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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컵의 생존권” – 기후위기가 불러온 아프리카·아시아의 구조적 폭력

가뭄과 폭우 속, 소녀들은 왜 학교 대신 성착취의 현장으로 내몰리는가

케냐에서 인도까지, 물 부족이 드러낸 공공 인프라의 민낯과 글로벌 불평등

기후위기는 날씨가 아니다 – 미래세대의 존엄을 갉아먹는 침묵의 폭력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5/05/29 [05:43]

“물 한 컵의 생존권” – 기후위기가 불러온 아프리카·아시아의 구조적 폭력

가뭄과 폭우 속, 소녀들은 왜 학교 대신 성착취의 현장으로 내몰리는가

케냐에서 인도까지, 물 부족이 드러낸 공공 인프라의 민낯과 글로벌 불평등

기후위기는 날씨가 아니다 – 미래세대의 존엄을 갉아먹는 침묵의 폭력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5/05/2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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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인 기후로 물부족국가가 늘어나고 기후난민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자연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재난이 초래한 물 부족과 자원 고갈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취약 계층에겐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물 부족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아동 인권과 여성 안전, 교육 기회, 사회적 평등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고리를 형성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BMJ 글로벌 헬스에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실태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토론토대학교의 카르멘 로지 박사 연구팀은 케냐의 6개 지역, 마타레·키수무·이시오로·나이바샤·킬리피·칼로베예이 난민 정착촌에서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층 포커스그룹, 동행 인터뷰, 참여형 지도 제작 등의 방법을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 침해의 현실을 다층적으로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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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0여개 섬으로 이루어진 솔로몬제도의 수도가 있는 과달카날섬에서 한 소녀가 동네 교회 앞마당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달카날섬은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서 

 

연구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진술은 충격적이었다. 가뭄과 폭우로 식량과 식수, 위생 자원이 무너진 가운데, 생존을 위해 위험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교복이 없어서, 생리용품이 없어서, 세탁할 물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교육과 멀어질수록 생계의 압박은 성적 착취로 이어졌다. 학교에서의 부재는 단순한 학업의 손실이 아니라 사회적 보호망의 이탈을 의미했다. 어떤 소녀는 “씻지도 못하고, 물을 얻기 위해 몸을 팔게 된다”고 고백했다.

 

가뭄기에는 물을 길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야 했고, 우기에는 오염된 빗물 외에는 마실 수 있는 수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을 얻는 과정에서 성인 남성이 청소년에게 물을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일도 발생했다. 귀가가 늦어진 여아들이 강간을 당하거나, 샤워 중 몰카를 찍혀 협박을 받는 사례도 보고되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대부분 노후되거나 파손되어 있었으며, 특히 야간에는 여성이 이용할 수 없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생리 중에는 학교에 결석하거나 아예 자택에 머무르는 소녀들이 다수였고, 이는 다시 교육 기회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를 타격하며 인권 침해의 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 로지 박사 연구팀은 “기후재난 → 자원 부족 → 학교 중퇴 및 결석 → 위험한 성관계 및 성폭력 노출 → 조기 임신 및 사회적 고립”의 고리가 전반적으로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 구조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고 아동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가정 내 착취와 지역 사회의 성적 폭력이 증가했다. 이시오로 지역의 한 원로는 “8살, 10살짜리 아동이 임신한 사례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모든 과정은 단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기후와 젠더, 계층, 교육, 공공인프라가 얽힌 구조적 폭력의 축소판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아리사 하샴 연구원은 “아이들이 겪는 수치심은 굶주림만큼이나 파괴적이었다”며, 생리대나 세탁할 물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그것이 곧 성착취와 임신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너무나 흔하게”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로지 박사는 “기존의 기후정책은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기후위기는 단지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에게는 구조적 폭력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단기적 원조를 넘어, 공공 보건소와 위생 시설, 학교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재설계할 것을 권고했다. 위생용품 지원, 학교급식 확대, 안전한 식수 접근 보장,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이 모두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케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 전역, 그리고 아시아의 대다수 지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UN과 세계기상기구(WMO)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지역이 기후재난에 가장 취약하면서도 가장 적은 지원을 받는 ‘기후 불평등 지대’로 고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기준, 아프리카 전역에서 3억 명 이상이 기본 식수 접근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지 가뭄이나 강수량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 투자 부족, 불균형한 도시계획, 여성과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적 거버넌스 부재, 개발도상국에 대한 글로벌 자금 흐름의 왜곡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같은 해, 남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를 덮친 기록적 가뭄으로 농작물 수확량은 평균 30~70%까지 감소했다.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이 기아 상태에 놓이고, 아이들의 교육 중단율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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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과 폭우 난기류등 여행에 극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시아 역시 예외는 아니다. 2025년 5월, 중국 남부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홍수 위험에 노출되었고, 인도·파키스탄은 연일 48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도시 전력망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이와 같은 기후 양극화 속에서, 한쪽은 물이 없어 죽고 다른 쪽은 물이 넘쳐 죽는 ‘기후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인도와 방글라데시, 미얀마, 필리핀 등 아시아 저지대 국가들은 해수면 상승과 태풍, 집중호우, 기후 이주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아동은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교육을 포기하고 가장 나중에 복구 혜택을 받는 계층이다.

 

이러한 기후재난은 단순한 환경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위기이며, 이를 통해 여성과 아동이 겪는 고통은 그 사회의 ‘공공 시스템’의 적나라한 민낯이 된다.

 

2025년 세계 물 개발 보고서(WWDR)는 기후 적응과 완화가 단기적 자선이 아니라 ‘구조적 재투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 공급은 식수나 위생을 넘어서, 교육, 안전, 인권, 경제의 기반이며, 특히 여성과 아동의 권리 보장의 핵심 인프라라는 것이다.

 

유니세프도 ‘물 위기 = 아동 위기’라는 표현을 통해, 기후 정책 수립 시 아동 보호와 물 접근성을 최우선 고려 요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오늘, 누군가의 딸이 물을 얻기 위해 몸을 팔고, 소녀가 샤워 도중 성범죄를 당하며, 학교가 아닌 결혼을 통해 생존을 택하게 만드는 절박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 구조적 폭력의 가장 깊은 뿌리는, 기후와 성별, 계층, 인프라, 글로벌 불균형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 있다.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를 단지 탄소배출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후위기는 생존권을 박탈하는 사회적 시스템의 붕괴이며, 미래세대의 삶을 갉아먹는 침묵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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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사헬지구 1300만명이 기후위기로 죽어가고 있다. (사진=ytn 유투브 화면 캡쳐)    

 

그리고 그 침묵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무대응이라는 선택에서 비롯된 정치적 책임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위생용품 한 개, 정수기 한 대, 공용 화장실 한 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선택의 시점에 와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더 이상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기후 대응 모델의 최전선이 되어야 한다.

 

구조적 폭력은 구조적 해법으로만 사라질 수 있다. 기후위기는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하며, 그 중심에는 지금도 물을 얻기 위해 매일 생존을 협상하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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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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