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가 노무현재단 상임고문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뒤, 정치권과 지지층 안팎에서 여러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누구 좋으라고 떠나시냐”며 유 작가가 굳세게 재단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오랫동안 노무현 정신을 말해온 유시민이라는 이름이 재단에서 물러난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허전함과 상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조금 다르게 되물어야 한다. 누구 좋으라고 떠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국민들 좋으라고 떠나는 것이다. 시민들 좋으라고 떠나는 것이다. 노무현재단을 더 이상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세우지 않기 위해, 재단이 특정 인물의 말과 행동 때문에 공격받는 구조를 끊기 위해, 스스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얼굴이다.
유시민 작가는 늘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말은 날카롭고, 문장은 분명하며, 정치적 해석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힘이면서 동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 작가 개인의 비평 활동과 노무현재단의 공적 역할이 자꾸 한데 묶이는 순간, 재단은 본래의 목적보다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기 쉽다.
유 작가가 이를 의식하고 물러나겠다고 했다면,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재단을 지키겠다는 선택으로 읽을 수 있다.
노건호 씨의 입장문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 혈연관계가 아니라 시민과 정치적 동지들에게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은 국민의 것이고 시민의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 갇혀서는 안 되며, 특정 정치세력이나 특정 인물의 소유물처럼 소비되어서도 안 된다는 선언에 가깝다.
노무현 정신의 핵심은 권위의 해체, 시민의 참여, 민주주의의 확장에 있었다. 그렇다면 노무현재단 역시 누군가의 개인적 상징 자산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지켜야 할 공적 기억의 공간이어야 한다.
유시민이 있기에 재단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있기에 재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유시민이라는 인물이 떠난다고 해서 노무현 정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재단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재단이 특정 인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민적 기반 위에 서야 한다는 과제가 분명해졌다.
최민희 의원의 말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누구 좋으라고 떠나시냐”는 말은 유시민을 향한 신뢰와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애정과 공적 판단은 구분되어야 한다. 유시민이 남는 것이 당장은 지지층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음으로써 재단이 계속 정치적 공격의 표적이 되고, 노무현 정신이 특정 진영의 논쟁 속에 갇힌다면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니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들 좋으라고, 재단 좋으라고, 노무현 정신을 더 넓게 살리려고 떠나는 것이다.
물러남은 패배가 아니다. 때로는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자리를 비우는 일이 더 큰 책임일 수 있다. 정치적 상징이 된 인물이 스스로 물러날 때, 그 빈자리는 허전함만 남기지 않는다. 그 자리에 시민의 몫이 생긴다. 노무현재단이 진정 시민의 것이라면, 이제 시민들이 더 넓게 참여하고 더 투명하게 감시하며 더 성숙하게 운영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노건호 씨의 말처럼 재단은 국민들의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재단은 국민의 신뢰 위에 서야 한다. 특정 인물이 재단을 대표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의 기억과 참여가 재단을 떠받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유시민 작가의 퇴장은 그 자체로 아픈 장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재단이 다시 시민적 공공성의 자리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누구 좋으라고 떠나느냐”는 질문은 이제 이렇게 답해야 한다. 국민들 좋으라고 떠나는 것이다. 재단이 더 이상 개인의 이름에 의존하지 않도록, 노무현 정신이 더 이상 정쟁의 미끼가 되지 않도록, 시민의 재단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유시민다운 책임이고,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