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문/유향연 기자] 전력 생산도시 인천이 서울·경기와 다른 산업용 전기요금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기존 수도권·비수도권·제주 등 3개 권역이 아닌 전력자립도와 송전비용을 반영한 4개 등급으로 설계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면서다.
인천은 수도권에서 전력자립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2025년 기준 인천의 전력자립도는 171%로,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력보다 71% 많은 전기를 생산했다. 서울의 전력자립도가 6.8%, 경기도가 59.2%에 머문 것과 비교하면 인천의 전력 생산 기여도는 압도적이다.
인천에서 생산된 전력의 상당 부분은 송전망을 통해 서울과 경기지역으로 공급된다. 그런데도 인천은 그동안 전력 소비도시에 가까운 서울·경기와 동일한 전기요금을 부담했다. 발전시설이 밀집한 지역의 환경적·사회적 비용은 인천시민이 감당하면서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별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셈이다.
전력 생산도시가 감당해 온 구조적 불이익
인천에는 수도권 전력의 20∼30%를 생산하는 영흥화력발전소를 비롯해 서인천·신인천·인천 등 대규모 복합화력발전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발전시설은 수도권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뒷받침해 왔지만, 인천지역에는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 송전시설 설치, 주민 건강권 침해 등 상당한 부담을 남겼다.
특히 영흥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옹진군 영흥도 주민들은 오랜 기간 석탄화력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대기오염물질, 발전소 주변 환경 변화에 노출돼 왔다. 인천지역 사회가 차등요금제를 단순한 산업지원 정책이 아니라 발전시설로 인한 희생을 보상하는 제도로 바라보는 이유다.
기존 정부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제주를 기준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전력을 많이 생산하는 비수도권의 요금은 낮추고 소비가 집중된 수도권의 요금은 높여 기업과 산업시설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인천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경기와 함께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하게 된다.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력보다 훨씬 많은 전기를 생산하면서도 전력 소비도시와 동일한 규제를 받는 또 다른 역차별이 발생하는 구조였다.
인천시는 물론 지역 정치권과 산업계가 전력자립도를 기준으로 요금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요구해 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행정구역상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력 생산량과 환경적 부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4등급 차등요금제가 바꿀 인천의 산업지도
정부는 기존 권역 중심의 차등요금제에서 벗어나 지역별 전력자립도와 송전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4등급 체계를 검토하고 있다. 전기를 얼마나 생산하는지, 생산된 전력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송전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지를 요금 산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인천은 서울·경기 남부보다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분류보다 실질적인 전력 생산 기여도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는 지역 제조업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천에는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한국지엠을 비롯해 남동·주안·부평국가산업단지의 수많은 제조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철강·자동차·기계·금속·반도체 관련 업종은 전력 사용량이 많아 전기요금 변동에 민감하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서울·경기보다 낮게 책정되면 기존 기업의 생산비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바이오, 첨단 제조시설 등 전력 다소비 산업을 유치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발전소가 집중된 데 따른 부담이 산업경쟁력이라는 실질적인 혜택으로 환원되는 구조가 마련되는 것이다.
다만 인천의 전기요금이 비수도권 발전지역과 같은 수준으로 낮아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정부가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를 함께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이 서울·경기보다 낮지만 주요 비수도권 발전지역보다는 높은 이른바 ‘제3의 요금제’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인천·경기 북부 묶은 별도 요금체계 가능성
수도권 내부를 인천·경기 북부와 서울·경기 남부로 구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인천과 경기 북부에는 대규모 화력·복합화력발전소가 집중돼 있는 반면, 서울과 경기 남부는 상대적으로 발전설비가 부족하고 전력 소비가 많은 지역이라는 점에서다.
경기 북부의 포천·동두천·파주에는 발전설비용량 100만㎾가 넘는 대규모 복합화력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인천과 경기 북부는 수도권 전력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반면 서울과 경기 남부는 대규모 발전소보다 중소형 열병합발전소를 중심으로 전력 생산시설이 구성돼 있다. 산업과 인구가 밀집해 전력 수요는 많지만 자체 생산능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 지역을 하나의 요금권역으로 묶는 것은 차등요금제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인천과 경기 북부를 별도의 요금등급으로 분류하면 차등요금제는 단순한 수도권·비수도권 구분을 넘어 실제 전력 생산과 소비 구조를 반영하는 제도로 발전할 수 있다. 전력 생산지역에는 낮은 요금을 적용하고, 소비가 집중된 지역에는 송전망 이용과 계통 부담에 따른 비용을 더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8월 중 지역별 차등요금제 공청회를 열고 구체적인 시행기준과 요금등급 산정 방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천의 전력자립도와 환경피해, 수도권 전력 공급 기여도가 어느 수준까지 반영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차등요금제는 전기요금의 일부를 낮추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발전지역 주민에 대한 환경·건강 지원, 노후 발전시설의 친환경 전환, 재생에너지와 분산전원 확대, 산업단지 에너지 효율화 정책까지 연결돼야 한다. 인천에서 생산한 전력을 인천의 산업과 시민이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에너지 자립 구조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기를 생산하지 않는 지역과 대규모 발전시설을 감당해 온 지역이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는 체계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인천에 대한 차등요금 적용은 수도권 특혜가 아니라 전력 생산 기여도와 환경적 희생을 요금에 반영하는 에너지 정의의 문제다. 정부의 4등급 차등요금제가 인천의 오랜 역차별을 해소하는 실질적인 제도로 설계될지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