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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스탠포드 충격 감옥 실험 이것은 실화다 엑스페리먼트!: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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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스탠포드 충격 감옥 실험 이것은 실화다 엑스페리먼트!

김영지 | 기사입력 2010/08/07 [17:31]

1971년 스탠포드 충격 감옥 실험 이것은 실화다 엑스페리먼트!

김영지 | 입력 : 2010/08/07 [17:31]


단지 게임이라 여겼던 14일간의 가상 감옥 체험
실험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한다!

트래비스(애드리언 브로디)는 사랑하는 연인 베이(매기 그레이스)와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한 목적으로 무작정 한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실험은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남자들을 간수와 죄수 그룹으로 나눈 다음 2주간 가상의 감옥 체험을 하는 것. 벤지, 닉스 등과 함께 죄수 그룹에 들어간 트래비스는 그 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실험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실험 2일째, 사소한 다툼이 간수 그룹에 속해 있던 배리스(포레스트 휘태커)와 체이스(캠 지갠뎃)를 자극하며 실험 참가자들은 점차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화하는 배리스 집단과 그에 반항하는 트래비스 집단. 실험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하면서 가상의 실험은 점차 파국의 현실로 치닫게 되는데…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변하게 하는가
Lucifer Effect

Lucifer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스로 타락하여 악마의 수장이 된 천사의 이름. Lucifer Effect’란 1971년 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직접 진두지휘 했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명명한 심리학 용어로 특정 상황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악마적 본성을 깨운다는 뜻이다. 즉 선한 사람을 추악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상황과 시스템이라는 것. 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통해 공개된 ‘루시퍼 이펙트’는 학계에 실로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평범했던 젊은이들이 일순간 악마로 변해버리는 모습을 보면 과연 진정한 휴머니즘이란 존재할까라는 의문마저 든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사건의 전말과 ‘루시퍼 이펙트’에 대한 자세한 진실은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루시퍼’를 깨우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며 경고하고 있다

 

The Experiment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5일간의 충격적인 이야기
1971년 스탠포드 대학 감옥실험


1971년 8월 14일 오전 9시 55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Palo Alto. 평온했던 이 지역에 대학생들이 대거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들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경찰에게 제압되어 지문을 체취 당하고, 눈을 가린 채 미란다 원칙을 듣고 있었다. 이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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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짐바르도 교수는
직접 피실험자들을 가상’체포’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사회심리학 실험을 위해 ‘감옥실험’을 계획하였다. 이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하기 위해 교수는 신문에 모집공고를 냈고, 일당 15달러를 지급하는 이 모의 실험에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70명의 남자 대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대학의 엄격한 심리검사와 테스트를 거친 지원자들 중 ‘아주 평범하다’고 판명되는 24명의 대학생들이 실험에 당첨되었으며, 실험 첫 날, 경찰의 협조를 받은 짐바르도 교수는 최종 선발된 지원자들을 1971년 8월 14일 직접 체포하면서 실험은 시작되었다.

실제 감옥과 같은 방법으로 수감된 피실험자들은


스탠포드 대학 지하에 마련된 모의 교도소에 모인 24명의 참가자들은 ‘동전 던지기’로 죄수와 간수로 나뉘게 되었다. 무작위로 선택된 죄수들은 감옥에 들어오기 전 모두 발가벗은 상태로 소독을 받고, 죄수복과 죄수 번호를 지급받았으며 머리에는 스타킹이 씌워졌다. 간수들은 간수복을 지급받고 호루라기와 곤봉, 선글라스를 착용하였으며 8시간씩 교대 근무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2주간 감금생활을 해야 하는 죄수들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간수들에게는 감옥의 질서를 철저히 유지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었고 이를 위해 교도소 내 새로운 규율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죄수건 간수건 간에 누구든 ‘실험을 그만두고 싶다’라는 말만 하면, 어떤 상황에서건 실험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제비뽑기로 죄수와 간수로 나뉜 실험자들

첫째 날,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며 무난하게 하루를 보냈다.
둘째 날 새벽, 간수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일어나 자신들의 고유번호를 부르는 점호가 이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죄수와 간수 모두 서로의 역할에 어색해 하였다.
셋째 날 아침,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던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죄수들은 머리의 스타킹을 벗어 던지고 침대를 감방 문 앞으로 옮겨 바리케이드를 친 채, 간수들에게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간수들은 교대 후 집으로 돌아간 간수들을 모두 호출하여 죄수들을 진압하였고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들은 그 동안 죄수들에게 너무 관대했다는 결론을 내리며 죄수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무방비 상태의 죄수들에게 소화기를 뿌려 그들의 침대를 빼앗고 옷을 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한 것. 거기다 빼앗은 침대와 죄수복, 더 나은 음식을 제공하는 ‘특실’을 만들어 죄수들보다 적은 인원의 숫자로 그들을 지배하는 고도의 심리 기술을 발휘하였다.
이 사건 이후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모욕적인 기합과 폭행을 일삼았으며 감방마다 배치된 배설용기조차 비우지 못하게 하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간수라는 임무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역할이 갖는 권위와 익명성에 곧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같은 실험 참가자인 죄수들을 실제로 ‘맞아 죽어도 싼 놈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근무시간 외에 교도소 밖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험’이라는 사실을 점차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학대를 받는
죄수 역의 피실험자들

이에 대항하는 죄수들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간수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조직적으로 대항하던 죄수들은 특실에 들어가는 동료들이 생기면서 결속력이 급속도로 약해진다. 동료가 간수에게 기합을 받거나 폭행을 당할 때에도 울분이 치솟는다기 보다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커져 갔다.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에 몰입된 이들을 지켜보던 짐바르도 박사 역시 이 상황에 몰입되어 죄수들이 정말로 열등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져들었고 간수들의 잔혹행위를 보고서도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실험 참가자들 중 아무도 일당을 포기하고 실험을 중단하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험 6일째, 어떤 실험 참가자의 부모가 자신의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짐바르도 박사에게 변호사를 보내고, 박사의 약혼녀 크리스티나가 이 실험의 잔혹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자 그제서야 짐바르도 박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황급히 실험을 중단시키게 된다. 2주간의 실험은 이로써 단 6일만에 끝나게 되었다.

이 놀라운 실험의 이야기는 ‘스탠포드 감옥 실험’(Standford prison experiment)으로 불리며, 논문으로 학계에 정식 게재되진 못했지만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직접 저술한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리오 지오다노의 소설 [The Black Box]에 영감을 주었으며 독일의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이 실험은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시 한번 거론되며 화제가 되었다.
 
?“평범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악마가 될 수 있다”
  Philip Zimbardo, ‘루시퍼 이펙트’ 중에서


30년 만에 부활한 스탠포드 대학 감옥 실험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사건’

1971년 충격적인 스탠포드 감옥 실험 이후 30여 년이 지난 후 실제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바로 2004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Abu Ghraib prison) 사건이다.

본래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시절 정치범 수용소였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는 바그다드가 미군에게 함락한 뒤에는 이라크인들을 구금하는 시설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평범한 군생활을 해왔던 미군 병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라크 포로들에게 각종 잔혹한 방식으로 고문과 성적 학대 등을 일삼기 시작했다. 가혹한 심문으로 포로들을 질식사시키는 한편, 여성 포로에 대한 성폭행 및 성적 학대를 자행하였으며 여러 명의 남성 포로들을 발가벗겨 바닥에 쓰러뜨린 후 머리에 두건을 씌운 채 문이나 침대에 손을 묶는 등 포로들을 모욕하는 각종 고문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슬람교도인 포로들은 자기 종교를 비난하도록 강요 받고, 금기시하는 돼지고기와 술을 강제로 먹기도 하였다.
더욱이 미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고문과 학대들이 재미있다는 듯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여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등 사람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일들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이들이 보낸 영상과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미군의 추행이 세계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세계 인권의 심장이라 자부하던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앞다투어 미국을 비난한 것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미국, 영국 연합군의 인권유린을 비난하는 성명과 시위가 잇따랐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될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사건’은 1971년 스탠포드 감옥 실험 사건과 유사성을 가지며 이 실험을 진두지휘 했던 필립 짐바르도 박사가 훗날 이뤄진 아부 그라이브 재판에 전문가 증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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