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과 싸운 김현준의 1000일, 산업은행은 무엇을 부정하나..산업은행 회장은 사과가 우선이다.1000일 투쟁의 끝에서 드러난 국책금융기관의 책임 회피와 ‘모두가 피해자’라는 위험한 자기합리화
1000일 이상을 윤석열 정권과 싸워온 산업은행 김현준 노조위원장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솔직히 놀라웠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단식을 풀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짧은 뉴스 한 줄로 끝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단식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왜 이어졌으며, 무엇을 요구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이는 단순한 노사 갈등도, 특정 인사에 대한 반발도 아니다.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스스로의 정당성과 공공성을 어떻게 소진해 왔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김현준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둘러싼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다. 정치적 구호를 앞세운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존립과 정책금융의 기능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거리와 농성장을 지켜온 사람이다.
2024년 12월 3일, 이른바 ‘내란의 밤’으로 기억되는 그날에도 그는 혼자 산업은행 노조 깃발을 들고 국회로 향했다. 조직이 침묵하던 순간, 그는 헌정 질서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 장면이 상징이 된 이유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가 그에게 ‘12.3 헌정수호특별상’을 수여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런 그가 다시 단식에 들어간 이유는 명확했다. 산업은행 수석부행장과 부행장 자리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사를 임명하겠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 인사는 윤석열 정권이 강행하려 했던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실무를 진두지휘했던 인물로, 당시 정권 핵심과의 밀접한 관계, 산업은행 부지 문제를 둘러싼 논란, 심지어 통일교 관련 의혹까지 거론돼 왔다.
그런 인물이 청와대 인사검증 단계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은 내부 구성원들에게 충격이었다.
이 문제는 개인 한 명의 자리 문제가 아니었다. 1000일 넘게 함께 싸워온 내부 구성원들, 그리고 정책금융의 독립성을 우려해 온 금융권 전반에 다시 깊은 불신을 던지는 결정이었다.
김현준 위원장이 반복해서 강조한 핵심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인사의 능력이나 경력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인사가 어떤 시기, 어떤 정책, 어떤 결정의 흐름 속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어떠한 책임 인식과 사과도 없었다는 점이 본질이다.
그는 현 행장이 임명될 당시, 당시 부행장과 새로 부임한 회장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 시기 산업은행이 겪은 혼란과 잘못에 대해, 최소한 사과하고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그러나 그 제안은 거부됐다.
여기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문제는 무엇인가.
산업은행은 단순한 시중은행이 아니다. 국가 산업정책의 최전선에서 구조조정, 정책금융, 공적 자금 운용을 담당하는 국책금융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부행장이라는 자리는 정권과의 인연이나 행정 경험이 아니라, 공공성에 대한 자기 검증과 신뢰 회복의 상징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인사는 그와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 산업은행은 본점 부산 이전이라는 정치적 공약 수행의 도구로 동원됐다. 금융 경쟁력 약화, 정책금융 기능 훼손, 여의도 부지 특혜 매각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당시 핵심 임원들 가운데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인물은 없었다.
조직 안에는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퍼졌고, 그 순간 산업은행의 윤리와 자율성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김현준 위원장은 이 지점에서 현 회장에게 분명히 요구했다.
조직을 대표하는 경영진이라면, 적어도 본점 이전 강행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과 갈등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요구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과는 없었고, 성찰도 없었으며, 책임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대신 돌아온 말은 “모두가 피해자”라는 자기합리화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은행 회장의 판단과 인식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모두가 피해자’라는 말로 상황을 덮으려 한다면, 그 기관은 더 이상 책임 주체를 가질 수 없다.
피해자가 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라 규정하는 순간, 책임은 증발하고 진실은 흐려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직 임원들의 태도다.
본점 이전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 노조와의 3년 투쟁,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 훼손에 대해 누구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요직 복귀와 승진이 가능하다면, 그 조직은 잘못을 처벌하지 않는 조직이 아니라, 잘못을 보상하는 조직이 된다.
이번 수석부행장 임명은 단순한 인사 논란이 아니다. 이는 산업은행이 과거의 실패를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사과 요구를 외면한 채 ‘모두가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로 정리하려는 태도는 개혁이 아니라 회피이며, 통합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공모에 가깝다.
공공기관에서 사과는 굴욕이 아니다.
오히려 권한을 가진 자가 책임을 인정할 때 조직은 다시 설 수 있다. 사과 없는 인사, 성찰 없는 복귀, 책임 없는 통합은 결국 산업은행이라는 조직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라인 인사가 아니라, 잘못된 선택 앞에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최소한의 공적 윤리다. 그것이 무너진 조직은 어떤 정책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없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내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