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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 오름에서 거인같은 한라산까지”- 레퍼토리로 들려주는 제주의 4월: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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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 오름에서 거인같은 한라산까지”- 레퍼토리로 들려주는 제주의 4월

편집부 | 기사입력 2017/04/25 [23:02]

“다랑쉬 오름에서 거인같은 한라산까지”- 레퍼토리로 들려주는 제주의 4월

편집부 | 입력 : 2017/04/25 [23:02]
[공연리뷰] 4월 21일, 2017 교향악축제 제주교향악단 연주

[내외신문=윤준식 기자] 올해로 29회를 맞이한 교향악축제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국내 20개 교향악단이 참여해 4월 1일부터 4월 23일까지 교향악의 대장정을 펼쳤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 연주를 감상해본 적 없던 교향악축제를 가보자고 마음먹고 보니 제주교향악단의 레퍼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이 필자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 교향악이 선사할 감동을 기대하며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갖지 못하다 보니 음악을 찾아 듣지는 못한 필자다.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0년 서울 G20정상회의 당시의 기념음악회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교향악단의 연주로 듣게 되면서다. 말러가 주는 부드러운 선율과 불협화음의 어우러짐에 반해 말러 외에도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도 찾아 듣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말러의 감동을 떠올리며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제주교향악단의 레퍼토리는 모두 3곡이었다. 필자가 감상하고 싶은 말러의 교향곡은 마지막 순서였고, 교향악축제에서 세계 초연을 앞둔 최정훈의 곡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랑쉬”와 쿠세비츠키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Op.3이 연주목록에 올라있었다.


두 곡 모두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공연의 막이 오르고 정인혁 지휘자가 자리를 잡았다. 젊고 힘 있고 쇼맨십이 엿보이는 지휘자다. 남다른 해석으로 곡을 즐기게 해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물씬거렸다.


공연이 시작 직전의 제주교향악단. (사진: 윤준식 기자)공연이 시작 직전의 제주교향악단. (사진: 윤준식 기자)


¶ “다랑쉬-레드아일랜드”와 작곡가 최정훈의 발견

“다랑쉬”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몽환적인 느낌의 곡으로 신비한 대자연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이른 새벽 바닷가를 거닐다 하얀 해무가 뒤덮이고 안개 사이로 옹기종기 검은 바위를 보는 듯한 불규칙함과 환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절제되었으나 절묘한 타악기의 사용이 의식의 흐름을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듯한 느낌도 주었다. 약 5분가량의 짧은 소품이라 몽환적 느낌에 익숙해질 만할 때에 곡이 끝나는 점이 아쉬웠다.


“다랑쉬”의 연주가 끝나자 정인혁 지휘자는 작곡가 최정훈을 무대로 초청해 관객에게 소개하는 한편, 성공적인 세계 초연의 영광을 함께 나눴다.


작곡가 최정훈은 독일 에쎈폴크방 국립음대 최고과정을 졸업한 후 작곡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초연한 “다랑쉬”는 최정훈의 ’레드아일랜드‘ 시리즈 두 번째로 제주 동부의 다랑쉬오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다랑쉬”는 제주 4.3사건 당시 없어진 다랑쉬 마을과 희생자 유골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의 슬픈 역사를 담은 곡이다.


¶ 더블베이스의 귀재 성민제를 만나다

이어 연주자 성민제와의 협연으로 쿠세비츠키의 더블베이스 협주곡이 이어졌다. 성민제의 탁월한 연주 실력 때문이었겠지만, 이 협주곡이야말로 더블베이스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담아내었다. 더블베이스의 긴 현과 몸체가 만들어내는 깊고 풍부한 공명을 살려 저음에서 중고음에 이르는 음역을 오가는 선율은 인심 좋은 아저씨가 동네 마실을 다니며 이웃들과 떠들고 흥얼대는 장면을 상상하게 했다. 통상 합주 광경에서 더블베이스는 과묵하고 무뚝뚝해 보인다. 그러나 쿠세비츠키의 협주곡 속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수다쟁이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더블베이스 협주곡 Op.3은 3악장으로 구성된 곡으로 쿠세비츠키가 자신의 아내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쿠세비츠키 사후에 세상에 소개되며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한다.


국제 콩쿠르에서 연속 입상하며 세계적인 더블베이스의 기대주인 성민제의 연주에 대한 반응도 대단했다. 연이어지는 박수에 연주자가 2번이나 나와 인사를 했음에도 박수가 끊이지 않자 앙코르곡을 연주했고, 그 이후에도 박수가 이어져 성민제가 3번이나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하고서야 1부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 16세 때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요한 마티아스 스페르거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 러시아 샹트 페테르부르크 쿠세비츠키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한 재원이다. (출처: 성민제 공식홈페이지)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 16세 때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요한 마티아스 스페르거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 러시아 샹트 페테르부르크 쿠세비츠키 더블베이스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한 재원이다. (출처: 성민제 공식홈페이지)


¶ 말러의 해석에 대한 기대감

드디어 말러의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는 2부가 시작되었다. 말러의 교향곡 1번은 ’거인‘이라 명명되었는데, 말러가 심취해있던 독일의 낭만파 문인 얀 파울의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발표 당시에는 5악장으로 구성된 데다 초연 시 청중과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비운의 명곡이다. 완벽함과 완성미를 추구하는 교향곡의 세계에 불협화음으로 내면의 갈등과 긴장을 불어넣는 이 곡이 당대에는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교향악단의 연주는 카오스의 세계가 되어버려 거인이 등장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거인은 이 곡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느리고 완만하게 시작하는 1악장은 모두가 잠든 새벽, 거인이 잠에서 깨어 각성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1악장 전반부는 내면의 세계에서 외부의 세계로 감각을 전환해가며 온 몸의 신경이 하나씩 살아나 긴장해가게 만들었다. 중반부에서는 잠에서 각성했다 다시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다가 느닷없이 심벌이 “팡!”하고 대각성의 신호를 보내며 빠르게 후반을 마무리한다.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상상으로 엷은 미소를 짓게 되었다.


¶ 제주의 목가적인 거인을 만나다

제주교향악단의 연주는 전반적으로 경쾌함의 연속이었다. 거인을 표현하기 위해 비장함과 장엄함을 억지로 연출하지 않았다.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산, 바다, 들, 숲의 풍경을 선율에 실어내었다. 목가적인 정취는 2, 3악장의 연주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연주 속에 푹 빠져들다 보니 잠시 무대 위의 지휘자와 연주자는 잊고 다양한 상념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다가오는 상념들은 일상을 이루는 단편적인 상념이 아닌 존재론적인 상념들이다. 거인의 갈등이 나의 내면으로 전이된 듯하다. “지금 내가 속한 세계와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무대와 객석, 상상과 현실을 양분하고 또 양분하며 내면과 상상 속에서 갈라진 시공의 조각들을 헤매다 보니 말러의 ’거인‘은 내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져들게 만든다.


마지막 4악장은 5명의 타악주자를 통해 두드러졌다. 2명의 주자가 연주하는 팀파니의 연타는 놀라웠다. 2명의 주자가 서로 가세할 때마다 연타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며 자칫 심각할 수 있는 4악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말러의 연출에 의해 4악장의 후반부는 7명의 호른 주자가 일어나 거인의 승리를 찬양하는 대목이 있는데, 규모가 작은 제주교향악단의 특성상 호른 주자와 트롬본 주자가 함께 퍼포먼스를 보이며 또 다른 감흥을 자아냈다.


¶ 한라산 정상에 우뚝 선 듯한 거인, 마음 속의 거인을 깨운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연주가 장엄함과 웅장함에 빠져들게 해 거인의 운명을 목도하게 했다면 정인혁 지휘자와 제주교향악단은 간드러진 느낌으로 객석의 감각을 살아나게 해 연주 내내 관객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의 거인을 깨웠다고나 할까  같은 곡이지만 다른 해석과 감성으로 공연장을 찾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말러의 연주가 끝나고 나서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힘 있게 치는 박수가 이어져 인사를 마치고 들어간 지휘자를 계속해서 불러내었다. 지휘자가 2번의 인사를 하고 다시 나와 전체 악단이 정중한 인사를 마친 뒤에도 갈채가 계속되었다. 박수갈채는 지휘자가 3번 더 무대로 나와 감사를 표한 뒤 악단이 퇴장하기까지 이어졌다. 비어져 가는 무대를 앞에 두게 되자 관객과 관객이 서로를 향해 박수를 치는 격이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여기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거인이 아닐까 하는 행복한 상상으로 공연장을 나서게 되었다.


지휘자가 5번의 무대인사를 해야할 정도로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진: 윤준식 기자)지휘자가 5번의 무대인사를 해야할 정도로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진: 윤준식 기자)


¶ 제주의 자랑, 제주교향악단에 주목: 문화관광에 대한 기대


60만 인구의 제주특별자치도. 얼핏 문화를 향수하는 밀도가 낮을 것처럼 보이지만 제주교향악단의 연주는 더 큰 것을 보게 해주었다. 정기연주회 중심의 활동 외에도 기획연주와 ’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다른 지역의 교향악단보다 더 많은 연주 경험, 관객과의 호흡을 자랑한다.


레퍼토리의 선정 면에서도 개성 있고 출중하다. 최정훈의 “다랑쉬”는 레드아일랜드 시리즈의 두 번째로 지역 콘텐츠를 스토리텔링 하며 음악적인 면에서 다른 지방을 앞서 나가고 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도 제주의 오름 “다랑쉬”에서 시작해 거인의 면모를 지닌 한라산 정상을 올라가는 듯한 전개가 돋보였다. 레퍼토리만으로도 오래전 4.3의 고통을 겪고 극복한 힘으로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아픔을 거인의 품으로 감싸 안는 동시에 ’당신이 거인‘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이제 제주 여행을 고려할 때에는 제주교향악단의 연주 일정에 맞춰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제주교향악단의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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