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天燈) 이진호 시인, 문학에 기여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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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天燈) 이진호 시인, 문학에 기여는 끝이 없다
  • 조기홍 기자
  • 승인 2022.07.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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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교사 초년생 시절 노래 만들어 스타 교사로 두각 인생역전

 

학창시절 꼴찌도 졸업하고 뒤늦게라도 회심하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 지금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는 학생들에게는 천등(天燈) 이진호 시인이 롤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전 국민들이 애창했던 건전가요 ‘좋아졌네’와 지금도 전군 장병들이 날만 새면 입술이 부르터지도록 부르는 군가 ‘멋진 사나이’의 작사가인 국민시인 천등 이진호 선생은 사실 충주사범학교 시절 낙제를 겨우 면하고 졸업을 했다.

“나는 사범학교 들어갈 때 전교 60명중 6등이었고 졸업할 때는 57등이었어요.”

입학할 때 우등생이었던 천등은 1학년 초부터 규율부에 가입하게 되는데 완장을 차는 순간부터 일그러진 영웅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주먹께나 쓰는 선배들과 같이 선도 활동을 하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우쭐거리며 다니는 건달이 되고 말았다.

그때도 체격은 작은 편이었지만 몸집이 좋은 선배들과 어울려 다니면 모든 학생들이 도망갈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범학교 3학년 때는 이웃 학교를 대표하는 건달 2명과 함께 ‘충주3인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충주시내를 주름잡고 다녔다.
1956년 꼴찌로 졸업하고 고향에서 선생 되는 것이 부끄러웠던 천등은 멀리 타지에 가서 교직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담임선생님도 혀를 차면서 바닥이 좁은 충북에서 소문난 건달 제자를 위해 마침 교원이 부족하다고 요청이 들어온 경남으로 가도록 주선했다.

“1957년 경남 함안군 이령초등학교에 갔습니다. 낙동강 가에 있는 시골학교였어요.”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초교 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음악시간이었다. 사범학교에서 학업을 게을리 하며 오르간 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풍금을 못 쳐 정말 난감했습니다. 교회 장로이기도 한 60대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도레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죠.”

그 선생님은 20대 초년생 교사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하다가 풍금의 건반을 하나씩 짚어가며 음계를 가르쳐줬다.

“그 선생님한테서 도레미를 배운 후 밤마다 혼자서 촛불을 켜놓고 건반을 두드려 봤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건반을 짚어 나가는 대로 음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노래도 지어보았다.

“멜로디로 건반을 쳐가며 직접 가사를 써 ‘가을인가요 가을이래요’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쳤더니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는 그 노래의 악보를 서울에서 발행하는 교사를 위한 잡지 ‘새교실’에 보냈다. 그런데 거기에 그가 만든 노래가 실렸다. 뿐만 아니라 그 곡을 채택한 문교부 음악담당 정세문 편수관이 반주도 같이 할 수 있도록 악보를 만들어 보내 달라고 다시 요청까지 했다. 사실상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천등 선생으로서는 4부로 콩나물을 복잡하게 그려 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그의 노래가 새교실에 소개된 것 자체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대사건이 되었다.

졸지에 그는 함안군에서 유명한 스타 교사가 됐다. 자신감을 얻어 시를 쓰기 시작했고, ‘낙동강’이라는 제호로 학교신문도 만들기도 했다.

이령초교에서 2년을 근무한 후 그는 함안 가야초교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충북 제천 동명초교로 부임했다. 제천 동명초교에서는 ‘동명어린이’라는 학교신문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소년한국일보 전국교지콘테스트에 보내 최우수상을 받았다. 등사용 원지에 철필로 일일이 글자를 새기고 편집해서 검은 유성 잉크를 묻힌 롤러로 찍어내는 등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 신문은 전국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선정돼 문교부장관상을 받은 것이다.

그 일로 그는 동명초교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불과 6개월만에 도청소재지 청주로 발령을 받았다. 청주 석교초교에서 2년을 근무하던 중 그는 서울의 한 사립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는 매원초교였는데 당시 교사 봉급이 공립학교보다 무려 6배나 차이가 날 정도로 대우가 매우 좋았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미아리고개 입구에 바로 집을 샀다. 매원초교에서도 학교신문을 만들어 소년한국일보 교지콘테스트에 보냈고, 최우수작으로 선정돼 학교에 문교부장관상을 선물했다.

매원학교에서 10년간 근무하는 동안에도 그는 꾸준히 시를 썼다. 또한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동요와 건전가요로 널리 불리어지기도 했다. 그중에 가장 히트를 친 것이 ‘좋아졌네’였다.

이진호 문학관에서

 

좋아졌네 좋아졌어/몰라보게 좋아졌어/이리 보아도 좋아졌고/저리 보아도 좋아졌어//우물가에 물을 긷는 순 얼굴이 하하/소를 모는 목동들의 웃는 얼굴이 하하/마을마다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하하/랄 랄 랄 랄 랄 랄 랄 랄 라…

이 노래는 당시 새마을운동에 불을 붙이며 전국을 강타했다. 서울에서도 스타 교사가 된 그는 ‘새교실’ 잡지에 표지 모델로 실리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특별시교육청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구본석 서울시교육감이 1981년 가을 나를 공립학교 교원으로 선발해 신용산초등학교에 보냈어요. 당시 사립초교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죠. 중학교를 무시험 전형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사립학교에 대한 메리트가 없어졌어요. 신용산초교는 한강맨션이 처음 건립된 후 생긴 학교라 유명한 정치가와 군장성들이 다 거기 살고 있었어요. 국방부장관과 서울시교육감이 살고 있었으니까 수준이 굉장히 높은 동네였죠.”

천등 시인은 신용산초교에 근무하면서 국방부 군가제정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군가제정위원회는 작사가 10명, 작곡가 10명으로 구성됐는데 그 중 한 사람으로 내가 발탁됐어요. 노래를 만들고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각 부대에 보내 품평을 부탁했습니다.”

전군에서 장병들이 불러보고 평가한 결과 천등 시인이 가사를 쓰고 장익환 작곡가가 곡을 붙인 ‘멋진 사나이’가 1위로 선정됐다. 당시 주영복 국방부장관으로부터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 설치한 이진호 시 랑랑랑 힐링투어 시비

 

1999년 서울 도봉구 누원초교에서 교직을 은퇴한 천등 선생은 지금도 강북구 번동 강북경찰서 정문 부근에 마련한 자택에서 여전히 시를 쓰고 각종 문예지에 시 해설 등의 연재물을 집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교직에서 물러난 후 후배 문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천등문학상은 올 가을 22회째 시상식을 할 예정이다. 그가 평생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411곡, ‘좋아졌네 좋아졌어’라는 제목의 책으로 곧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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