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풍기던 서민들의 쉼터
상태바
‘사람 냄새’ 풍기던 서민들의 쉼터
  • 이승재
  • 승인 2010.01.23 14: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시 동구 송현동 44번지 일대를 인천 사람들은 ‘수도국산’이라 불렀다. 수도국산의 옛 이름은 만수산 또는 송림산이었다. 송림산은 옛날 이 산에 소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수도국산은 일본인들이 인천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상수도 공사를 벌인 뒤 1909년 인천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면서 이곳 꼭대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인천에 상수도가 처음 공급되면서 고유의 산 이름까지 바꾼 셈이다.
수도국산 배수지는 수돗물 공급 직전인 1908년에 준공돼 하루에 8천톤을 내보냈는데 이는 주민 7만명 정도가 이용 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 산은 6·25 이후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이곳에 대거몰려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엔 실향민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대신 호남과 충청지역 사람들이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주거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고 주민들도 대부분 영세민 이어서 나라 안에서도 대표적인 대표적인 ‘달동네’로 꼽혔을 정도다. 16만여㎡의 산비탈에 무려 3천여 가구의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있었으니 말이다. 길은 폭이 고작 1m 정도에 불과했으니 손수레도조차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1988년 여름 수도국산 일대에 5일째 물이 나오지 않아 주민들이 줄지어 동네 아래로 물통을 들고 내려가 물을 받는 일이 벌어졌는데 급수차가 좁은 길을 올라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70년대 초 수돗물을 받기위해 서있는 아낙네들의 모습 〉


1999년 재개발에 따른 철거사업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달동네의 상징처럼 얘기되기도 했다.
재개발로 인한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지난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이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현역 국회의원인 서정화씨가 낙선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세영(전 중구청장), 서상섭씨 등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인 끝에 근소한 차이로 서상섭씨에게 금배지를 내준 것이다.
당시 수도국산에 살던 주민들은 개발에 따른 보상비로 국대 최대의 보상금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손(서정화의원)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철거에 따른 이전으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며 서정화씨는 절대 표밭인 수국산을 잃게돼 선거에서도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수도국산 개발이 1년만 늦었어도 선거에서 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는 후문이다. 그 후 서정화씨는 재기에 실패하며 여의도 입성은 영원히 날아가 버렸다.


〈 노인이 생선을 널던 모습뒤로 고층아파트 숲이 보인다 〉


이러한 수난 끝에 수도국산은 2001년 3천여가구가 들어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송현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이 본격 추진되며 수많은 애환을 간직한 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이곳에는 서민들의 삶을 주된 테마로 삼은 ‘수도국산 박물관이 들어서 기성세대들에게는 향수를, 현 세대들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소속 윌리엄문 백악관 출입기자 BTS 백악관 방문중 일어난 사건
  • 서해해경청, 선박 충돌사고 대비 민·관·군 합동훈련
  • “최호 평택시장 후보, 4년 동안 재산 5배 증가 해명하라”
  • 태안해경, 충남 태안 해상에서 어선 좌초, 승선원 6명 구조
  • 춘천시 기와골 포스코아파트 재개발현장 문화재훼손 신고로 발굴조사 중지
  • 유정복 후보, ‘이사오고 싶은 도시 동구’ 공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