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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월 경찰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 공무원연금에 ‘사회적 재분배’ 기능 도입 주장의 함정:내외신문

이연월 경찰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 공무원연금에 ‘사회적 재분배’ 기능 도입 주장의 함정

2014-10-29     편집부


[내외뉴스=더피플]나덕흥 기자, 최근 공무원연금 개편방안을 얘기하는 정치인들이나 학자들 중에 공무원연금에도 국민연금처럼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주장의 요지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기준소득이 현재 408만원인데 공무원연금은 많게는 800만원이 넘기 때문에 고위공무원들은 현직에서도 많이 받고 퇴직 후에도 상대적 부(富)를 누리는 상후하박 구조이므로 이를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고 합리적인 주장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몇 가지 간과하고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재분배’ 주장은 꼼수

위에서 말하는 대로 고위공무원들에게 혜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이 ‘사회적 재분배’ 기능을 도입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창출해 낸 경제적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수 부자들이나 고소득자들이 국민연금에 무한정 많은 금액을 불입해서 노년기에까지 불평등구조를 심화시킬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공무원들 또한 고위직으로 갈수록 고액의 보수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이에 대한 고민은 일면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공무원연금 고액 수령자들을 대상으로 연금불입액을 낮춘다고 해서 재분배 효과가 얼마나 나타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저 많이 받고 있으니 혜택을 줄인다는 마이너스 논리에 불과한 것이며, 지극히 작은 부분에서의 재분배 개념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재분배’ 운운하는 것은 공무원연금 가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반발을 완화시켜 보려는 꼼수이거나 편협한 접근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재분배’는 무엇일까?

‘사회적 재분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당연히 ‘공적연금’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로 돌아가면 된다. 어느 나라든지 공적연금 도입은 ‘부(富)의 사회적 재분배’ 목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공무원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도입 초기에는 비교적 ‘사회적 재분배’ 역할에 충실하게 설계되었다.

 

그랬던 제도를 단지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높아져서 재정적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공적연금 도입 취지는 망각한 채 ‘적자’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정없이 제도를 훼손해 왔다. 심지어 통계산정 방식까지 바꿔가면서 가공한 수 십 년 후 예측 통계치를 가지고 파산 운운하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재분배’는 공적연금을 원래대로 복원시키는 것이다. 공적연금이 제 기능을 발휘하여 최소한의 노후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되면, 노인 세대의 소비가 활성화되고 이는 곧 세금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고 재정안정에도 바람직하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청년세대와의 일자리 충돌도 해소될 수 있으므로 ‘세대 간 갈등’이 아니라 ‘세대 공존’의 바람직한 미래상도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방법론으로 살펴 본 ‘사회적 재분배’로의 접근법

‘사회적 재분배’가 정착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조세정책과 재정지출의 투명성 및 공정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적연금의 수령액을 깎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기업감세, 부자감세 정책으로 대기업들이 내지 않은 세금이 90조가 넘는다고 하고, 10대 재벌 산하의 80대 대기업 사내잉여 유보금이 470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천문학적인 자산을 보유하고도 생산에 투입되는 부동산이라고 포장해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사례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최근 송파구 한전부지 매각에서도 보듯이 시가의 배가 넘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눈 하나 꿈쩍 않을 정도로 부의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

 

부자들의 불법이나 편법 상속·증여는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세대를 뛰어 넘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세금 없이 억대의 상속을 할 수 있게 법안까지 등장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철회하는 기막힌 세태를 어찌할 것인가?

 

선진국들처럼 부자들이 평생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 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강력한 장치를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소득세나 법인세로 재정수입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는 핑계를 내세워 담뱃세니 자동차세, 주민세 같은 손쉬운 ‘간접세’ 증세를 하려다 ‘부자 감세, 서민 증세’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정지출 또한 지출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엄격한 사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공적연금에 지출하는 재정을 다른 것 다 지출하고 남는 것으로 준다는 것을 어느 국민이 용납하겠는가  국민의 생명과도 같은 연금은 당연히 재정지출의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경제 살리기나 국책사업 명분으로 공적연금기금을 제멋대로 퍼다 쓴 방만한 운영사례는 이미 수 없이 지적되어 왔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정지출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로 인한 낭비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프란치스코 교황과 피케티 신드롬에서 나타난 ‘사회적 재분배’

지난 8월 우리나라를 찾은 교황 말씀 중에 ‘낙수 효과’에 대한 비판이 유달리 눈길을 끈다. “과거에는 유리잔이 가득 차면 흘러 넘쳐 가난한 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 차면 마술처럼 유리잔이 더 커져 버린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는 결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이른바 ‘낙수경제학(trickle-down economics)’이 현실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소수 부유층에게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인해 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런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소득 상위 0.5~1%인 고소득층에게 80~90%의 누진소득세를 물리고, 전 세계 모든 금융·비금융 자산에 10%의 누진자본세 부과를 제시하고 있다.

 

공적연금을 얘기하면서 교황 말씀과 피케티 교수 주장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제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정부정책의 잘잘못을 어느 정도는 가릴 줄 아는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과거처럼 소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밀실에서 작품(?) 만든다고 순진하게 속아 줄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많이 속아 왔지 않는가?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당정이나 몇 몇 학자들이 공적연금을 다루면서 해 왔던 것처럼, 지극히 작고 낮은 수준의 파편에 불과한 ‘사회적 재분배’ 주장을 들이대면서 마치 상당한 수준의 고민이 담겨 있는 대책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회복지를 위해 국민들의 노후를 위해 지구상 많은 복지선진국에서 잘 만들고 잘 가꾸어 온 공적연금제도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시킬 것인가를 진정성 있게 따져 보고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

 

소수 연구자들의 얄팍한 논리와 정치적 농간 수준의 접근방식으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할 것이다. 공적연금의 원상회복이 대한민국 사회가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발점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한 토대 위에서 필요·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