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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을 읽는다고 사상이 전염되지는 않는다

금지는 이해를 막고, 이해의 부재는 왜곡을 키운다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5/12/22 [06:43]

노동신문을 읽는다고 사상이 전염되지는 않는다

금지는 이해를 막고, 이해의 부재는 왜곡을 키운다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5/12/22 [06:43]

'국민이 노동신문을 보게 하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제안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 발언은 북한을 미화하자는 이야기도, 이념을 주입하자는 제안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북한을 다뤄온 방식이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학문적이었는지를 되묻는 문제 제기다.

 

나는 북한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지만, 정작 북한의 공식 매체인 노동신문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제한된 경로를 통하지 않으면 접근이 어렵고, 제도권 안에서 안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환경은 거의 없다. 북한을 연구하라고 해놓고, 북한의 1차 자료를 보지 못하게 하는 구조는 학문적으로도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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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하는 이재명 대통령(사진=MBC화면 갈무리)    

 

사실 이런 문제의식은 처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도 노동신문을 도서관 등 공적 공간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보수단체와 국민의힘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부가 북한 콘텐츠 개방 방침을 검토하자 국민의힘은 다시 같은 언어를 꺼내 들고 있다. “문화의 탈을 쓴 사상 교화”, “북한식 사고를 일상에 스며들게 하려는 문화 전복”이라는 표현들이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민이 노동신문을 읽는다고 북한식 사고가 일상에 스며든다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판단 능력은 얼마나 취약하다는 말인가. 이런 논리는 윤석열의 계엄 시도를 ‘계몽’이라고 주장하는 인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국민을 판단 주체가 아니라 보호와 통제가 필요한 존재로만 보는 시선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어릴 때부터 북한의 공식 자료를 자연스럽게 접할수록, 북한 체제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포장하고 왜곡하는지가 더 또렷하게 보인다. 노동신문의 문장은 과장돼 있고, 반복적이며, 세계를 선과 악으로 단순화한다. 이런 언어를 직접 읽어보는 경험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키우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나는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반공교육이 198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환상을 키운 중요한 배경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보지 못하게 하고, 알지 못하게 할수록 상상은 커지고, 왜곡은 깊어진다. 금지는 무지가 되고, 무지는 신화가 된다. 그 결과는 이성적 비판이 아니라 막연한 동경이나 과도한 공포였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북한을 옹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노동신문을 공개하자는 것은 사상을 들여오자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개방하자는 이야기다. 민주사회라면 시민이 다양한 자료를 접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정치가 오히려 위험하다.

 

국민의힘이나 보수단체가 어떤 반대를 하든, 이재명 정부는 이 문제를 원칙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북한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모든 시민에게 공식 자료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숨길수록 강해지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환상이다.

 

민주주의는 차단이 아니라 공개 위에서 작동한다.

노동신문을 읽는 사회는 북한을 닮는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회다. 이 단순한 상식을 정치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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