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중선작가 『고요한 인생』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아이를 아이답지 못하게 만드는 부재의 시간들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신중선 소설『고요한 인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된 인권감수성을 일깨운다.
가전제품 광고 속에서는 세련된 장식의 깔끔한 집 안에서 따뜻한 햇살 속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이 최첨단 제품의 기능을 마음껏 즐기며 화목하게 웃는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일 것이라고 기대되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가족이 그만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부장제의 폐해가 이제야 조금씩 구체적인 언어로 발화(發話)되면서 세상에 겨우 얕은 금 한 줄 균열을 내고 있는 시절이다. 우리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 시공간은 위안, 편안한 휴식 등의 말과 얼마나,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 『고요한 인생』 속 아이들은 아이여도 아이 같지 않다. 「아들」의 여자아이 는 아이답지 않은 ‘짐짓 어른스런 말투’로 아들을 대하고, 「고요한 인생」의 수은은 노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은 아이에게 아이다움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시선이 머문 가난의 모습은 그렇다. 가난 탓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모에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고요한 인생』은 유독 특정 모티프 하나가 강렬하게 인상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언더독」은 제목 자체가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를 뜻하는 용어이다. 존중받지 못한 삶 탓에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인’ 갑석의 자격지심이 ‘언더독(under dog)’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고요한 인생』작품 속 인물들에겐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소거되어 있고, 절망에 기반한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현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죽음 혹은 사라짐은 먼지와도 같이 인물들의 삶을 감싼다. 평범한 일상인 듯 자연스러운 도입부를 지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성이 흡입력 있어 술술 읽히는 맛이 있고 ‘언더독 효과’처럼 가망 없어 보이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 가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는 『고요한 인생』 통해 최소한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아파하는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이라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차 례 고요한 인생 작품해설 신중선 소설가
책 속에서 너는 많은 욕심은 없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면서 책 읽으며 아주 고요한 삶을 영위하는 것, 엄마 돈을 몰래 훔쳐내는 아버지 없이,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 당하지 않고 교양 넘치는 식탁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것, 그 정도만 충족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중략) 그래서 너는 네 현재의 삶에 자신이 붙었고 이상적인 가정의 친자녀와 진배없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네가 락스를 먹인 적 있는 연년생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의 네 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고요했다. - 「고요한 인생」 얘야. 나는 겁이 났다. 겁이 난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얘기지. 잃을 것이 없는 사람한테 겁이란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내게 소중한 것은 바로 너였다. 내 육신이 네게 거추장스런 존재가 될까 봐 나는 그것이 정말 겁이 났다. 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떠났으며, 또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다 너를 위해 그랬다. - 「아들」 언젠가는 도와야 해, 때가 되면 말이야. 우리 형제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러다 포기할 거야,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헛된 소망을 단념하고 제 분수에 맞춰서 살 날이 올 거야, 제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저라고 못할 게 뭐람. 차마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훗날 우리는, 우리를 마음 쓰이게 했던 어떤 인물 하나가 스스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홀가분하게 여기지나 않을까요. 그 생각을 하노라니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언니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더 이상 죄 짓기 싫어서 이 세상을 하직했을 수도 있어요. - 「언니의 봄」 갑석은 송달수 씨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송달수 씨가 싫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가장 혐오스러웠던 건 모친을 대하는 송달수 씨의 태도였다. 경제적 자립만이 집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겨서 송달수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업계고교에 진학했다. - 「언더독」 “저는 크게 바라는 거 없어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술이 용기를 부여해준 덕도 있지만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다. 아파트 벨을 눌러대는 낯선 방문객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찬란한 햇살 아래 드러누워 있는 자신이 싫었다. 아니 부끄러움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중략) 사내놈이 그러고 살고 싶으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이렇게라도 아내 옆에서 아이들 옆에서 살고 싶다. 살아내고 싶다. 눈물이, 투둑 떨어진다. - 「낮술」 결혼이야말로 최대의 희망이자 도피처였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상상과 희망을 갖게 만들었던지. 살아오는 동안 분에 넘치게 뭔가를 바란 적 없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녀온 명희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그, 대단치도 않은 바람조차 환상이었고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잔인할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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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페이스북 주소: https://www.facebook.com/chuntesu/ 인스타그램주소: https://www.instagram.com/chuntesu201/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innogre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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