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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속으로 사라진 고달사: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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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속으로 사라진 고달사

이승철 | 기사입력 2010/05/07 [06:51]

풍운속으로 사라진 고달사

이승철 | 입력 : 2010/05/07 [06:51]


 

고달사지(高達寺地)

 

사적 제382호인 고달사지는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옛 절터로서 764년

경덕년에 봉황암(鳳凰庵)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고려시대를 거처 1233년

(고종0) 해진대사가 주지로 취임하여 크게 확장하고 중건되었지만 언제 폐사(廢死)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임진왜란때 화를 입은것으로 전해지고 있는?곳입니다.?

절터 발굴현장에 서면 고달사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품은 대지는 말이 없으니 오후로 흐르는 시간이 고즈넉합니다.

 

발굴과 함께 복원이 이루어지는 듯 한데 옛 것과 새것의 명암비가 확연히 눈에 띕니다.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비(보물제6호)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

 

해목산 나무위에 산새들 지저귀고

상교리 삼거리엔 오늘도 끝없이 건너는 인마(人馬)

고달사 옛터를 지키는 수많은 선인들의 숨소리 아득한데

도윤은 어이 홀로 옛 고적(古蹟) 쓸쓸한 벌판을 지키고 있느냐.

(작가미상, 이하 중략)

화강암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이 탑비는 1916년에 도괴되고 신석(身石)은 현재 경복궁에 보존되어 있고, 고달사지에는?귀부와 이수만 남아있습니다.

 

거북의 몸통에 용두로 마감한 이수(?首),

이수는 건축물이나 공예품에 뿔 없는 용의 서린 모습을 아로 새긴 형상을 말하는데 날카롭지 않으면서 깊은 질곡과 사실적인 명암으로 인하여 고려 초기의 석공미(美)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탑의 일부만 남아있는 탑비의 규모가 실로 대단할 뿐더러 마치 석고처럼 주물러놓은

조각의 섬세함에 감탄을 아끼지 못합니다.

 

탑비 측면에서 본 조각의 암부가 매우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섬세하면서도 웅장함은 고려시대의 기상과 기법이 맞물린 것 같습니다.

 

 

거북의 꼬리가 나와있는 탑비의 뒷모습입니다.

 

?탑의 초석에 날카롭게 박힌 발톱... 사실적인 조각에 탄성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탑의 일부가 떨어져나온 조각이 거북 뒤편에 놓였는데 돌 조각 하나에도 옛 장인의

숨결이 배여 있을테니 함부로 할 수 없겠네요.

 

석불좌대(보물8호)

 

화강암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불좌로 높이 1.57m로 얼마나 큰 석가여래좌상이 있었는지

눈가름 할 수있는 연잎 조각의 직사각형 좌대가 실로 웅장합니다.

 

귀두가 떨어져나간 크기가 작은 또 다른?거북이 형상의 석물, 물을 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걸로 봐서 나름의?용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해설판이 없어니 정확한 이해를

구하기 힘듭니다.

 

 

 

?넉장으로 짜여진 사각형 지대석 위에 새워져 역시 화강암으로 만든 고려시대 것인 보물 제6호로 지정된 원종대사헤진석탑은 이날 만나보지 못했으니 아쉽습니다.

?고달사지를 지나 고달사?표지석을 끼고 키 큰 자작나무 곁을 지나 오른쪽으로?발길을 옮겨보면 사찰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다향류"란 이름의 너와지붕 정자각 하나,

 

?다향루(茶香樓)

 

목피로 이어만든 지붕이 너와집을 연상케 하는 다향루, 이끼가 내려앉은 지붕에 고운

산사의 차향이 함께 한다면 세상 시름 잠시 내려놓고 마냥 쉬고 싶은 정자입니다.?

 

"극락전" 현판이 왜 이곳에 놓였는지 모르겠지만 향기로운 차 한잔에도?마시는 이의 마음에 따라 극락과 지옥을 오고 간다는 고달사 운문을 내려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조립식 건물 두 채가 대웅전과 산신각을 대신할 뿐 사찰 다운?건물은?없고, 인근에

?"신고달사"란 사찰이 들어섰지만 느낌이야 옛 터를 간직한 이곳 만할까요 

 

석구에 흐르는 산수(山水) 조차 멈추어버린 지금은?마냥 허허롭기만 합니다.?

 

?대웅전을 뒤로 돌아 산수유 서너 그루가 있는 야트막한 산기슭에 복전함을 앞에다 둔

고불여래의 머리속이 무척 복잡할 듯 한데 먼 옛날 시간을 꼭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위 위에 놓인 빈 화분 받침대는 사물의 무게를 내려놓게 할터인데 사물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사람의 마음일거란 생각이 스치니 짐진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가는 것은

?이곳 불자들의 몫일겁니다.

 

?고달사 표지석 뒤에 새겨진 연못 "연(淵)" 자가 뜻하는 건 무었일까요??

혹여, 고달사지 두 마리 거북을 위하여 연못을 만들어 놓은건 아닐는지요.?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하나인 이길에 인적까지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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