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식 민정 수석임명....이재명 대통령식 결단검찰개혁, 구호보다 효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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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수 기자 |
검찰개혁은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쥐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비판은 오래된 문제였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도 정당하다.
그러나 개혁의 방식은 이제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권한을 검찰에서 다른 기관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국민이 개혁을 체감하기 어렵다.
검찰 권한을 줄였는데 경찰 권한이 비대해지고, 사건 처리가 지연되며, 피해자 보호가 약해진다면 그것은 국민에게 성공한 개혁으로 보이지 않는다.
개혁은 권력기관 내부의 권한 배분표가 아니라 국민이 실제로 경험하는 사법 서비스의 질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실용 노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중도는 단순히 좌우의 가운데에 서겠다는 뜻이 아니고, 실용은 원칙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재명식 실용주의의 핵심은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진영의 언어보다 성과의 언어를 앞세우고, 정치적 상징보다 행정적 결과를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검찰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더 개혁적인가”보다 “어떤 제도가 국민에게 더 안전하고 공정한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
올해 말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되는 흐름 속에서 검찰개혁은 선언의 단계를 넘어 실제 운영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중수청이 만들어지면 검찰, 경찰, 공수처, 새 수사기관 사이의 권한 조정이 핵심 과제가 된다.
수사 공백을 막고, 중대범죄 대응력을 유지하며, 사건 처리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제도가 아무리 개혁적 명분을 가져도 현장에서 혼선이 생기면 국민은 불편과 피해를 먼저 느낀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개혁의 순도 경쟁이 아니라 개혁의 효능감을 높이는 설계다.
한찬식 민정수석 임명 논란도 이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개혁 진영의 우려는 이해할 수 있다. 검찰 출신 인사가 민정수석에 임명되는 데 대한 경계심도 정치적으로 자연스럽다.
그러나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의제 관리자라기보다 국가 전체의 운영자다. 민정수석 인사는 공직기강, 권력기관 관리, 법률 리스크 조정, 국정 안정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자리다. 특히 중수청 출범을 앞둔 시기라면, 새 제도를 현실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찬식 인사를 단순히 진영 정서에 맞는가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이 인사의 의도는 중수청 신설이라는 복잡한 제도 전환을 효능감 있게 진행하려는 데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수청이 생기면 수사기관 간 충돌, 사건 이첩 기준, 중대범죄 수사 역량, 검찰과의 관계 설정 등 세밀한 조율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법률 실무와 권력기관의 생리를 아는 인물을 배치해 제도 전환의 마찰을 줄이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정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개혁의 깃발만 높이 드는 정치가 아니다. 국민은 묻는다. 내 사건은 더 공정하게 처리되는가.
범죄 대응력은 떨어지지 않는가. 피해자는 더 빨리 보호받는가. 권력기관의 오만은 통제되는가. 국가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혁은 공허하고, 이 질문에 답하는 실용은 그 자체로 개혁이다. 이재명식 성과정치는 검찰개혁을 버리는 노선이 아니라, 검찰개혁을 국민이 체감하는 제도로 완성하려는 접근이다.
한찬식 민정수석 논란은 그래서 단순한 인사 논란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재명 정부가 진영의 박수보다 국민의 체감 성과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시작이다.
올해 말 중수청 출범을 앞둔 지금, 필요한 것은 상징의 정치가 아니라 현실에 가장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뽑는 것이다고 본다.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 개혁은 국민의 삶으로 내려와야 한다. 중수청이 국민에게 더 빠르고 공정한 사법 시스템으로 체감될 때, 검찰개혁은 비로소 구호를 넘어 성과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