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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정치생활 정장선이 말하는 지금의 정치

“동물국회 떠났지만…그땐 막후 대화라도 있었다”

“민생이 정치의 공간을 열 수 있다”

“지도자는 강성 지지층 아닌 국민 전체를 봐야 한다”

김학영 기자 | 기사입력 2025/10/04 [12:32]

30년 정치생활 정장선이 말하는 지금의 정치

“동물국회 떠났지만…그땐 막후 대화라도 있었다”

“민생이 정치의 공간을 열 수 있다”

“지도자는 강성 지지층 아닌 국민 전체를 봐야 한다”

김학영 기자 | 입력 : 2025/10/0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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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장선 평택시장(홈페이지 갈무리)    

 

정장선 평택시장은 30년 동안 이어온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며 “정치란 결국 공통 분모를 찾아내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1995년 경기도의원으로 출발해 국회의원 3선, 평택시장 2선을 거친 그는 올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과거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정치에 대한 회의감과 절망이 배경이었지만 이번 은퇴는 만족과 성취의 결과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정치는 충분히 했다. 이제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정 시장의 정치 인생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국회에 첫발을 디디며 정치가 점점 더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국회는 극한 대립과 양극화의 장으로 변해갔고, 여야는 합의 대신 충돌을 선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108번뇌’라 불린 초선 의원들의 내분, 이명박 정부 시절 끝없는 농성과 충돌은 그가 느낀 정치의 민낯이었다.

그는 “국회에 앉아 있으면 ‘이러려고 정치했나, 4선·5선을 한다 한들 밥값을 하고 있나’라는 회의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정쟁의 무대로만 소비되는 현실은 젊은 시절의 열정을 갉아먹었다.

 

결정적 계기는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터졌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하얀 연기가 의사당을 가득 메웠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동료 의원들이 연기 속에서 만세를 외치며 몸싸움을 벌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목격한 그는 “여기까지다, 더는 못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이후 당 사무총장으로서 총선을 준비하던 그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정치에 대한 깊은 절망을 드러냈다. 당시 국회는 여야가 몸으로 부딪히며 문을 걸어 잠그고 의사봉을 빼앗는 일이 일상화된 ‘동물국회’였다. 해머가 등장하고 최루탄이 터지는 난장판 속에서 그는 “이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여야 의원들과 함께 국회선진화법을 제정했다.

 

그는 이 법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 중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오늘날 국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폭력은 사라졌지만 여야 대립과 양극화는 더 심화됐고, 정치적 타협이나 대화의 공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싸우더라도 막후 대화는 있었다. 양당 리더들이 만나기도 했고, 중도파나 소장파들이 스터디 모임을 만들며 협력할 여지가 있었다. 국회선진화법도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정치가 공통 분모를 찾는 기능을 상실한 것 같다.”

 

정 시장은 정치를 복원할 열쇠로 ‘민생’을 꼽았다. 그는 과거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시절, 당에서 “MB 악법 저지”를 지시했을 때를 회상했다.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국회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당 간사였던 김기현 의원과 비밀리에 만나 민생법안만큼은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위한 법안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당도 민생을 해결하지 못하면 손해라는 걸 알았다. 결국 당 지도부에도 전달돼 합의가 이뤄졌고, 필요한 법안은 통과됐다.” 그는 지금 정치에도 이 원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탄핵 세력이니 내란 세력이니 하는 극단적 언어만 난무하면 대화의 길이 막힌다. 하지만 민생을 최우선으로 두면 반드시 정치적 공간은 열린다. 정치인이 국민의 삶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합의와 타협은 가능하다.”

오늘날 정치가 진영 논리에만 매몰된 현실도 그는 깊이 우려했다. “정치인들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행동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신을 내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는 특히 유튜브와 SNS의 영향력을 지적했다. “거기서 나오는 목소리는 국민 중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이를 전체 민심으로 착각한다. 이것은 정치의 왜곡을 낳는다. 정치인은 스스로 강해져서 뚜렷한 주관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다.”

 

정 시장은 여당이 특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과 자주 만나는 게 제일 좋다. 대통령이 대화의 장을 열면 당도 일정 부분 따라오게 된다. 김민석 총리나 우원식 국회의장 등 책임 있는 인사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그는 민주당이 반기업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기 전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봐야 한다. 기업과 기업가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온 건 진취적 기업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지자체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강조하는 이유도 같다.”

 

평택시장으로서 그는 주한미군 기지와 삼성전자, 카이스트 반도체 캠퍼스 유치를 통한 도시 성장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과거 미군 기지 이전에 따라 특별법을 만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학교 유치와 규제 완화, 기업 인프라 확충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제 문화시설과 공원만 더 보강되면 된다. 시장으로서 원 없이 일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 이후 그는 이집트와 인도 등 4대 문명 발상지를 여행하며 앞으로의 삶을 고민할 계획이다. 정치에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정치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을 남겼다. “정치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에 대한 답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언행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묻는 과정이 정치의 본질이다. 나는 2012년엔 그 답을 못했지만, 지금은 만족스럽게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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