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2만 년 전 지구의 비밀을 품은 얼음 — 빙하 코어가 말하는 기후의 역사얼음 속에 갇힌 시간, 12만 년 전 지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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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하의 모습 빙하가 쌓일 때 함께 떨어진 먼지와 기체가 그대로 얼음 속에 갇히며, 그 안에는 당시의 이산화탄소, 질소, 메탄 등 대기 조성이 고스란히 남는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과거의 기후를 ‘간접 추정’이 아닌 ‘직접 측정’으로 복원할 수 있다.(사진=골라듄다큐 캡쳐) |
과학자들은 이 원통형 얼음을 통해 80만 년 동안 반복된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를 확인했다. 그 결과, 지구는 약 10만 년마다 온난기와 냉각기를 오가며 생태계의 대전환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빙하 코어는 단순한 얼음이 아니라, 시간의 층으로 쌓인 지구의 연대기이다.
빙하가 쌓일 때 함께 떨어진 먼지와 기체가 그대로 얼음 속에 갇히며, 그 안에는 당시의 이산화탄소, 질소, 메탄 등 대기 조성이 고스란히 남는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과거의 기후를 ‘간접 추정’이 아닌 ‘직접 측정’으로 복원할 수 있다.
남극과 북극은 지구의 냉장고처럼 작동한다. 전 세계를 떠도는 미세먼지나 오염 물질이 증발과 응결을 반복하며 결국 극지방으로 몰리는 현상을 ‘그레스오퍼 효과(Grasshopper Effect)’라 부른다. 이렇게 갇힌 먼지와 공기는 수십만 년 전의 환경을 보여주는 생생한 단서가 된다.
빙하 시추는 석유 시추만큼이나 대규모 작업이다.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진행된 국제 프로젝트에는 12개국이 참여했다. 여름에도 영하를 맴도는 혹한 속에서 연구진은 2,670m 깊이까지 얼음을 뚫었다.
시추기는 1~3m씩 코어를 뽑아내며 천 번 이상 왕복했고, 그 결과 약 12만 년의 기록을 담은 얼음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 번의 시추에만 수십억 원이 소요되고, 연구자는 샘플을 얻기 위해 덴마크 캠프 리더에게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얼음은 표면의 오염을 칼로 깎아낸 후 냉동 운송된다. 그린란드의 ‘베이비 코어’ 시추는 150m 길이에 5억 원이 들었으며, 완전한 코어는 150억 원에 달하는 초정밀 과학 사업이다.
이 얼음의 가치는 그 속에 담긴 동위원소가 말해준다. 물의 산소는 중성자 개수에 따라 가볍거나 무겁다. 추운 시기에는 무거운 산소가 비로 떨어지고, 극지방에는 주로 가벼운 산소가 도달한다.
반대로 따뜻한 시기에는 무거운 산소가 더 멀리 이동해 극지에 쌓인다. 따라서 얼음 속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하면 과거의 온도를 재구성할 수 있다. 화산재층, 방사성 물질 농도, 계절적 변화 등을 함께 고려하면 연대 측정의 정밀도가 높아진다.
마치 지구의 심장박동을 읽는 것처럼, 동위원소의 미세한 차이가 수십만 년의 온도 변화를 그려낸다.
![]() ▲ 북극해 북극 지역(파란색 원)에 가까이 붙은 그린란드(흰색)의 지구의(地球儀)에서의 위치. 현재는 남극대륙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빙상으로 덮여 있는 ‘얼음의 땅’이지만 200만 년 전에는 코끼리의 일종인 마스토돈과 토끼 등이 번성하던 숲 지대였던 것으로 조사 연구되었 |
이 빙하 코어가 던지는 가장 큰 경고는 ‘이산화탄소’다. 지난 80만 년 동안 CO₂ 농도는 빙하기 180ppm, 간빙기 280ppm 사이에서만 움직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상승해 오늘날 440ppm을 넘어섰다.
과거 자연적인 변동 폭을 50% 이상 초과한 수치다. 불과 70년의 인류 관측 기록만으로는 이 변화를 설명할 수 없지만, 빙하 코어는 증언한다
이런 급격한 상승은 인류 활동 이후에만 나타났다고. 12만 년의 얼음 속에서 되살아난 이 기록은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유일한 실마리이자, 인류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지구의 냉장고를 녹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 ▲ 옛 환경DNA를 추출, 분석하여 2백만 년 전 동식물의 생태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 그린란드 북부 해안 지층의 모습(왼쪽). 맨 위쪽 까만 점 2개 모양은 연구자 2인의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은 비슷한 지역에서 발견된 200만 년 전 잎갈나무의 화석. |
빙하 코어는 말없이 기록한다.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쌓인 눈과 바람의 흔적을, 시간의 층으로 남긴다. 그리고 지금, 그 얼음이 녹으며 묻는다. “너희는 이 냉장고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게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