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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시민기자  일본엔 '프리'가 있다: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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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시민기자  일본엔 '프리'가 있다

김가희 | 기사입력 2010/01/24 [20:29]

한국엔 시민기자  일본엔 '프리'가 있다

김가희 | 입력 : 2010/01/24 [20:29]
'프리'들의 개가 자녀의 안전에 관한 기사를 실은 기사(위)와 국회를 통과할 지도 모르는 5대 악법 기사를 실은 .
ⓒ 박철현
고단샤(講談社)의 와 더불어 일본 대중주간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슈에이샤(集英社)의 5월 2일자판에는 '이번 국회에 통과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악법 5가지!'라는 제목의 르포가 실렸다.
사민당의 호사카 노부토 의원, 야마시다 유키오 변호사 등의 발언을 토대로 자민당이 통과시키려고 하는 공모죄, 출입국관리법, 개정감옥법, 교육기본법, 국민투표법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 생생하고 깊이있는 기사다. 거대 미디어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때 '대중주간지' 가 칼을 빼든 것이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고타니 히로유키. 경찰 문제를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친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다.

또한 진보적인 색채의 시사잡지 4월 7일자에는 작년 11월말에 있었던 페루 청년의 유아살해 사건을 계기로 설치된 카나가와현의 '유아를 보호하는 포켓벨 시스템'을 철저히 해부하고 있다.

당시 매스컴의 대서특필과 더불어 성대하게 시작된 이 시스템은, 아이들 등하굣길에 무언가 위험에 처했을 때 시에서 나누어준 포켓벨을 누르면 거리의 전봇대 등에 설치된 수신센서기가 작동해 경찰이 금방 아이의 위치를 알게 된다는 시스템이다.

그 보도가 나간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그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해 검증해 보는 고발기사 '이런 것들이 과연 어린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를 쓴 사람은 세시모 미와. 물론 프리 저널리스트이다.

잡지시장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은 프리랜서들
옴진리교 취재가 전문인 이와모토 타로. 방송업계쪽 일도, 물론 '프리"로 한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블로그 제목은 "난 어떻게 하여 프리 라이터로부터 100엔이라도 받는 라이터로 진화되었는가?"이다.
ⓒ 박철현
신문발행수만 놓고 따진다면 일본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언론대국이다. 그러나 주간지를 포함한 잡지 시장에서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다.
주간 판매량 657만부 판매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도 올라간 (슈에이샤, 현재 주간판매량은 약 300만부)는 이례적인 현상이라 하더라도, 고급시사정론지를 자처하는 (문예춘추사)와 (신조사)가 매주 평균 30만부씩 판매되고 있고, 위에서 언급한 대중주간지 , 역시 매주 20만~30만부는 거뜬히 팔아치우고 있다.

2004년 일본 출판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에서 1년간 판매되는 잡지의 종류는 3394종, 총판매부수는 32억8천만부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가 출판협회 산하의 일본미디어연구소 사사끼 아츠시 조사부장은 "이 수치는 편의점 및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조사한 것으로, 실제 시장 규모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조사에는 포함되지 않은 매니아 성향의 얼터너티브 잡지, 지역정보잡지, 무료정보지등이 얼마나 될 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수많은 잡지들의 지면을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다. 기획, 기사 작성은 물론이요 심지어 잡지의 편집, 일러스트레이터까지 프리랜서가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편집자들의 노동조합인 의 시미즈 나오미 집행위원장은 "프리들은 거의 도쿄에 몰려 있는데, 대략 1천명 정도에 달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시민기자, 칼럼리스트들이 대부분 본업이 있고 부업 및 취미활동으로 잡지사의 의뢰를 받아 글을 기고하거나 기사를 작성해 송고하는 것에 비해, 일본의 프리들은 본업으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1천명의 프리들을 먹여살릴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대단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 일거리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계적 불안과 자신의 테마에 대한 프라이드를 동시에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옴진리교 취재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와모토 타로(42)는 원래 방송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사에 근무했었다. 그러다가 옴진리교의 도쿄 사린가스 살포사건 이후 옴진리교 신자에 대한 강압적인 수사 및 인권침해,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다루는 방송뉴스 프로그램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다가 사측과 갈등이 생겨 프리로 전향했다.

그는 "옴진리교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연하게 인권침해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심층적으로 취재해 보고 싶었는데, 위에서 허가도 안 떨어지고 맨날 싸우고 그랬다"면서 "더러워서 때려치웠는데, 금전적으로는 엄청난 손해이고 그 이후 가난에 쪼들려 살고 있지만 그래도 프라이드는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체첸분쟁 전문가 하야시 마사아키. 주 2,3일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 취재활동을 한다고 한다. 가라데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그 이유를 "프리는 몸이 재산인데,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박철현
미디어, 패션에서부터 국제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장르를 취재하고 있는 쿠니사다 요이치. 2003년 여름의 한일합작 사진전 '오키나와에 대한 기억과 상처'의 기획위원이기도 했다. 한통련 문제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한파'.
ⓒ 박철현
4년간의 주간지 편집자 생활을 끝으로 95년 프리로 전향한 하야시 마사아키(43)는 체첸분쟁에 관한한 전문가이다. 94년 회사를 관두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년간 휴가 겸 어학연수를 하려고 했던 그는 95년부터 발생한 러시아-체첸분쟁을 보고 직업병이 발동했다.
그는 "당시 모스크바에 거주중이던 체첸 어머니들이 체첸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데모가 있었는데, 그걸 동행하면서 취재하고 체첸까지 가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실제 전투하는 것도 현장에서 취재하고,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는 체첸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잡지사에 다시 취직하려고 했으나, 잡지사에서는 체첸문제에 관해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안락한 시트와 총탄이 오고가는 체첸 중에서 그는 체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냐는 기자의 질문에 세 아이를 둔 하야시는 이렇게 답한다.

"하하하.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지금도 아르바이트 구하고 있지요. 가장으로서 느끼는 최소한의 책임이니까. 일주일에 2, 3일정도 아르바이트 하고 나머지는 취재하고. 가족들이 이해를 해주는, 아니 내가 이해를 시킨건가  암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어요. 체첸분쟁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던 일본사회에 체첸분쟁을 알렸다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까."

'프리들의 교도통신' 야마오카 슌스케의 블로그
생생한 취재기 미야케 카츠히사가 다케후지와 싸운 3년간의 법정투쟁을 실록(?)으로 정리한 . 프리저널리스트의 생생한 취재기록과 대기업의 횡포가 적나라하게 서술되어 있는 역작.
ⓒ 박철현
2003년 12월 2일 일본 최대의 소비자금융 대출업체인 다케후지의 다케이 야스오 회장이 프리저널리스트 야마오카 슌스케의 자택전화 불법도감청 혐의로 체포되었다. 5940억엔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정재계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일본 제 1의 백만장자가 왜 가난하고 힘없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를 도청했을까 
야마오카 슌스케는 마찬가지 프리저널리스트인 미야케 카츠히사와 더불어 소비자금융대출의 흑막을 파헤쳐 온 프리 저널리스트. 그들은 다케이 회장에 의한 공공연한 도청, 주가조작 의혹, 야쿠자와의 연계, 채무자에 대한 협박등을 몇년간에 걸친 치밀한 자료조사와 증언등을 토대로 각각 한권의 단행본과 몇개의 주간지에 걸쳐 실었다.

이것들에 대해 다케후지는 둘에게 약 1억엔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를 신청하고, 이후 다케후지와 경찰의 유착관계를 샅샅히 파헤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테라사와 유에게도 다시 2억엔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를 신청했다. 또 다케후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잡지 에 야마오카 슌스케를 비방하는 기사 '블랙저널리스트 야마오카, 야쿠자 야마구치쿠미로부터 300만엔 받아'등을 싣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재판결과 결국 3명은 다케후지의 항소포기 및 손해배상금 지급결정, 즉 사실상 무죄로 풀려나고 다케이 회장은 다케후지를 그만두었다. 프리저널리스트들의 취재능력, 끝장보기를 여실히 보여준 지난 5년간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1년여가 지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형사재판은 끝났지만, 민사재판은 아직 남아 있는 미야케는 당시 사건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일본 거대언론 미디어는 절대로 다케후지 같은 사건은 못 다루지요. 엄청난 광고주이기도 하고 간부진에서 압력이 들어오니까. 실제로 같은 곳에서는 취재도 많이 하고 했는데,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비로소 다루기 시작했죠. 아무튼 거대언론이 못다루는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어 사회에 고발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의 임무라고 할 수 있겠죠. 뭐 고생만 엄청하고 돈이 안되서 탈이지. 하하"

이렇게 말하는 미야케(40)는 다다미 4.5조의 방, 욕실이 없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아사가야의 월세 3만 3천엔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매일 침낭에서 자고, 지방취재가 있으면 청춘18티켓을 구입해 야간열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간다. 물론 독신.

한편, 하루 방문자가 1만명을 넘나드는 초인기 블로그 를 운영하는 야마오카 슌스케는 최근 '억세스 저널'(유료)이라는 홈페이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유료화를 단행한 이유는 일정한 수입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케후지 사건으로 일세에 그 이름을 풍미했으나, 사건 이후 야마오카의 기사를 게재해주는 잡지들이 드물어졌다는 것. 의 시노하라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마오카 슌스케가 '진짜'로 취재해서 기사를 써버리면 잡지사가 손배청구등으로 휘청거리기 때문에 웬만한 곳 아니면 싣기 힘듭니다. '프리들의 교도통신'이라 불리는 그의 블로그를 유료화해서 본격적으로 다른 프리들에게 '네타(소재)'를 공급하려고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 야마오카의 블로그는 프리 저널리스트들이 하루에 한번씩은 방문한다. 그리고 블로그에 야마오카씨가 간단하게 언급한 테마를 취사선택하여 깊이있게 심층취재한다는 프리들도 꽤 있다. 프리 저널리스트들의 연계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이색 홍보 메이드 카페 홍보  아니다. 일본에서 대유행인 메이드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들은 공모죄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다. 왼쪽이 프리랜서 편집자인 치바 하루나, 가운데가 계약사원 노동법 문제가 전문인 시미즈 나오코, 오른쪽이 노숙자 관련 전문르포라이터 니시무라 히토미.
ⓒ 박철현
사회참여는 프리 저널리스트의 사명
(공동대표 테라사와 유, 니시무라 히토미)은 현재 자민당이 강행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공모죄에 대해 맹렬한 반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집회를 주관하기도 하고, 매일 등을 통해 국회의원, 문화인등의 인터뷰를 실어 인터넷상으로 발신하고 있다. 5월 21일에는 와 연계해 요즘 일본에서 유행인 메이드 복장을 하고 시민들에게 공모죄 반대의 전단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메이드 복장이라는 참신한 기획에 대중주간지 등은 직접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거대언론들이 골든위크를 전후하여 공모죄를 조금씩 다루기 시작하기 전, 이미 작년 10월부터 그들은 이런 활동을 해 왔다. 전혀 금전적인 도움이 되지 않은 이 활동에 참가하는 프리 저널리스트들. 기자클럽 폐지등에도 활약하고 있는 경찰문제 전문가인 테라사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모두다 생활은 빈곤하지요. 그런데 웃긴건 이런 활동을 하던 안하던 어차피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굳이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데, '화'가 나니까 그럼 하자 뭐 이런 겁니다. 프리로 저널활동을 한다는 자체에서 사회참여는 하고 있는 건데, 이런 사안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피해도 보고 그러니까, 더 '화'가 나거든요. 그러면 뭉쳐서 좀 더 '사회참여'하는 거고."

데라사와는 자신은 화가 나기 때문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를 한다고 했다. 미야케와 하야시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모토는 직장이라는 조직이 싫어서 프리랜서를 골랐다고 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화가 날 일이 생기지 않으면, 프리가 싫어지면, 조직이 좋아지면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때려치울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기자가 정색을 하고 정말이냐고 묻자 다시 공통된 대답이 돌아온다.

"뭐, 절대(!) 그런 세상은 안오니까."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다 왼쪽이 테라사와 유, 오른쪽이 미야케 카츠히사. 일견 약해보이는 외관이지만, 한번 표적을 잡으면 끝까지 놓지 않는다. 테라사와는 현재 기자클럽 폐지와 미쓰비시의 고속도로 속도측정기 관련 소송을 걸어놓고 있는 상태이며, 미야케는 일본 보도의 금기중 하나인 자위대 '내부'의 비리를 취재하고 있다.
ⓒ 박철현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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