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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經堂” 김성열 광복절특집: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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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經堂” 김성열 광복절특집

김용식 | 기사입력 2016/08/08 [08:04]

칼럼 “經堂” 김성열 광복절특집

김용식 | 입력 : 2016/08/08 [08:04]


(천안역사문화영구실 실장 김성열)

천안 만세운동기념관을 건립하자!!

우리는 이에 대한이 독립한 나라임과 대한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평등에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루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며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며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세계 선진 열강들이 제국주의 야욕으로 약소민족 국가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지배하는 시대였다. 한편 식민지 지배를 받는 약속국가를 자주독립시키는 인류공동생존권을 옹호하는 세계적 양심이 발동하는 시대였다.

대한제국은 약소국가로 일본제국에게 나라와 자주독립을 빼앗긴 노예민족이 되었다. 1907 일제는 대한제국을 조선국이라 국가 이름을 바꾸고 국권을 강압 탈취했다. 우매하고 치졸한 백성들은 세계 사조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미개하였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자들만 원망하고 암울한 시세에 절망하였다.

 

칠 흙 같은 이 땅에 민족자주독립의식을 일깨우는 선지자들의 소리는 목마른 민중에게 하늘의 소리였다. 국가는 망했어도 민족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외침이 발동하였다. 민중들이 의식을 차려 지배자들만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궐기해야 하는 민주정신을 깨닫게 되었다.

2천만 조선백성 대한민족은 결코 죽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세계에 절규하게 되었다. 1919(기미년) 3월 1일(양력) 한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독립선언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서울에서 역사적인 발동이 시작됐다. 터지자 민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드디어 오랫동안 억눌렸던 우매했던 의식이 자각하는 순간 막혔던 2천만이 삼천리강산에 터져 밀려 퍼져 갔다. 천안지역은 천안읍감리교회(서릿말) 안창호 목사의 주도아래 테일러 선교사, 윌리암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일제헌병대의 감시를 피해 암암리에 준비 전수되어 갔다.

천안헌병대는 감시망을 확대하고 초긴장하게 됐다. 일제헌병대 파견분대가 교문 앞에 자리 잡고 있어 가장 믿었던 목천보통학교 학생들이 제일 먼저 3월 14일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3월 20일 입장 양대 광명교회, 3월 27일 입장 광부노동자만세, 3월 28일 입장장터만세, 3월 28일 천안광부노동자, 3월 29일 천안읍내장터만세, 3월 30일 풍세 봉화시위, 3월 31일 성환 직산면, 4월 1일(음력 3월 1일) 병천 아우내장터만세 그리고 4월 2일 아산·전의·공주로 확산되었다.

 

일제헌병대 보고서에 기록된 자료에는 천안지역 시위 회수 11회, 참여인원 6,400명, 사상자수 82명 추정, 부상인원 70명, 투옥인원 189명이다. 입장 양대교회 성도ㆍ광부, 병천 지령리교회, 수신 장명교회 성도, 천안읍감리교회 성도들이 앞장섰다.

추가 확인된 만세운동 현장 피살된 인사 32명 외에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광부 노동자들 사망자가 더 많다고 추측 된다.

병천 아우내장터만세운동 순국열사 명단은 박병호 선생, 박상규 선생, 박영학 선생, 서병순 선생, 유중오 선생, 윤태영 선생, 윤희천 선생, 이성하 선생, 이소재(유관순 모친) 여사, 유중권(유관순 부친) 선생, 김구응 선생, 최정철(김구응 모친) 여사, 전치관 선생, 한상필 선생, 박유복 여사, 박준규 선생, 김상헌 선생, 유관순 열사, 신을우(미수훈) 선생, 조인원 선생, 유원제 (미수훈) 선생, 진영식(미수훈) 선생, 김교선 선생, 김언장(미수훈) 학생등 26명이다.

입장만세순국 열사 명단은 신일성 선생, 김영호(미수훈) 선생, 남기철(미수훈) 선생, 김세철(미수훈), 김모인(미수훈) 선생, 김희영(미수훈) 원장 6명이다. 마을마다 무수한 인사들이 만세운동 참가 사실이 확인되면 일제헌병들에게 끌려가 고문, 태형(笞刑), 곤장을 맞고 골병들어 죽어갔다. 곤장 60대를 맞은 인사들의 명단은 모두 소멸되었으나, 수신면 이훈영, 이의영, 이유광 선생 기록은 다행이 남아있다. 태형 80대 이상을 맞았어야 국가보훈대상자인데 60대 형을 받은 인사들은 보훈대상이 되지 못했다. 또한 연고 사실 확인이 되지 못해 서훈 받지 못한 인사들이 있다.

병천 박치석(8월형), 입장 조태환(2년형), 입장 한현숙(1년2월형), 병천 한동규(2년형), 목천보통학교 만세 참가자 170명, 4회 33명, 5회 32명, 6회 57명, 7회 50명, 조언비어(造言卑語) 북면 정진숙(8월형), 풍세 윤칠모(6월형), 치안유지 동면 이영준(1년6월형), 북면 박정석(7년), 천안면 유한기(7년) 선생, 서울만세운동 참가학생 봉재룡(奉在龍), 남정채(南正采) 선생, 천안만세운동 주동인사 허병(許炳), 최오득(崔五得), 인세봉(印世鳳) 선생, 목천만세운동 주동인사 김소용(金蘇用), 이규태(李圭?) 선생이다. 또한 입장만세운동 참가 인사들 19명을 구속하여 고문 조사하고 기소 중지한 사실도 있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 한몸바쳐 충의를 다해온 천안의 인물들 중에 밝혀진 명단은 광복단, 신간회, 독립단, 죽마회, 광복군, 형평운동, 해외운동, 청년계몽운동, 학교개명운동, 신사참배거부운동, 의병 농민운동등 모두 합해서 200여명이 된다.

독립운동 의사,열사들과 그 가족들이 겪고 당해온 상상도 못할 비참한 박해는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국가가 훈,포장을 드려서 다소나마 위로를 드리고 또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고는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미치지를 못한다. 그래서 더욱 천안의 순국선열님들의 의로운 독립투쟁 역사자료를 모아 다듬고 전시하여 천안의 정체성을 기념전수 할 수 있는 순국선열기념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이러한 기념관이 없다는 안타까운 실정을 늦게나마 일깨우고 공포(公布)한다.

이제껏 천안에 독립기념관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핑계로 우리가 시대적 사명을 외면하고 있다면 이제라도 그 책임을 통감하고 각성해야 한다. 이시대에 살고 있는 천안인들은 시대적 사명을 일으켜야 마땅하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기억에도 없는 순국선열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아! 새로운 역사가 눈앞에 펼쳤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새 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이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며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문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3.1운동이 있었기에 온 세계가 우리를 가리켜 살아 있는 민족이라고 독립된 국가로 민족으로 인정하게 됐다. 이 거룩하고 귀하고 자랑스러운 3.1운동을 일으킨 대한민국 백성이며 자랑스러운 조상의 후예라 자랑스럽다.

천안지역 만세운동기념광복기념관을 건립해야하는 우리시대 사명이 우리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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