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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연구보고” 6.25 한국전쟁 천안인명 피해실상: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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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연구보고” 6.25 한국전쟁 천안인명 피해실상

김용식 | 기사입력 2013/06/05 [20:31]

“조사연구보고” 6.25 한국전쟁 천안인명 피해실상

김용식 | 입력 : 2013/06/05 [20:31]


 

천안역사문화연구실

실장 김 성 열

?1950. 6. 25 전쟁 도발, 1953. 7. 27 휴전 60년이 되었다.

자유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1950.6.23. 전쟁은 잊혀 졌지만 순국호국영령들이 지켜 준 자유 평화를 우리들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인민군은 1950년 6월 25일 3.8선을 넘어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켜 동족 상잔의 민족 비극을 도발했다.

한국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6월 28일 북한 인민군에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함락되었다. 7월 3일 일본 규슈에 있던 미군 제24사단이 긴급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7월 20일까지 16일 동안 오산, 천안, 대전간에서 한국전쟁 미군 최초 서부지역 지연작전이다.

미군 제24사단 제21연대는 한국의 대동맥과 같은 경부선을 중심으로 인민군과 대치하고 한국군은 평택에서 진천으로 선회하여 중부전선에 투입되었다. 미군은 북한인민군 주력부대를 상대한 전투이다.

7월 3일 제21연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제1대대가 오산전투에 배치되고, 7월 5일 죽미령에서 밀려 후퇴하고 제34연대가 투입되는 작전이다.

미국 보병 제24사단장 딘소장(WILLIAM F. DEAN)은 서울 남방의 평택, 천안전선의 방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50년 7월 7일 오후 4시쯤 딘소장은 자기의 명령도 없이 평택에 주둔하던 제34연대 1대대가 천안 이남으로 후퇴했고, 안성에 배치한 제3대대도 20마일 남방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오후5시쯤 공산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천안시가지로 돌입하여 반응하는 미군과 시가전으로 응전했다. 천안 북방 부대동, 신부동에서 패전한 미군은 천안과 목천의 경계 도리티고개 천안삼거리로 후퇴하여 포진했다.

제34연대가 천안전선에서 혼전을 거듭하며 지연방어 작전을 실시하고 있을 때 연대장 교체명령이 발표되었다. 불과 두 달 전에 취임한 라블리스(Jay B. Loveless)대령이 해임되고 로버트 마틴대령(Robert R. Martin)이 신임 연대장으로 교체되었다.

7월 8일 아침 연대장 마틴대령은 천안시 구성동 네거리 민가 오두막집에서 적의 탱크와 맞섰다.

마틴대령의 사수역을 하던 크리스텐손(Jerry C. Christenson)상사에게 바주카포를 장전시켜 탱크를 향해 발사했는데 탱크에 명중했으나 동철장갑에 불길은 꺼지고 적의 탱크에서 발사한 85mm 포탄은 마틴대령의 몸을 산산조각 내어 산화했다.

크리텐손상사 역시 부상을 입고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마틴대령의 사망으로 천안전선은 큰 혼란에 빠졌다. 후퇴하려해도 사방이 포위되었다. 도리티고개에 포진한 미군이 연막을 쳐주어 7월 8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겨우 일부만 탈출하였다.

생환자는 대대장 이하 175명에 불과 했으며 연대장 마틴대령과 함께 미군 제34연대 129명이 전사했다. 인민군에 포로된 미군 168명은 천안읍사무소에 수용했다가 북쪽으로 이송됐다.

7월 8일에 미군이 도리티고개로 후퇴하고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천안을 점령하면서 천안은 뼈아픈 인명피해를 입게 됐다.

인공기가 길가에 내 걸리고 공산치하 인공 79일이 시작 되었다.

1946년 2월 9일 해방 후 신탁통치 찬반이 격돌하는 혼란기에 천안에 침투하여 지하 활동하던 좌익 추종자들이 우익 인사들을 테러할 계획을 세웠으나 천안의용소방대 태국동맹 애국단체에 의해 사전에 소탕된 사건이 있었다. 이름하여 천안2.9반공 거사이다.

이때 탈출한 좌익 추종자들은 6.25전쟁 7월 8일 인민군을 뒤 따라 천안으로 들어와 먼저 애국단체 인사들에게 보복 감행하는 참변이 있었다.

2.9반공의거 관계인사, 지역유지 가족들과 군인, 경찰, 공무원가족, 기독교 인사, 고용주, 150여 명은 천안읍사무소 2층(동남구청 문화동 청사 회의실)에 감금당하고 갖은 고문을 받으며 반죽음이 되었다.

9월 18일 우익인사 21명은 철사 줄에 묶인 채 트럭에 실려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이 있을 뿐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대전형무소 우물 속에 처넣거나 학살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 우물 속에 처참하게 학살된 인원이 2만 3천이나 되고, 수복 후에 확인했으나 천안 인사들은 시체를 수습되지 못했다고 한다. 우익인사 가족들은 인공치하 79일 악몽을 기억하며 (음력 8월 15일) 양력 9월 26일을 제삿날로 정했다.

천안군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인공치하 아래 차츰 참상은 면 단위로 확산되었다. 먼저 성황동 천주교 프랑스 국적 테스테라도(한국이름 심응영 당시 66세) 신부가 대전형무소까지 끌려가 학살되었다고 한다.

이런 갖가지 헤아리기 어려운 인명피해 참상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 되어 있는 자료와 “6.25와 천안”(전병규 저)을 참고하여 학살 인사와 납북인사 명단을 정리해서 밝힌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명부 문서는 정부의 휴전 협상 제출용으로 1952년 공보처 통계국에서 작성한 것이다.

전국 통계로는 납북인사가 20만 명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납북인사 명부에는 82,959명이다. 그리고 피살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되고 학살인사 명부에는 59,994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누락된 납북 피살인사가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단이 세상에 공개되어 밝혀지므로 자진월북 아니면 납치를 당해 끌려간 것인지 공산당들에게 학살당한 것인지 아니면 부역(공산당 동조)하다가 처형당한 것인지 몰라 숨죽이며 살던 가족들은 공개적으로 인증 받을 수 있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6.25전쟁 당시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희생당한 납북 학살인사들의 명예 회복은 물론 확인과 보상을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은 아직도 유보되고 있다.

절대적 공산주의 선동 이데오르기는 민족의 역사적인 통한을 남겼을 뿐이다. 명예회복으로 밝혀야 하고 냉전시대 민족통한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야 할 과업이다.

1950. 6. 25 전쟁 우리 민족 동포들이 같이 겪었던 동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고 평화통일이 될 때 까지 앞으로도 계속 두 세대를 넘어 비극의 고통을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같이 절규하며 청산해야 할 이 시대의 절대적 우리 모두의 과업이다.

자유 평화 민주적 통일국가 건설이 넘어야 할 6.25 동족상잔 비극 상처는 너무도 깊고 크다.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통일 대한민국 선진 조국 건설은 우리시대의 사명이고 책임이다.

○우리들은 결코 그들의 이름을 잊을 수 없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당신들이 흘린 피와 눈물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준 용감한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지역별 학살 납부 실상

?각 도별 학살자수

※전남 43,511명 - 72.6%로 가장 많으며

나주 3,596, 장성 4,306, 함평 1,954, 영암 7,175명

서울 1,383, 경기도 2,536, 충북 663, 충남 3,680, 전북 5,603, 전남 43,511, 경북 628, 경남 689, 강원도 1,216, 제주도 23명

계 남자 44,000명, 여자 15,900명, 합계 59,932명

?충남도 시군별 학살자수

※천안 64명중 54명은 천안에서 10명은 외지에서 학살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국적으로 천안군은 희생자가 적은 편이다.

서산 238, 당진 251, 아산 236, 천안 64, 홍성 242, 예산 241, 연기 35, 보령 56, 청양 56, 공주 199, 서천 604, 부여 180, 논산 863, 태안 164, 금산 142명

계 3,789명

?각 도별 납북자수

서울 24,000, 경기도 15,871, 강원도 10,422, 충남 9,972, 경북 7,483, 전북 7,013, 충북 6,166, 전남 3,554, 경남 1,805, 제주도 45명

계 남자 79,145명, 여자 1,516명, 합계 80,661명

?충남도 시군별 납북자수

대전 383, 대적 472, 연기 264, 공주 1,774, 부여 664, 논산 1,585, 서천 628, 청양 242, 홍성 433, 예산 1,439, 서산 523, 당진 546, 아산 246, 천안 282, 보령 491

계 남자 9,641명, 여자 331명, 총계 9,972명

※천안 282명중 남자 276명 여자 6명이며 282명 명단에 피살자 54명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에겐 죽은 친구들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희생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 노별평화상수상 엘리비젤 -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피살된 인사명단

?태극동맹 인사(8명)

崔力山(천안읍), 尹吉淳(천안읍), 李甲福(천안읍), 宋夏榮(성환면) 洪炳烈(북 면), 李貴慶(성환읍), 鄭榮保(성환면), 趙寄行(천안읍)

?우익인사(13명)

李揆奭(목천면), 李揆賢(영성동), 車會錫(직산면), 任寬宰(성거면), 權容圭(사직동), 葛鍾民(성환면), 辛聖澤(성환면), 韓相讚(농 업), 李根春(농 업), 黃義俊(농 업), 玄英淳(천안읍), 元宣常(천안읍), 李東宰(천안읍)

?6.25전쟁 전몰 국군, 경찰, 천안 용사

천안시 88명, 천안군 127명

?6.25전쟁 군경상이용사 천안시 32명, 천안군 33명

?학도병 전사 2명(이름미상)

천안농업중학교 재학생

?공산당 좌익동조 행위자 검거 인원

1,370명 전해오나 명단 없음

?보도연맹 검거 22명 특별처리(7.5)

?미군 육군 제24사단 34연대

연대장 마틴대령과 129명 전사, 포로 169명

?천안지방 인명 피해 - 225명

좌익분자 78명, 우익인사 52명, 폭격사망자 95명

?천안지방 건물피해

6.25 전쟁 중 1,042동

1.4 후퇴시 1,200동

?유량동 태조산 공원 천안인의 상

강령비 각명 1,111위

호국순국영령 천안을 빛낸 이름 각명

천안시 남산 충령사 319위

천안군 성거 충혼탑 632위

1996.4.15 통합이전 943위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었던 것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념, 선동, 공작, 투쟁 공산주의 절대 이데오르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공산주의 좌익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유엔 가입국가로 세계의 한 국가로 등장하였다.

공산주의 망령은 러시아, 중국, 베트남 세계 어디에도 없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쏘련이란 나라마저도 없어졌다. 북한만이 아직도 공산주의 계급혁명 투쟁 망령이 살아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세계 속에 통일 민족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6.25전쟁으로 서로 받은 깊은 상처가 뛰어 넘어야 할 큰 장벽이 있다.

서로 받은 깊은 상처를 뛰어 넘을 방법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정감(情感)으로 관용과 용서 화해하는 것이다.

우리시대정신은 반공통일정신에서 자유 수호, 안보정신 그리고 자유평화, 평등, 민주통일 정신으로 승화하여 민족 통일 완전독립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 시대적 사명이다.

삼가 호국 영령들 앞에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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