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휴가 교통비까지 걱정하는 이재명 대통령...섬김의 정치와 abc로 분류하는 정치이재명 정치가 보여준 시민을 섬기는 정치와 시민을 분류하는 정치의 차이이재명 정치가 보여준 시민을 섬기는 정치와 시민을 분류하는 정치의 차이는 어제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재명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은 단순한 안보 행보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드러난 것은 최전방을 지키는 장병들의 현실을 듣고, 그 불편을 국가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의 태도였다. 이 대통령은 연평도를 찾아 해병대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병사들이 휴가를 나올 때 교통비로 약 11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민원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인천시민들은 같은 여객선 이동에서 2,500원 수준의 비용만 부담한다는 점이 함께 제기됐다. 이후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인천시민에게 적용되는 혜택을 최전방 병사들에게도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면은 작아 보이지만, 정치의 본질을 선명하게 비춘다. 병사의 휴가 교통비는 거대한 국정 의제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바로 이런 작고 구체적인 불편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가를 지키는 청년이 휴가를 나오기 위해 11만 원의 교통비를 감당해야 하고, 같은 지역의 시민에게는 2,500원의 혜택이 제공된다면, 그 차이를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마땅히 살펴야 할 문제로 볼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시민을 섬기는 정치와 시민을 분류하는 정치는 갈라진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국민에게 먼저 묻는다. 무엇이 불편한가. 어디에서 막히는가. 어떤 부담이 생활을 짓누르는가. 국가가 어떤 부분을 덜어줘야 하는가.
연평도 해병대 병사들의 교통비 문제는 바로 그 칸막이를 흔든다. 병사는 군복을 입은 순간 시민이 아닌 존재가 되는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편의에서 밀려나도 되는가. 최전방에서 복무하는 청년들이 휴가를 나오는 길에 과도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사정이 아니라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공적 과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를 놓치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언급했다는 점은 그의 정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거창한 의전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병사 한 명의 배표 값에서 국가의 책임을 발견하는 정치다. 행정의 칸막이 바깥에 놓인 불편을 찾아내고, 그 불편이 부당하다면 바로 고치려는 정치다. 누군가에게는 11만 원이 작은 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병사에게는 다르다. 최전방에서 복무하다가 어렵게 얻은 휴가,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는 11만 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경제적 부담이면서 동시에 국가가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대한 체감이다.
강한 안보는 무기체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병사의 삶을 존중하는 국가 운영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전투력은 장비와 훈련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국가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신뢰, 복무의 희생을 국가가 기억하고 있다는 감각, 불편을 말하면 행정이 듣고 움직인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병사의 휴가 교통비를 걱정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래서 단순한 복지 행정이 아니라 안보 행정의 핵심을 건드린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안보는 자주 구호로 소비됐다. 누가 더 강한 말을 하는가, 누가 더 적대적인 표현을 쓰는가, 누가 더 엄격한 이미지를 보이는가가 안보의 기준처럼 다뤄졌다. 그러나 진짜 안보는 최전방 병사의 생활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병사의 밥, 잠자리, 의료, 휴가, 교통, 가족과의 연결은 모두 국방의 일부다. 군인을 국가의 도구로만 보는 정치는 안보를 말하지만 병사를 보지 않는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안보를 말할 때 먼저 병사의 얼굴을 본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처럼 추상적 구호보다 생활의 세목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그의 정치는 시민의 체감과 연결되는 행정 사례를 만들어왔다. 계곡 불법시설 정비가 그랬고, 지역화폐 정책이 그랬으며, 수술실 CCTV 논의 역시 그러했다. 계곡 정비는 자연을 특정 업자의 사유물처럼 방치하지 않고 시민 모두의 공유 자산으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지역화폐는 대형 유통망과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소비를 지역 안에 머물게 하고, 시민과 소상공인의 생활을 동시에 살피는 정책이었다. 수술실 CCTV 논의는 환자와 가족의 불안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인 사례였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재명식 정치는 시민의 삶에서 출발한다. 시민이 어디서 불편을 겪는지, 어떤 구조가 시민을 밀어내는지, 행정이 움직이면 어떤 권리가 회복되는지를 본다. 계곡의 바가지요금도, 골목상권의 매출 절벽도, 수술실 안의 불안도, 연평도 병사의 휴가 교통비도 모두 같은 정치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가는 시민의 삶을 편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시민에게 알아서 견디라고 말하고 있는가.
반대로 시민을 분류하는 정치는 이런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병사는 군인이라는 행정 범주로 들어가고, 인천시민은 주민이라는 범주로 들어가며, 섬 지역은 별도의 교통정책 범주로 들어간다. 각자 다른 칸에 들어가면 그 사이의 불평등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2,500원에 이동하고, 누구는 11만 원을 부담하는 현실이 있어도, 행정은 “소관이 다르다”는 말 뒤에 숨을 수 있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바로 이 틈을 들여다본다. 칸막이 사이에 떨어진 사람을 다시 국가의 책임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시민을 자기편과 상대편으로 나누는 정치도 같은 문제를 낳는다. 그런 정치는 국민의 생활보다 정치적 소속을 먼저 본다. 지지하면 보호받을 시민이고, 비판하면 상대 진영의 사람으로 취급한다. 자신을 찍은 사람은 국민이고, 자신을 반대한 사람은 장애물처럼 여긴다. 그러나 대통령의 책임은 지지자에게만 있지 않다. 대통령은 자신을 찍은 사람, 찍지 않은 사람, 아직 판단을 유보한 사람, 비판하는 사람, 침묵하는 사람 모두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국가의 손길은 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연평도 해병대 병사들의 휴가 교통비 문제는 이 점에서도 상징적이다. 그 병사들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최전방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다.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시민이다. 그들이 겪는 불편을 대통령이 듣고, 그 불편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특정 진영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응답이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국민을 주권자로 본다. 주권자는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이다. 국가는 주인의 불편을 들어야 한다. 민원은 귀찮은 요구가 아니라 행정이 놓친 현실의 신호다. 특히 군 장병의 민원은 더욱 그렇다. 병사들은 위계와 통제 속에서 생활한다. 자신의 불편을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런 병사들의 목소리를 대통령이 직접 듣고,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면 그것은 생활정치의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가 ‘시민을 섬기는 정치’로 불릴 수 있으려면 앞으로도 이런 태도가 이어져야 한다. 병사의 교통비 문제를 언급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제도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서해5도와 접경지역 장병의 교통비 부담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국방부와 해양수산 관련 부처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 복무 지역에 따른 불평등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까지 구체적 행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말의 따뜻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제도의 변화로 증명되어야 한다.
정치의 차이는 위기 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하루의 불편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정확히 드러난다. 병사가 휴가를 나오기 위해 배표를 끊는 순간, 자영업자가 카드 수수료를 계산하는 순간, 청년이 월세를 송금하는 순간, 노인이 병원 접수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순간, 시민은 국가가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체감한다. 정치가 그 순간을 외면하면 아무리 큰 구호도 공허하다. 반대로 정치가 그 순간을 붙잡으면 국가는 시민의 삶 안으로 들어간다.
시민을 분류하는 정치는 빠르고 자극적이다. 갈라치기는 즉각적인 반응을 만든다. 분노는 쉽게 퍼지고, 적대는 지지층을 단단하게 묶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정치는 사회를 오래 버티게 하지 못한다. 시민을 계속 나누면 공동체는 약해진다. 청년과 노년이 서로를 의심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원망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서로를 탓하고,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점점 마른 나무가 된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느려 보일 수 있다. 병사의 교통비, 소상공인의 매출, 환자의 불안, 섬 주민의 이동권, 청년의 주거비 같은 문제를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린 정치가 국가를 단단하게 만든다. 정치는 시민의 삶을 분류표에 넣는 일이 아니라, 그 삶의 엉킨 매듭을 풀어내는 일이다. 때로는 배표 한 장이 정치의 품격을 보여준다. 때로는 11만 원과 2,500원의 차이가 국가관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재명 대통령의 연평도 방문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최전방 장병도 시민이다. 군복을 입은 시민이다.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는 시민이다. 그들의 불편을 국가가 듣고, 그 부담을 줄이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책무다. 병사의 휴가길을 덜 무겁게 만드는 일은 국방을 약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일이다. 국민을 존중하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시민을 더 잘 나누는 기술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시민을 더 넓게 품는 정치다. 자기편과 상대편을 가르는 정치가 아니라, 불편을 겪는 국민과 국가가 응답해야 할 문제를 먼저 보는 정치다. 지지자에게만 따뜻한 정치가 아니라, 반대자와 무관심한 시민에게도 행정의 혜택이 닿는 정치다. 대통령의 책무는 국민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것이다.
해병대 병사의 휴가 교통비까지 걱정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래서 하나의 정치적 상징이 된다. 그 상징은 큰 구호보다 작지만 강하다. 국가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정치인은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대통령은 누구의 불편을 먼저 살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생활정치는 시민을 섬기는 정치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는 결국 시민의 하루를 바꾸는 일이다. 병사의 배표 값, 시민의 장바구니, 청년의 월세, 노인의 병원비, 자영업자의 임대료, 노동자의 출퇴근길이 정치의 현장이다. 시민을 분류하는 정치는 이 현장을 진영의 언어로 덮는다. 시민을 섬기는 정치는 그 현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연평도에서 들려온 해병대 병사들의 교통비 민원은 그 차이를 또렷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앞으로도 이 원칙을 지켜간다면, 그의 정치는 단순한 민생 구호를 넘어 국가 운영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시민을 주인으로 보는 정치, 군복 입은 시민의 불편까지 살피는 정치, 자기편과 상대편의 칸막이를 넘어 모든 국민을 섬기는 정치. 지금 한국 정치가 회복해야 할 이름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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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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