포를 마주하고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엄이 확대되고 상황이 급박해지자 서둘러 짐을 챙겨 광주를 떠나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있었다. 검문을 피하기 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국가폭력의 강도를 생각하면 그들의 선택을 오늘의 안전한 자리에서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체포와 고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현실이었던 만큼 살아남기 위해 피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사람들도 있었다. 광주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총성이 들리는 거리로 들어간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있었고, 부상자를 옮기거나 시민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현장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5·18 관련 공식 기록에도 학생과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의 참여와 희생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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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역시 그 현장에서 수많은 주검을 봤다.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시민들이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고 내 또래 어린 학생들의 주검도 봤다. 13살 소년에게 민주주의나 군부독재라는 말은 어려웠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지고 죽어가는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현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킨 시민군도 있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군이 중무장한 계엄군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도청에 남은 이유가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남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구를 두고 혼자 떠날 수 없어 남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분노와 책임감 때문에 남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을 목격해 더는 물러날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직업과 살아온 과정도 제각각이었다.

 

누군가의 과거가 거칠었다거나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마지막 순간 그가 보여준 행동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5·18의 정신은 완벽한 사람들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 각자의 이유로 행동하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필자의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이후의 모습이었다.

 

가장 위험한 시기에는 광주를 빠져나가 몸을 피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흐르고 정치적 환경이 달라지자 다시 정치권에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일부 인사들은 이후 군부정권과 가까운 정치권에서 활동하며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이들의 구체적인 행적은 개인별로 구분해 평가해야 하지만, 위험할 때의 선택과 이후 정치적 성공 사이의 대비는 당시 광주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남겼다.

 

그런데 문제는 5.18에서도 몸사려 도망간 쫄보들이 5.18에 목숨걸고 투쟁한 사람들의 과거를 가지고 조폭이어서 안됨 학력이나 살아온 이력으로 문제 삼는 내부에서 빅스피커를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런이유 때문에 5.18 부상자회 단체 활동도 그만 둔 경험이다.  물론 군대와 학교 진학 때문에 그만 둔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가장 큰 것은 도망갔던 쫄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5.18 기간에 엄청난 할동을 하는 사람들로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반성이 없었다. 왜 도망갔는지에 대해서 지금 12.3 이후 사건과 데자뷰 되는 것이 이것이다.

 

"쫄보들이 욕심도 많다" 

 

 44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무장 병력이 국회로 향했다. 국회 본청에 군 병력이 진입했고 직원과 보좌진은 바리케이드와 소화기 등을 이용해 진입을 저지했다.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모여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했다.

 

필자도 그날 국회 현장에 있었다. 13살 소년으로 광주의 총성을 들었던 사람이 57살이 돼 다시 군 병력이 움직이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5·18과 12·3은 역사적 배경과 전개 과정, 희생의 규모가 전혀 다른 사건인 만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는 점에서는 44년 전의 기억이 겹쳐졌다.

 

당시 시민들은 국회로 향했고 기자들도 현장을 찾았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직원들도 움직였다. 누구도 몇 시간 뒤 계엄이 해제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김어준 씨는 피신했다. 김 씨가 실제 체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할 만한 정황이 있었던 만큼 피신 그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위험을 느낀 사람이 몸을 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누구에게도 체포나 죽음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이후의 태도다. 가장 위험했던 순간 자신도 두려움을 느껴 몸을 피했다면 상황이 종료된 뒤 다른 사람의 정치적 용기와 진정성을 평가할 때는 그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

 

누가 진짜 민주주의자인지, 누가 이재명 대통령을 제대로 지지하는지를 거대한 마이크를 통해 재단하려 한다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다른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유시민 작가의 1980년 합동수사본부 진술서를 둘러싼 이른바 ‘77명’ 논쟁 역시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심재철 전 의원 측의 주장과 유 작가의 반박이 충돌하고 있는 만큼 이를 ‘77명을 불었다’고 확정된 사실처럼 규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국가폭력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을 경험했다면 훗날 다른 사람의 용기와 선택을 평가할 때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남는다.

 

최근 새로운 이재명 지지층이 등장하면서 기존 정치 유튜브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현상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존 민주당 문화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시민이 있을 수 있고, 김어준이나 유시민, 최욱의 정치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정부를 지지할 수 있다. 다양한 지지와 비판이 공존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목소리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경계한다면 ‘욕심 많은 쫄보들의 합창’이라는 거친 비판이 등장하는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12·3 당시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는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생각이 커지는 것, 새로운 지지층이 등장하는 것, 오랫동안 유지해온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욕심 아닐까? 

 

1980년 광주에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떠난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총성이 들리는 현장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은 사람들의 이유 역시 하나가 아니었다. 2024년 12월 3일에도 사람들의 선택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그날 이재명은 목숨을 걸고 방송을 통해 12.3 계엄을 알리고 생방송을 했다. 그것 하나로 당신들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후 전개 된 과정은 산넘고 물건너 피난 간 사람들이 자기들이 다 한것처럼 목숨을 걸고 사랑한것처럼 한다는 것에 느끼는 감정은 다시한번 말 하지만 "쫄보들아 정신차려"를 외치고 싶다. 

 

그리고 겁나면 짓는 시고르자브종처럼 그만좀 짖어라... 시끄럽다. 

 

물론 두려움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위험한 순간의 자신의 선택은 잊은 채 상황이 끝난 뒤 다른 사람의 용기를 평가하고, 과거의 공로를 근거로 현재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독점하려 한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13살의 필자는 광주에서 사람의 말보다 행동이 먼저 기록되는 것을 봤고, 57살이 된 뒤 12·3 국회에서 다시 비슷한 질문과 마주했다. 결정적인 순간 역사가 기록하는 것은 누가 가장 큰 마이크를 가지고 있었느냐가 아니라 결국 누가 어디에 있었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느냐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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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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