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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관찰하며 스스로 깨우친다, 박대성 화백 (1945~):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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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관찰하며 스스로 깨우친다, 박대성 화백 (1945~)

정재훈 한수원 사장 | 기사입력 2021/08/02 [09:01]

조용히 관찰하며 스스로 깨우친다, 박대성 화백 (1945~)

정재훈 한수원 사장 | 입력 : 2021/08/02 [09:01]
사진=정재훈 사장 페이스북
사진=정재훈 사장 페이스북

 

조용히 관찰하며 스스로 깨우친다, 박대성 화백 (1945~):

박화백의 수묵화를 보면 모더니즘이 묻어나오는 데 농담의 깊이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일찌기 진경산수를 구가했던 겸재 정선, 청전 이상범의 흔적도 보이지만 같은 대상을 더 크게 더 창의적으로 표현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수묵화를 재발견하게 해줍니다.

일필휘지로 치고나가는 그림, 석탑위에 그리고 노송위에 쌓인 눈을 보여주는 세세함 그리고 작가의 기를 느끼게 해주는 힘이 공존하지요. 폭포를 그려도 그대로 모사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느낀 크기와 소리, 인상을 연결하여 폭포를 재구성하거나 금강산도 공중에서 새의 눈으로 본 모습을 360도 광각으로 다시 표현하는 방식도 시도하지요. 같은 산수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도 보며 생각을 열어놓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원래 따로 학교에서 미술을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스스로 깨우쳤기 때문에 국내 화단에서 인정 받기가 어려웠으나 70년대말에 국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미술계의 주목과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이어서 80년대초반 가나아트센터의 최초 전속 작가가 됩니다. 이건희 컬렉션에도 다수의 박화백 작품이 포함되어 또 한번 세상의 관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사실 외국에 박화백의 그림을 선호하는 컬렉터들이 더 많습니다.

90년대에 다 내려놓고 뉴욕으로 가서 서양회화의 모더니즘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하였으나 오히려 우리 회화의 참 가치를 확인하고 돌아온 이후에는 경주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때 애장하던 860여 작품을 경주에 기증하여 솔거미술관이 탄생하게 되고 박화백의 상설전시관이 마련됩니다.

눈내린 불국사도 그렇고 고서체를 재형상화한 서예작품도 대작이 많다보니 웬만한 공간에서는 전시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벽면에 다 걸리지가 않으니까 바닥까지 늘어놓는 경우가 있는 데 일전에 웬 꼬마가 그런 작품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부모는 사진을 찍은 게 알려져서 시끄러운 적이 있었지요. 박화백의 반응은 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아이와 부모에게 나쁜 기억을 주기 싫어서 변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물론 망가진 것도 역사이니 그대로 보관하겠다 하며 오히려 그런 해프닝이 자신을 세상에 더 알려주게 해주었으니 그아이가 내게는 봉황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으니까요...이시대에 보기 드문 어른이기도 합니다. 6.25때 부모님을 잃고 자신의 왼팔을 다쳐서 오른손으로만 그림을 그리시지요.

불국사, 금강산, 천제연폭포, 구룡폭포, 청우, 버들 그리고 본인이 수집한 자기등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고미시리즈에 이르기 까지 이번에 인사아트센터 (7.27~8.23)에 '정관자득'이란 타이틀로 기획된 전시는 박화백의 진면목을 느껴볼 수 있고 그가 생각하는 회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시간 되실 때 인사동에 들러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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