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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선왕조실록 삼봉 정도전 이야기 5:내외신문

[연재] 조선왕조실록 삼봉 정도전 이야기 5

2022-11-02     백태현

조선왕조실록

삼봉 정도전이야기

 

삼봉정도전역사문화진흥원

정승우 이사장 옮김

 

삼봉정도전역사문화진흥원 다음카페 https://cafe.daum.net/jeongdojeon2021

 

 

▲ 평택 삼봉사당 문헌사 (C) 백태현 기자



5. 태조실록 1,

총서 131번째기사

 

정몽주가 조준 등을 처형코자 하니, 태종이 정몽주를 죽이고 일당을 탄핵하다

정몽주(鄭夢周)가 성헌(省憲)140) 을 사주하여 번갈아 글을 올려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을 목 베기를 청하니, 태조가 아들 이방과(李芳果)와 아우 화(), 사위인 이제(李濟)와 휘하의 황희석(黃希碩조규(趙珪) 등을 보내어 대궐에 나아가서 아뢰기를,

 

"지금 대간(臺諫)은 조준이 전하(殿下)를 왕으로 세울 때에 다른 사람을 세울 의논이 있었는데, ()이 이 일을 저지(沮止)시켰다고 논핵(論劾)하니, 조준이 의논한 사람이 어느 사람이며, 신이 이를 저지시킨 말을 들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청하옵건대, 조준 등을 불러 와서 대간(臺諫)과 더불어 조정에서 변론하게 하소서."

 

하여, 이 말을 주고받기를 두세 번 하였으나, 공양왕이 듣지 않으니, 여러 소인들의 참소와 모함이 더욱 급하므로, ()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전하(殿下)께서 몽주(夢周)를 죽이기를 청하니, 태조가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전하가 나가서 상왕(上王)141) 과 이화(李和이제(李濟)와 더불어 의논하고는, 또 들어와서 태조에게 아뢰기를,

 

"지금 몽주 등이 사람을 보내어 도전(道傳) 등을 국문(鞫問)하면서 그 공사(供辭)를 우리 집안에 관련시키고자 하니, 사세(事勢)가 이미 급하온데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태조는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으니, 다만 마땅히 순리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하면서, 우리 전하에게

 

"속히 여막(廬幕)으로 돌아가서 너의 대사(大事)142) 를 마치게 하라."

 

고 명하였다. 전하가 남아서 병환을 시중들기를 두세 번 청하였으나, 마침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전하가 하는 수 없이 나와서 숭교리(崇敎里)의 옛 저택(邸宅)에 이르러 사랑에 앉아 있으면서 근심하고 조심하여 결정하지 못하였다. 조금 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므로 급히 나가서 보니, 광흥창사(廣興倉使) 정탁(鄭擢)이었다. 정탁이 극언(極言)하기를,

 

"백성의 이해(利害)가 이 시기에 결정되는데도, 여러 소인들의 반란을 일으킴이 저와 같은데 공()은 어디로 가십니까? 왕후(王侯)와 장상(將相)이 어찌 혈통(血統)이 있겠습니까?"

 

하면서 간절히 말하였다. 전하가 즉시 태조의 사제(私第)로 돌아와서 상왕(上王)과 이화(李和이제(李濟)와 의논하여 이두란(李豆蘭)으로 하여금 몽주를 치려고 하니, 두란(豆蘭)은 말하기를,

 

"우리 공()143) 께서 모르는 일을 내가 어찌 감히 하겠습니까?"

 

하매, 전하는 말하기를,

 

"아버님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지만, 그러나, 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마땅히 그 허물을 책임지겠다."

 

하고는, 휘하 인사(人士) 조영규(趙英珪)를 불러 말하기를,

 

"이씨(李氏)가 왕실(王室)에 공로가 있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나, 지금 소인의 모함을 당했으니, 만약 스스로 변명하지 못하고 손을 묶인 채 살육을 당한다면, 저 소인들은 반드시 이씨(李氏)에게 나쁜 평판으로써 뒤집어 씌울 것이니, 뒷세상에서 누가 능히 이 사실을 알겠는가? 휘하의 인사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이씨(李氏)를 위하여 힘을 쓸 사람은 없는가?"

 

하니, 영규(英珪)가 개연(慨然)히 말하기를,

 

"감히 명령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영규·조영무(趙英茂고여(高呂이부(李敷) 등으로 하여금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 들어가서 몽주를 치게 하였는데, 변중량(卞仲良)이 그 계획을 몽주에게 누설하니, 몽주가 이를 알고 태조의 사제(私第)에 나아와서 병을 위문했으나, 실상은 변고를 엿보고자 함이었다. 태조는 몽주를 대접하기를 전과 같이 하였다. 이화가 우리 전하에게 아뢰기를,

 

"몽주를 죽이려면 이때가 그 시기입니다."

 

하였다. 이미 계획을 정하고 나서 이화가 다시 말하기를,

 

"()이 노하시면 두려운 일인데 어찌하겠습니까?"

 

하면서 의논이 결정되지 못하니, 전하가 말하기를,

 

"기회는 잃어서는 안 된다. 공이 노하시면 내가 마땅히 대의(大義)로써 아뢰어 위로하여 풀도록 하겠다."

 

하고는, 이에 노상(路上)에서 치기를 모의하였다. 전하가 다시 영규에게 명하여 상왕(上王)의 저택(邸宅)으로 가서 칼을 가지고 와서 바로 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 이르러 몽주를 기다리게 하고, 고여·이부 등 두서너 사람으로 그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몽주가 집에 들어왔다가 머물지 않고 곧 나오니, 전하는 일이 성공되지 못할까 두려워 하여 친히 가서 지휘하고자 하였다. 문 밖에 나오니 휘하 인사의 말이 안장을 얹은 채 밖에 있는지라, 드디어 이를 타고 달려 상왕(上王)의 저택에 이르러 몽주가 지나갔는가, 아니 갔는가를 물으니,

 

"지나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므로, 전하가 다시 방법과 계책을 지시하고 돌아왔다. 이때 전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유원(柳源)이 죽었는데, 몽주가 지나면서 그 집에 조상(弔喪)하느라고 지체하니, 이 때문에 영규 등이 무기(武器)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몽주가 이르매 영규가 달려가서 쳤으나, 맞지 아니하였다. 몽주가 그를 꾸짖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아나니, 영규가 쫓아가 말머리를 쳐서 말이 넘어졌다. 몽주가 땅에 떨어졌다가 일어나서 급히 달아나니, 고여 등이 쫓아가서 그를 죽였다. 영무가 돌아와서 전하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전하가 들어가서 태조에게 알렸다. 태조는 크게 노하여 병을 참고 일어나서 전하에게 이르기를,

 

"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忠孝)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마음대로 대신(大臣)을 죽였으니,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經書)를 가르친 것은 그 자식이 충성하고 효도하기를 원한 것인데, 네가 감히 불효(不孝)한 짓을 이렇게 하니, 내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하매, 전하가 대답하기를,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합하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이것이 곧 효도가 되는 까닭입니다."

 

하였다. 태조가 성난 기색이 한창 성한데, 강비(康妃)가 곁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지라, 전하가 말하기를,

 

"어머니께서는 어찌 변명해 주지 않습니까?"

 

하니, 강비가 노기(怒氣)를 띠고 고하기를,

 

"()은 항상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자처(自處)하였는데, 어찌 놀라고 두려워함이 이 같은 지경에 이릅니까?"

 

하였다. 전하는,

 

"마땅히 휘하의 인사를 모아서 뜻밖의 변고에 대비(待備)해야 되겠다."

 

하면서, 즉시 장사길(張思吉) 등을 불러 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빙 둘러싸고 지키게 하였다. 이튿날 태조는 마지못하여 황희석(黃希碩)을 불러 말하기를,

 

"몽주 등이 죄인과 한편이 되어 대간(臺諫)을 몰래 꾀어서 충량(忠良)을 모함하다가, 지금 이미 복죄(伏罪)하여 처형(處刑)되었으니, 마땅히 조준·남은 등을 불러 와서 대간과 더불어 변명하게 할 것이다. ()이 가서 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라."

 

하니, 희석(希碩)이 의심을 품고 두려워하여 말이 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제가 곁에 있다가 성난 목소리로 꾸짖으므로, 희석이 대궐에 나아가서 상세히 고하니, 공양왕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은 탄핵을 당한 사람들과 맞서서 변명하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장차 대간(臺諫)을 밖으로 내어보낼 것이니, () 등은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이 때 태조는 노기(怒氣)로 인하여 병이 대단하여,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하가 말하기를,

 

"일이 급하다."

 

하고는, 비밀히 이자분(李子芬)을 보내어 조준·남은 등을 불러 돌아오게 할 의사로써 개유(開諭)하고, 또 상왕(上王)과 이화·이제 등과 더불어 의논하여 상왕을 보내어 공양왕에게 아뢰기를,

 

"만약 몽주의 무리를 문죄(問罪)하지 않는다면 신() 등을 죄주기를 청합니다."

 

하니, 공양왕이 마지못하여 대간(臺諫)을 순군옥(巡軍獄)에 내려 가두고, 또 말하기를,

 

"마땅히 외방(外方)에 귀양보내야 될 것이나, 국문(鞫問)할 필요가 없다."

 

하더니, 조금 후에 판삼사사(判三司事) 배극렴(裵克廉문하 평리(門下評理) 김주(金湊동순군 제조(同巡軍提調) 김사형(金士衡) 등에게 명하여 대간을 국문하게 하니, 좌상시(左常侍) 김진양(金震陽)이 말하기를,

 

"몽주·이색(李穡우현보(禹玄寶)가 이숭인(李崇仁이종학(李種學조호(趙瑚)를 보내어 신() 등에게 이르기를, ‘판문하(判門下) 이성계(李成桂)가 공()을 믿고 제멋대로 권세를 부리다가, 지금 말에서 떨어져 병이 위독하니, 마땅히 먼저 그 보좌역(補佐役)인 조준 등을 제거한 후에 이성계를 도모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였다. 이에 이숭인·이종학·조호를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조금 후에 김진양과 우상시(右常侍) 이확(李擴우간의(右諫議) 이내(李來좌헌납(左獻納) 이감(李敢우헌납(右獻納) 권홍(權弘사헌 집의(司憲執義) 정희(鄭熙)와 장령(掌令) 김묘(金畝서견(徐甄), 지평(持平) 이작(李作이신(李申)과 이숭인·이종학을 먼저 먼 지방에 귀양보냈다. 형률(刑律)을 다스리는 사람이 말하기를,

 

"김진양 등의 죄는 참형(斬刑)에 해당합니다."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내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다. 진양 등은 몽주의 사주(使嗾)를 받았을 뿐이니, 어찌 함부로 형벌을 쓰겠는가?"

 

"그렇다면 마땅히 호되게 곤장을 쳐야 될 것입니다."

 

하니, 태조가 말하기를,

 

"이미 이들을 용서했는데 어찌 곤장을 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진양 등이 이로 말미암아 형벌을 면하게 되었다.

 

▲ 삼봉집 목판 (C) 백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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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인물(人物) / 왕실(王室) / 사법-행형(行刑) / 정론(政論) / 변란(變亂) / 역사(歷史)

[140]성헌(省憲) : 대간(臺諫).

[141]상왕(上王) : 정종(定宗).

[142]대사(大事) : 상사(喪事).

[143]() : 태조.

 

(원문)

夢周嗾省憲, 交章請誅浚道傳等太祖遣子 恭靖王諱。】 、弟和壻李濟及麾下黃希碩趙珪等, 詣闕啓曰: "今省憲論浚於立殿下之際, 有立他之議, 而臣沮之浚之所議者何人? 聞臣之沮之之言伊誰? 請召浚等, 與臺諫廷辨" 往復再三, 恭讓不聽群小讒構愈急, 禍且不測我殿下請殺夢周, 太祖不許殿下出, 與上王及和濟議, 又入白太祖曰: "今夢周等遣人鞫道傳等, 欲其辭連我家也勢已急矣, 將若之何?" 太祖曰: "死生有命, 但當順受而已" 命我殿下速還廬次, 終汝大事殿下請留侍疾再三, 竟不許殿下不得已出, 至崇敎里舊邸, 坐於斜廊, 憂虞未決俄有叩門聲, 急出視之, 廣興倉使鄭擢也擢極言: "生民利害, 決於斯時, 而群小之構亂如彼, 公何去也? 王侯將相, 寧有種乎?" 殿下卽還太祖第, 與上王及和濟欲使李豆蘭擊夢周豆蘭曰: "我公不知之事, 予何敢爲!" 殿下曰: "父公不聽吾言, 然夢周不可不殺我當任其咎" 召麾下士趙英珪曰: "李氏之有功於王室, 國人皆知之, 今爲小人所陷若不自辨, 束手就戮彼小人必加李氏以惡名, 後世誰能知之? 麾下士多矣, 其無一人爲李氏?力者乎?" 英珪慨然曰: "敢不惟命!" 使英珪趙英茂高呂李敷等, 入都評議使司, 擊夢周, 卞仲良洩其謀於夢周夢周知之, 詣太祖第問疾, 實欲觀變也, 太祖待之如初和白我殿下曰: "誅夢周, 此其時矣" 旣定計, 和復曰: "公怒可畏, 奈何?" 議未決殿下曰: "機不可失公之怒, 吾當陳大義以慰解之" 乃謀擊於路上殿下更命英珪至上王邸取劍, 直抵夢周家洞口以要之, 敷等數人隨之夢周入, 不留卽出殿下恐事不濟, 欲親往指揮出門, 有麾下士之馬具鞍在門外, 遂乘之, 馳至上王邸, : "夢周過否?" :"未也" 殿下更授方略而還時前判開城府事柳源死, 夢周過弔其家遲留, 故英珪等得備兵器以候之夢周至, 英珪馳擊不中, 夢周叱之, 策馬而走英珪追擊馬首, 馬蹶, 夢周墜地, 起而急走, 呂等追殺之英茂還白殿下, 殿下入告太祖震怒, 力疾而興, 謂殿下曰: "吾家素以忠孝聞汝等擅殺大臣, 國人以我爲不知乎? 父母敎子經書, 欲其爲忠爲孝也汝乃敢爲不孝乃爾? 予欲仰藥而死也" 殿下對曰: "夢周等將陷我家, 豈合坐而待亡! 此乃所以爲孝也" 太祖怒氣方盛, 康妃在側不敢言殿下曰: "母何不解說?" 妃?色告曰: "公常以大將軍自處, 何乃驚懼至於如此?" 殿下謂宜集麾下士, 以備不虞, 卽召張思吉等, 率麾下兵環守明日, 太祖不得已召黃希碩曰: "夢周等, 黨比罪人, 陰誘臺諫, 誣陷忠良, 今已伏罪宜召浚誾等, 與臺諫辨明, 卿其往白于王" 希碩疑懼, 默然仰見李濟在側, ?聲叱之, 希碩詣闕具告恭讓曰: "臺諫不可與被劾者對辨吾將出臺諫于外, 卿等勿復言" 時太祖因怒病劇, 至不能言殿下曰: "事急矣" 密遣李子芬諭浚誾等以召還之意, 又與上王及和濟等議, 遣上王白恭讓曰: "若不問夢周之黨, 請罪臣等" 恭讓不得已下臺諫巡軍獄且曰: "宜流于外, 不必鞫問" 旣而, 命判三司事裵克廉門下評理金湊同巡軍提調金士衡等鞫之左常侍金震陽曰: "夢周李穡禹玄寶遣李崇仁李種學趙瑚, 謂臣等曰: ‘判門下李 太祖舊諱。】 , 恃功專擅, 今墜馬病篤宜先剪羽翼趙浚等, 然後可圖也’" 於是, 囚崇仁種學瑚于巡軍旣而, 流震陽及右常侍李擴右諫議李來左獻納李敢右獻納權弘司憲執義鄭熙掌令金畝徐甄持平李作李申及崇仁種學于遠地按律者言: "震陽等罪當斬" 太祖曰: "予之不嗜殺人久矣震陽等承夢周指嗾耳, 豈可濫刑!" : "然則宜痛杖之" 太祖曰: "旣已寬之, 何杖之有!" 震陽等由是得免

 

(C) 백태현 기자

 

[강건문화뉴스=백태현 기자]

백태현 기자 bth81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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