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곽종석(郭鍾錫) 선생과 심학도(心學圖)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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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곽종석(郭鍾錫) 선생과 심학도(心學圖) 해설
  • 고영화(高永和)
  • 승인 2021.07.2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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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행적(行跡)과 철학
(2) 심학도(心學圖), 마음을 공부하는 그림

<독립운동가 곽종석(郭鍾錫) 선생과 심학도(心學圖) 해설> 

(1)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행적(行跡)과 철학

사진=고영화 페이스북
사진=고영화 페이스북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주자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본관은 현풍(玄風), 아명은 곽석산(郭石山)이나 경술국치 후에는 곽도(郭鋾)라고도 하였다.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으로, 아버지는 곽원조(郭源兆)이다.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문인이며, 이황·이진상의 학문을 계승하여, 주리설을 주장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 때 영국 영사관에 일본침략 규탄을 호소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에 열국공법(列國公法)에 호소할 것을 상소하였고, 1919년 2월에는 유생들의 연서(連書)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호소문을 발송시킨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으로 투옥되어 2년형 언도를 받고 대구감옥에서 3개월 복역 후 풀려났으나 후유증으로 이내 병사하였다.

○ 곽종석은 그의 집 처마가 낮아 출입할 때면 언제나 머리를 숙여야 할 정도의 집에 거처했다. 그 때문에 그가 호를 ‘俛宇’ 즉, 숙이고 들어가는 집이라고 지었다. 그런 중에도 일생을 통하여 학문과 수신에 정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1919년 2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나 그해 8월 향리 거창에서 세상을 버렸다. 그는 많은 제자들에게, “군자는 만세를 위하여 도모할 것이요, 한때의 계획을 위할 것이 아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하라!”로 유훈을 남기었다.

○ 면우(俛宇)는 25세 되던 겨울에 경북 성주군 대포(大浦)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을 찾아가 그의 문인이 되었다. 곽종석은 이진상이야말로 퇴계(退溪)의 학통을 잇고 주자(朱子)의 종지(宗旨)를 체득하여 사풍을 일으킨 스승으로 존경해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면우는 스승 한주(寒洲)의 학풍을 그대로 이어받아 1만3천4백자에 달하는 <한주행장(寒洲行狀)>을 지어 가르침에 대한 사모의 정을 표시했다.

○ 면우(俛宇) 선생이 말하길,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극(克)’이란 이긴다는 것이고, ‘기(己)’란 몸에 있는 사욕을 말하며, ‘복(復)’이란 돌이킨다는 것이고, ‘예(禮)’란 천리(天理)의 도덕적 법칙(節文)이다. 사람의 충동은 예와 의로써 조정해야 하는데, 자기의 욕망을 예의로써 나날이 극복하는 길이 사람됨의 길(仁)이 되고, 나아가 이를 사회적으로 확충시키면 곧 도덕사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곽종석(郭鍾錫)은 ≪논어≫에서 ‘극기복례’의 효과로 “하루를 극기복례하면 천하가 ‘인(仁)’으로 돌아올 것이다.”고 한 데 대해, ‘하루’를 ‘천하’와 같이 큰 것과 대응시켜 말한 의미는 ≪대학장구 大學章句≫ 격물보망장(格物補亡章)에서 “하루아침에 시원하게 꿰뚫리면(豁然貫通), 모든 사물의 겉과 속이나 자세하고 거친 것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한 주자의 말과 같은 뜻이라고 보았다. 극기복례의 실천조목인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의 ‘사물(四勿)’은 일상의 행동지침으로 생활 속에서 실천되었다.

○ 곽종석의 리기심성론(理氣心性論)은 이진상의 심학(心學)을 계승해, 심즉리설(心卽理說)에 토대로 두고 전개되었다. 사단 십정(四端十情)이 모두 리가 기를 타고 발한 것이며 그것들이 종•횡에서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며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책으로 제기된 이론들이었다. 곽종석의 학문은 21세 때의 「회와삼도(晦窩三圖)」와 25세 때의 「사단십정경위도(四端十情經緯圖)」가 기초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마음이란 성(性)과 기(氣)를 합쳐서 말하는 것인데, 기라 함은 오행(五行)의 기이고 성은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이(理)로서, 이와 기가 발함에 있어서는 이는 근본이고 기는 수단으로서 이가 기를 타는[乘]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이가 기를 바르게 타면 날[經]이 되는 것이니 그것이 사단(四端)이고, 그것이 겉으로 나타난 것이 씨[緯]로서 십정(十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은 이(理)를 주로 하고 10정(十情)은 기(氣)를 주로 하는 것인데, 모두가 이가 기를 타는 것은 같은 것이라 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주리설(主理說)의 입장을 보여줬다. 특히 성(性) 가운데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 사단은 리(理)를 위주로 한 경(經)으로 직발하지만 희·노·애·구·애·오·욕(喜怒愛懼哀惡欲)의 7정(七情)에, 우(憂)•분(忿)•구(懼)를 더하여 10정(十情)은 기(氣)를 위주로 한 위(緯)로써 방생(傍生)하는 것이고, 사단 십정이 모두 기(氣)를 타고 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인 《면우집》에 나타난 사상은 ① 모든 심정(心情)이 발(發)함에 있어 <이(理)>는 주재(主宰)가 되고, <기(氣)>는 자용(資用)이 된다. ② 4단7정이 다 같이 정(情)이요, 이발(理發)의 결과이다. ③ <이(理)>는 선하기만 하지만, <기(氣)>는 혹은 악하기도 하니 <기>를 검치(檢治)해야 한다. ④ 심(心)의 본체는 이(理)에 있고, 심의 주재가 이(理)이니 심(心)과 성(性)이 다 같이 이(理)라 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등이다.

주희(朱熹)는 <중용장구(中庸章句)> 서문에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논하며 "마음의 허령지각(虛靈知覺, 마음이 잡념 없이 영묘함을 알아서 깨달음)함은 하나뿐이다. 인심과 도심이 서로 다른 까닭은 혹은 형기의 사(形氣之私, 형체와 기질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고(生), 혹은 성명의 정(性命之正, 본디 바르게 타고남)에 기초하여(原) 그 지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고 강설했다. 곽종석의 저서로는 〈면우집〉이 있으며, 죽은 뒤 단성 이동서당, 거창 다천서당, 곡성 산앙재`등이 그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2) 심학도(心學圖), 마음을 공부하는 그림

심학(心學)은 마음(心)의 문제를 사상의 핵심으로 삼는 유학의 학문이다. 심학은 학파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세 가지 경우를 들 수 있다. 심학이라는 용어를 공유하는 세 가지 유형의 개념내용에 따라 ‘수양론적 심학[程朱學]’·‘본체론적 심학[陸王學]’·‘불성적 심학[佛敎]’으로 구분할 수 있다.

면우(俛宇) 선생의 심학(心學)은 기본적으로 스승 이진상(李震相)에 의하여 심즉리설이 주장되고 있다. 이진상은 성리학의 심즉리설은 마음의 본체만을 이치(理)와 일치시키는데, 이는 퇴계 이황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황은 그의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통하여 성리학의 우주론적 근원으로부터 학문방법과 절차의 문제를 거쳐 마음의 개념과 수양방법을 묶어서 하나의 우주론과 수양론을 결합한 도학 곧 성학(聖學)의 체계를 세웠는데, 이 체계의 근원과 기초는 우주론과 학문론의 문제라 하겠지만, 핵심과 결론을 이루는 것은 수양론적 심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의 제8도 <심학도 心學圖>는 정복심이 그린 도상으로 마음의 다양성을 수양론적 구조로 체계화하고 경을 통한 수양방법의 양식을 구성하였다.

그 내용에 따르면, 심합리기(心合理氣)라는 것은 선사들의 정설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본심(本心)•진심(眞心)•주재지심(主宰之心)은 분명 리(理)이지만, 심(心)이 리(理)와 기(氣)의 합이라는 것은 심(心)의 본•말과 진•가, 주재•복역을 통합한 의미로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심은 태극이다”고 한 것이나, “심은 천리•재인의 전체다“고 규정한 것은 통합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리(理)만을 뽑아 간단히 말한데 불과하다 했다. 또한 심학(心學)의 요체를 정밀하게 살펴 공•사, 의•리를 분간해 공•의를 부각하고 사•리를 제거하는데 있다 하였다. 결국 그는 심학이 단순히 성리학적 관점에서 비롯된 사변성을 갖는 것이 아닌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면우 선생은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에서 모두 여섯 도를 그려 놓았는데 제1도는 인심과 도심이 드러나기 이전의 본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며, 제2도와 제3도를 통해 인심과 도심이 묘맥이 달라 서로 섞이거나 전환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제4도와 제5도에서 인심•도심의 수간에 따른 리발일도(理發一途)와 횡간에 따른 기발•리발의 차이가 있음을 밝혀 놓았다. 이전에 면우 선생의 스승인 이진상 선생께서 ‘심역도(心易圖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를 작성해 면우 선생께 보냈다고 <한주집>에서 전하는데, 아마 퇴계 이황 선생의 <제8심학도> 그림을 참고로 했을 것으로 추정되어, 이를 근거로 하여 심학도(心學圖)내용과 설명을 덧붙인다.

○ 참고로, 본래 심학도(心學圖)는 중국 원(元)나라의 학자인 정복심(程復心)이 심학(心學)을 그린 도표인데 심법(心法)에 대해 양심(良心)과 본심(本心)에서 출발하여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과 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까지의 공부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황(李滉)이 선조(宣祖)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중에서 여덟 번째 도표에 해당하는 제8심학도(第八心學圖)는 퇴계가 선조에게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군왕의 도(道)에 관한 학문의 요점을 10개의 도식으로 설명하였는데 그 8번째가 <심경>인 심학도설(心學圖說)이다. 성현들의 마음(心)에 관한 것과 마음을 주재하는 경(敬)에 관한 심학(心學)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을 간추려 체계적으로 도식화하고 설명한 것이다. 심학도(心學圖)란? ‘마음을 공부하는 그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마음에 관한 공부에 필요한 여러 개념들을 시경, 대학, 논어, 중용, 맹자 등에서 차용하여 정리한 그림이다. 퇴계 선생이 성학십도 여덟 번째 그림으로 삽입해 놓아,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조선후기 영남학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주리설의 ‘기초 도표’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였다.

● ‘심학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자. 요컨대 공부의 요점은 어느 경우나 하나의 경(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개 심(心)이라는 것은 일신(一身)의 주재이고, 경(敬)은 또한 일심(一心)의 주재이다. 배우는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하여 다른 데로 빠지지 않는다.[主一無適]’는 주장과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여 엄숙하게 한다.[整齊嚴肅]’는 주장 그리고 ‘마음을 거두어들인다.[其心收斂]’는 주장과 ‘언제나 정신을 깨어 있게 한다.[常惺惺]’는 주장을 익숙하게 연구하면 그 공부는 완전하게 될 것이며 성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도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본심(本心)은 본래 지니고 있는 마음이고, 양심(良心)은 타고난 선량한 마음이다. 적자심(赤子心)은 아직 인욕에 빠지지 않은 착한 마음이고, 인심(人心)은 곧 욕망에 눈을 뜬 것이다. 대인심(大人心)은 의리가 갖추어진 본래의 마음이고, 도심(道心)은 곧 의리에 눈을 뜬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실제로 형기(形氣, 겉으로 드러나는 사물의 모양이나 상태와 그 기운)에서 생겨난 까닭에 누구나 인심(人心)이 없을 수 없고, 성명(性命, 인성과 천명)에 근원하니 그런 까닭에 도심(道心)이 된다. 유정(惟精)․유일(遺逸)과 택선(擇善)․고집(固執)으로부터 그 이하는 인욕(人欲)을 억제하고 천리(天理)을 보존하는 공부가 아닌 것이 없다.

신독(愼獨) 이하는 인욕을 억제하는 바의 공부이니, 모름지기 부동심(不動心)에 이르게 되면, 부귀에 처해도 능히 음란하지 않고 빈천에 처해도 능히 변치 않으며 위무(威武)에 대해서도 능히 굴하지 않으니, 가히 그 사람의 도(道)가 밝고 덕(德)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독(愼獨)은 홀로 있음을 삼가라는 뜻이고, 극복(克復)은 자신의 욕심을 이겨내어 예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심재(心在)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구방심(求放心)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라는 것이다. 정심(正心)은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고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은 사십 세가 되어 마음이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계구(戒懼) 이하는 천리(天理)를 보존하는 바의 공부이니, 모름지기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마음은 체(體)가 되고 욕망은 용(用)이 되고 체(體)는 곧 도(道)이고 용(用)은 곧 의(義)이며 목소리는 규율이 되고 몸은 법도가 되어, 가히 생각하지 않아도 깨닫고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게 될 것이다. 계구(戒懼)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조존(操存)은 마음은 잡으면 보존되고 버리면 없어진다는 뜻이다. 심사(心思)는 마음은 생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양심(養心)은 타고난 본심을 길러라는 의미이다. 진심(盡心)은 마음을 극진하게 하라는 것이고 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는 칠십이 되어서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 조선조는 성리학(性理學)이 풍미한 시기였다. 이른바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율곡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나온 뒤는 말할 것도 없으며, 그 이전에도 정주학(程朱學)이 성행한 만큼 학자들의 심성이기(心性理氣)에 대한 연구가 대단하였다. 그러므로 유교의 심학(心學) 연원(淵源)과 심법(心法)을 정밀(精密)하게 담고 있는 ≪심경(心經)≫과 ≪심경부주(心經附註)≫에 대한 애착이 참으로 지극하였다.

≪심경(心經)≫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란 뜻으로 원래 남송시대(南宋時代) 주자학파(朱子學派)인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가 사서(四書)와 삼경(三經), 주염계(周濂溪), 정이천(程伊川), 범준(范浚), 주자(朱子)의 글을 간략히 뽑아 만든 책인데, 명나라 초기의 성리학자인 황돈(篁墩) 정민정(程敏政)이 이에 관계되는 해석과 송나라 유학자들의 학설을 발췌하고 보완하여 ≪심경부주(心經附註)≫라 이름 하였다. 우리는 이 ≪심경(心經)≫을 통해서 유가 심학의 근원이 바로 ‘상제’인 ‘천’(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그 천명(天命)을 잘 듣고 부합되게 행하는 것이야말로 유가 수행의 궁극 목표이자 유가가 꿈꾸는 참다운 성인(聖人)의 모습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심경(心經)≫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도 필수 수양(修養)서 이자, 입문서(入門書)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경(心經)≫에 유교에서 논하고자 하는 심학의 연원과 심법(心法)의 정미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마음에 교접하지 않아 지각이 싹트지 않았을 때에, 이 마음이 허명(虛明)하여 고요하게 아무것도 없다가 마음이 외물과 교접하여 지각이 절로 생긴다. 사람이 처음 태어나 마음이 안정하니, 안정하기 때문에 이 마음이 허명하여 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데에 이른다. 사람의 이치는 곧으니, 곧기 때문에 공정하여 커서 끝이 없는 데에 이른다. 그러므로 정(靜)할 때에 비어 있으면 밝고, 밝으면 통하고, 동(動)할 때에 곧으면 공정하고, 공정하면 넓어진다. 밝고, 통하고, 공정하고, 넓은 것이 심학의 대요(大要)이다. 이것은 단지 그 학술의 효과와 차례를 든 것이고, 그것을 간직하고 지키는 방법은 요(堯), 순(舜), 우(禹)가 전수(傳授)한 심법(心法) 16자(字)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 16자(字)란? 요가 순(舜)에게 천자의 자리를 선양(禪讓)하면서 “아, 너 순아, 하늘의 역수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그 중을 잡으라.(咨爾舜 天之曆數在爾躬 允執厥中)” 하였고, 순이 우(禹)에게 선양하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히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여 세 구를 더 붙였다. 이것을 16자 심법이라고 하여 송대(宋代)의 유학자들이 심학(心學)과 도통(道統)의 중요한 관념으로 삼았다. 《論語 堯曰》 《書經 大禹謨》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성인의 심법(心法)이니 이것을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선을 가려서 굳게 지킨다.(擇善固執)’에서 택선(擇善)은 ‘오직 정밀히 살피는 것(惟精)’이고, 고집(固執)은 ‘오직 한결같이 지키는 것(惟一)’이다.” 하였다. 또 “중용(中庸)의 도(道)를 가려서 한 가지 선한 것을 얻으면 단단히 잡아 가슴에 새겨서 잃지 않는다.”라는 것이 한결같이 지키는 것이다. 또 널리 배우고(博學), 살펴서 묻고(審問), 삼가 생각하고(愼思), 밝게 분변하는 것(明辨)이 모두 오직 정밀히 살피는 것이고, 독실히 행하는 것(篤行)이 오직 한결같이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선(善)에 밝은 것이 오직 정밀히 살피는 것이고, 몸을 성실히 하는 것이 오직 한결같이 지키는 것이다. 《대학(大學)》의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고 지식을 궁극에까지 도달하게 하는 것(格物致知)’이 오직 정밀히 살피는 것이고, ‘뜻을 성실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誠意正心)’이 오직 한결같이 지키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이것을 배우는 것이고, 맹자(孟子) 이후로 그 전수(傳授)를 잃었다는 것은 이것을 잃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그 욕망을 막을 수 있는가? 다만 생각할 따름이니, 배우는 사람에 있어서 생각하는 것보다 귀한 것이 없다. 오직 생각하는 것으로서 욕망을 막을 수 있다.”(何以窒其欲 曰思而已矣 學者莫貴於思 惟思而能窒慾 『심경부주』) 경(敬)은 ‘항상 깨어있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 성(性)을 밝히는 공부는 항상 정신이 깨어있는 ‘경’(敬)과 홀로 있을 때라도 방만히 굴지 않는 ‘신독’(愼獨)이 관건이 된다. 이에 대해 정자(程子)는 “언제나 경(敬)하면 상제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심경』은 바로 이 ‘경’(敬)이란 한 글자에서 시작하여 ‘경’(敬)이란 한 글자에서 끝나고 있다. 때문에 『심경』의 마지막 권은 이 경을 어떻게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가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경계의 글로 끝을 맺는다.

고영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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