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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해맑은 천사의 할머님과 가족사진: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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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해맑은 천사의 할머님과 가족사진

이준태 | 기사입력 2013/03/18 [06:30]

(기고)해맑은 천사의 할머님과 가족사진

이준태 | 입력 : 2013/03/18 [06:30]

지난 3월 10일 일요일, 가족과 함께 섬돌요양원을 찾았다. 가족과 함께 뿌듯한 일을 할 것이라는 마음 때문인지, 어떤 어르신들을 뵙게 될까 하는 기대감 때문인지 집에서 요양원까지 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들뜨고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요양원에 들어서면서 느낀 오랜만의 분위기는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지정받은 장미동 1층 생활관으로 갔다.

그곳은 할머니들만 계신 곳이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휠체어에 타고 계셨고 몇 분은 아직 아침잠에서 덜 깨어나신 건지 주무시고 계셨다. 나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임무는 봉걸레로 어르신들께서 바닥에 흘리신 아침잔반들을 모아 버리는 것이다. 행여나 어르신들께서 깨실까 봐 조심스레 닦았다. 거의 다 닦아갈 무렵, 할머니 한 분께서 나를 보며 청소하는 것이냐고 물으시면서 ‘아이고 내 새끼 착하다,’ ‘예쁘다’고 계속 말씀해주셨다. 미안할 정도로 계속 칭찬해주시니 힘든 것도 잊고 기분도 좋아져서 더욱 열심히 봉사활동에 임했다.

그렇게 잔반들을 다 모아 버린 다음에는 할머님들을 휠체어에 앉혀 운동장으로 모셨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롭게 보여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부분 장애등급 3급 이상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들은 중병을 앓고 있거나 치매가 있으셨다. 자식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누구시냐며 물으시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옷에다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는 할머니, ‘엄마 배고파!’ ‘밥 주라’를 연발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저 분들도 젊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멋을 부렸고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자식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콧잔등이 시큼해졌다.

원장님 말씀으론 자기 어머님을 입소시킨 후 한 번도 오지 않은 자식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원장님께서는 할머니들을 부모님처럼 친절하고 정성을 다해 보살피셨다. 또한 기독교장로님이라 그러신지 어르신들이 교회에 다 같이 모여서 기도를 드리시게끔 하셨다. 남의 부모님도 자기 부모님처럼 모시는 원장님을 보며 거룩한 희생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되었다.

할머님들의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가는 길 도중엔 문턱이 하나 있었다. 매번 휠체어를 몰 때마다 살짝 들어 문턱을 넘기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몇몇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할머니들은 손을 잡고 교회까지 같이 걸어가는데, 어떤 할머님은 교회에 다 왔는데도 내 손을 안 놓아주시며 같이 살자고 하여 난감하기도 했었다. 이럴 땐 거기서 일하시는 사회복지사 한 분께서 할머님 손을 떼어 주셔서 어렵사리 다른 할머님께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손을 꼭 잡으실 때의 할머니의 마음, 뭔가 사람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어 하시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의지하고 싶어 하시는 할머님의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어르신들을 교회로 모두 옮겨드린 후엔 다시 생활관으로 돌아와 어르신들이 쓰시는 방을 청소했다. 엄마는 닦고 나는 쓸었다. 방을 청소하다가 할머니의 젊었을 때 가족사진을 발견하였다. 가족사진에는 활짝 웃는 모습과 활기가 넘치는 얼굴, 장성한 자식들이 있었다. 그 자식들과 가족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곤 하였다.

청소를 끝내고 얼마 되지 않아 간호사, 사회복지사, 관계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다시 할머니들을 생활관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님은 사회복지사 분이 아드님을 여쭙으며 말을 걸어드리자 자신의 자식 얘기를 계속 하셨다. 큰딸이 언제는 방울토마토를 사오고 또 언제는 아이스크림, 박하사탕도 사왔다면서 기쁜 듯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계속 얘기 하셨다. 그 모습이 너무 해맑아 보이고 아기천사같이 보였다.

할머니들을 다 옮겨 드리고 사무실에서 잠시 쉬고 있자 엄마가 이번에는 할머니들을 산책시켜드리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 한 분씩 휠체어를 밀어드리면서 산책을 했다. 밖에 마당에 있는 잔디밭에 참새와 까치들이 짝을 지어 노니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햇살도 따스하여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나보고 착하고 예쁘다고 해주셨던 할머님이 갑자기 ‘저리 가’ 하면서 욕을 하셔서 당황했긴 했지만 매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금세 네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간만의 봉사활동이라선지 많이 서툴고 힘들었지만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에는 할머니들이랑 더 많이 얘기 하고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을 뵈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항상 고생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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