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인천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다

4대손 이콘스탄틴 씨 등 독립유공자 후손 23명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인천 함박마을에서 일자리와 가정 꾸려…지역사회 지원으로 정착 기반 마련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는 국가 공동체를 지키는 역사적 책임”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6/08/14 [08:00]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후손, 인천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다

4대손 이콘스탄틴 씨 등 독립유공자 후손 23명 대한민국 국적 취득

인천 함박마을에서 일자리와 가정 꾸려…지역사회 지원으로 정착 기반 마련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는 국가 공동체를 지키는 역사적 책임”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6/08/14 [08:00]

[내외신문/전용현 기자]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평생을 바친 최재형 선생의 후손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인천으로 이주해 10년 동안 삶의 터전을 일군 이콘스탄틴 씨는 이제 법적으로도 선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조국의 국민이 됐다.

 

법무부는 13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23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광복 81주년을 앞두고 열린 이날 행사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4대손 이콘스탄틴 씨도 참석했다.

 

기존 우즈베키스탄 국적이었던 이콘스탄틴 씨는 국적증서를 받아 든 뒤 “조국을 위해 힘쓴 할아버지의 업적을 잘 알고 있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는 사실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목표로 거창한 성공이나 명예가 아닌 가족의 행복을 꼽았다. 이콘스탄틴 씨는 “이제 남은 목표는 인천에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이라며 인천을 자신의 새로운 고향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드러냈다.

본문이미지

▲ 최재형 독립투자 (사진=위키피디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후손 통해 조국과 다시 연결되다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다. 1860년 태어나 1920년 순국할 때까지 자신의 재산과 삶을 조국 독립과 한인 공동체를 위해 바쳤다.

 

그는 연해주 지역에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지원하고 독립운동 조직과 의병 활동을 후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인들을 보살피고 독립운동가들에게 활동 자금을 지원하면서 연해주 한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최재형 선생은 독립운동가들을 따뜻하게 품고 지원했다는 의미에서 러시아식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로 불렸다.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러시아 혁명,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거치는 동안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아야 했다. 선조가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후손들은 오랜 세월 조국과 떨어진 채 낯선 땅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콘스탄틴 씨의 대한민국 국적 취득은 한 개인의 귀화를 넘어 일제의 탄압과 강제이주로 단절됐던 독립운동가 후손과 조국의 관계가 다시 이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최재형 선생이 지키려 했던 나라가 이제 그의 후손을 국민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인천 함박마을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

 

이콘스탄틴 씨는 한국 생활 10년 차로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함박마을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이 생활하는 인천의 대표적인 다문화 지역이다.

 

그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출신 노동자들을 국내 사업장과 연결하는 인력 알선 회사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역할도 맡고 있다.

직장 동료로 만난 아내와 가정을 꾸렸으며 지난해에는 아들 미카엘이 태어났다. 국적증서 수여식에도 아들과 함께 참석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맞는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더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일상은 녹록지 않다. 쉬는 날이 일요일뿐이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녁 늦게 돌아오는 날이 많다. 귀가할 때면 어린 아들이 이미 잠들어 있어 미안함과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나타냈다. 선조가 독립을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가족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는 인천 지역사회의 도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적증서 수여식에는 최재형 선생의 또 다른 4대손인 최일리야 씨도 참석해 이콘스탄틴 씨의 새 출발을 축하했다.

 

최일리야 씨는 최재형 선생의 친증손이며, 이콘스탄틴 씨는 외증손으로 두 사람은 친척 관계다. 최일리야 씨는 현재 인천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이며 올해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다.

 

인천대학교는 최일리야 씨가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수술이 필요했지만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을 당시에는 인천시와 지역 의료기관이 수술비 등을 지원했다.

 

최일리야 씨는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취업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나의 뿌리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 시혜 아닌 국가의 책무

 

최재형 선생 후손과 대한민국의 인연은 인천에만 머물지 않는다.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세르게이 헤가이 씨도 광복절 경축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세르게이 헤가이 씨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하며 조부의 독립운동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그와 가족들은 루마니아에서 한국 음식 관련 사업을 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세계 곳곳에서 한국과 연결되고 있지만 국내 정착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다. 언어와 일자리, 주거와 의료, 교육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는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일회성 기념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안정적인 체류와 국적 취득, 교육과 취업, 주거와 의료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문영숙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존중하는 문화가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문 이사장은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우대하는 보훈 문화가 정착돼야 나라가 위기에 놓였을 때 국민들이 기꺼이 나설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며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향한 예우는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콘스탄틴 씨에게 대한민국 국적증서는 단순한 신분 변화가 아니다. 선조의 희생으로 되찾은 조국과 후손이 다시 연결됐다는 역사적 증표이자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출발점이다.

 

 

인천 지역사회가 최재형 선생 후손들의 학업과 의료, 정착을 지원한 사례는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기념일에 선열의 이름을 부르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살아 있는 보훈이자 국가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다.

이 기사 좋아요
기자 사진
내외신문 인천본부 기자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