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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 오지호 (1906~1982):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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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 오지호 (1906~1982)

정재훈 한수원 사장 | 기사입력 2021/07/19 [08:25]

한국적 인상주의의 완성, 오지호 (1906~1982)

정재훈 한수원 사장 | 입력 : 2021/07/19 [08:25]
오지호작품
오지호작품

우리나라에도 예술적 DNA가 3대에 걸쳐 내려오는 명가가 있습니다. 오지호 화백에서 시작하는 회화의 명맥은 아들, 손자로 이어지고 있고 작품성 또한 대단해서 이건희 컬렉션에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고향인 전남 도립미술관에 분산 기증되었습니다.

일본 유학파로 일찌기 보성군수를 지냈으나 삼일운동을 목도한 후 자결한 부친으로부터 강직한 기백을 물려받았고 본인도 회화공부를 위해 도일하여 동경 미술학교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유럽에서 수입한 날것의 인상주의가 아니라 한국적 인상주의로 발전시킨 투명하고 토속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그림을 정립하였습니다. 대표작인 남향집에 그의 이런 특성이 오롯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림과의 첫인연은 서울 휘문고보로 전학와서 였는데 한국의 1호 서양화가인 고희동 선생에게 사사하였고 좀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해보려고 일본까지 가서 평생 동지였던 김주경과 만나 함께 예술을 논했으며 귀국해서는 한국 화단을 이끌었습니다. 개성에서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잡았던 시절에는 일제치하였으나 방학을 이용해서 만주까지 두사람이 스케치여행을 다니기도 했답니다. 힘든 환경에도 호연지기를 품고 자신들의 그림을 그렸지요.

해방 이후에는 후학 양성에 힘써달라는 요청에 따라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창설해서 고향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산하와 계곡을 한차원 높게 단아하고 눈부시게 그려내곤 했습니다. 김주경과 공동화첩을 내기도 한 오화백은 다시 더 큰 세상을 보고자 1974년 어려운 시절임에도 유럽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합니다. 아름다운 북부 유럽의 미항을 자신의 시각으로 표현했는데 마치 세잔이 환생해서 훨씬 투박한 터치로 세례를 준 듯한 그림들이었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오지호화백의 기백과 한국적 인상주의의 투명한 감수성을 한번 만나보시지요! 마지막에 있는 그림 두점은 아내를 그린 그림과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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