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국민의힘 쇄신안이 발표됐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그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7일 논평을 통해 “비상계엄에 대한 반성과 책임 인식이 결여된 사과는 쇄신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며 국민의힘 지도부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중앙당사에서 장동혁 당 대표 명의로 ‘이기는 변화’를 주제로 한 쇄신안을 발표했다. 쇄신안에는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와 함께 당명 개정, 청년 중심 정당, 전문가 네트워크 정당, 국민 공감 연대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다가오는 6·3 지방선거 승리를 도모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형식상으로는 계엄 관련 사과가 처음으로 포함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경실련은 “시기와 내용 모두에서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경실련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1년이 넘도록 국민의힘이 보여온 행보를 문제 삼았다.
비상계엄이 문제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탄핵에는 반대하고, 지도부가 윤 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흐름과 결합해 각종 논란을 자초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사과는 너무 늦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의 언행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사과문에 담긴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는 표현에 대해 경실련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비판했다.
비상계엄이 헌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국회의 해제 요구를 무시한 채 권한이 남용됐다는 핵심 쟁점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헌법 질서 훼손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회피한 채 형식적 유감 표명에 그쳤다는 평가다.
경실련은 이번 사과가 지방선거를 약 180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책임 인식에서 비롯된 사과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계산된 행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함께 제시된 청년·전문가·연대 중심 정당이라는 쇄신 방향 역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성찰이나 제도적 책임 규명과는 분리된 채, 선거 승리를 목표로 한 전략적 구호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일정이 없는 슬로건은 과거 선거 때 반복돼 온 공허한 약속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당명 개정 추진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져 온 개명 과정이 보여주듯, 이름을 바꾸는 방식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공천 비리 논란과 책임 문제를 외면한 채 간판만 교체하는 것은 오히려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실련은 실질적인 쇄신을 위해서는 공천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역 국회의원의 지역위원장 겸직 금지, 공천관리위원회 외부 인사 과반 구성, 중대 비위자에 대한 예외 없는 공천 배제, 후보자 심사 점수의 전면 공개, 단수 공천에 대한엄격한 통제 장치 마련 등 이른바 5대 공천 개혁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다.
이는 공천 과정에서 특정 인물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구조를 차단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당원 중심 정당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지도부 중심의 하향식 운영이 고착화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당원이 단순한 동원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풀뿌리 민주주의는 실현되기 어렵고, 오히려 당의 극단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제도와 운영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 경실련의 입장이다.
경실련은 이번 쇄신안이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책임 인정 없이 선거 승리만을 목표로 한 피상적 변화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진정한 쇄신은 과거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 위에 실행 가능한 제도 개혁과 투명성 강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구호와 간판 교체를 넘어 실질적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