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투쟁 정신은 여전히 살아움직인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조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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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투쟁 정신은 여전히 살아움직인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조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 윤종은 기자
  • 승인 2022.05.18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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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항전으로 산화한 시민군의 불굴의 정신이다
광주의 숭고한 투쟁 정신은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계승되고 확장되었습니다.
5·18은 한국 민주화의 초석으로서 광주,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 따라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미완의 진상 규명에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1980년 5월, 80만 광주시민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투쟁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42년 전의 위대한 영웅들을 경건히 기리고 추모하면서, 당신들이 남긴 숭고한 정신을 가슴에 새깁니다.

1980년 광주시민군은 성명서에서 "지금 광주에서는 제2의 군부 독재를 저지하기 위하여 젊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습니다. ··· 이에 우리 광주 시민 일동은 이 고장을 지키고 이 민족의 민주 혼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총을 들고 일어섰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너무나 무자비한 계엄군의 만행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선 것"이라면서, 시민을 지키기 위한 시민군이라고 했습니다. 

광주시민들은 비록 열흘간의 전투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이후 역사에서는 마침내 학살 만행의 반란자들을 처단한 영광스러운 승리자입니다. 시민 앞에 살기등등하게 군림하던 자들이 국회 청문회장이나 재판정에 불려 나와 야비한 태도로 비굴한 변명을 늘어놓는 추악한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엄정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새삼 옷깃을 여미고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전개된 최후의 결사 항전에서 산화한 영웅들을 추모합니다. 당시 도청은 시민 항쟁의 중심이었고 항쟁을 지도한 지도부가 있던 곳입니다. 하지만 소총 몇 자루로 무장한 시민군들 힘으로는 장갑차를 내몰면서 자행하는 계엄군의 살육 작전에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뒷날 증언에서 한 시민군은 “도청에 들어간 우리들이 모여 있으니까 돌아가신 윤상원 대변인이 오셔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는 ‘굳은 각오가 아니면 지금 상황을 헤쳐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굳은 각오와 결의가 없는 사람은 지금 나간다 해도 말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말로 다시 한번 다짐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전남대생 천영진 증언) 

위 증언처럼 도청 사수대원들은 목숨을 잃을 것이 너무도 확실하였지만 열사들은 말 그대로 결사 항전으로 최후의 순간에 생명마저 바치면서, 끝내 광주 시민을 지켜내고, 민주주의를 살려내고, 이 나라의 주인들에게 폭압에 굴하지 않을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비록 당장의 전투에서는 무참히 패배할지라도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 땅에 민주사회를 세우는 초석이 되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가슴을 저미는 숙연한 역사입니다. 

광주의 숭고한 투쟁 정신은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계승되고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500만 명의 6월항쟁과 1,500만 명의 촛불혁명으로도 미완의 민주화 상태입니다. 권력을 움켜쥐고 매 시기 역사를 파탄냈던 독재자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축출되었지만, 그러나 특무대에서 중앙정보부 경호실 보안사 안기부 그리고 검찰로 이어지는 조폭의 통치는 재현되고 있습니다. 

반민주의 뿌리를 4·19 혁명으로도, 10·26으로도, 6월항쟁으로도, 촛불혁명으로도 아직 뽑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탱크나 장갑차보다 더 파괴적인 사악한 수구언론을 방치하고 용인한 때문입니다. 그들의 요설로 정의를 향한 투쟁정신은 무의미해지고,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사랑과 양보는 시대착오가 되었습니다. 신뢰보다는 불신이, 화해와 협력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우선시 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신들의 살신성인 정신을 더욱 절실히 갈구하는 까닭입니다. 광주의 이념과 정신으로 불굴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광주 5월의 위대한 영령들이여! 이 나라에 더 이상의 차별과 억압과 적대적 갈등이 없는, 민주화해 대동의 세상이 되도록 굽어살피면서 이끌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한편, 1997. 4. 17. 자 대법원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두환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반란세력 즉, 5・18 내란행위자들이 1979. 12. 12. 군사반란에 이어 1980. 5. 17.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판시하였다.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 목적 살인,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받았고, 내란 수괴 전두환은 2,205억 원의 추징금이 확정됐으나 일부만 갚고 25년을 버텨 남기고 간 미납 추징금은 약 956억 원에 달하는바, 특별사면과 복권을 발표해 내란주요 임무종사죄인 노태우와 함께 둘은 2년 남짓의 수형 생활 후 석방됐으나, 참회가 생략됐는데 고인이 됐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5·18 정신 위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서울기념식이 서울시민 모두가 5·18민주화운동의 고귀한 정신을 오롯이 계승해 희망 가득한 오월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바, 12. 12와 5. 18을 전후하여 발생한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반란 신군부 폭력과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에 맞서서 정당한 행위를 한 '광주민중항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5·18은 특정 단체의 전유물이 아닌 한국 민주화의 초석으로서 광주,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 따라서 5월 단체들은 이제 5·18 정신 계승과 전국화·세계화의 구심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미완의 진상 규명에도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내외신문] 윤종은기자: tomayo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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