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중선작가 『고요한 인생』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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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중선작가 『고요한 인생』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 전태수 기자
  • 승인 2020.08.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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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아이를 아이답지 못하게 만드는 부재의 시간들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신중선 소설『고요한 인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된 인권감수성을 일깨운다. 
「고요한 인생」「아들」「언니의 봄」「언더독」「낮술」「아이 러브 유」「그 집 앞」까지 일곱 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모양새로 거리를 떠돌며 실패와 절망의 서사들이 가족의 이름 아래에서 먼지처럼 피어오른다. 바깥잠을 부러 자며 서울 거리를 배회하고(「그 집 앞」), 새벽마다 채팅창에서나 존재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영업을 하긴 하는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지 모호한 술집 앞을 서성인다(「아이 러브 유」). 주소도 없는, 재개발도 비켜간 그 집에 대한 기억도, 이십 년을 떠돌다 돌아온 아버지의 구두에도 뽀얀 먼지가 함께한다(「아들」). 먼지 속에 살아가던 인물들은 예식장에서 축의금 봉투를(「언더독」), 서점에서 책을(「그 집 앞」) 어설프게 훔쳐 내기도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하는 ‘2018년도 2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신중선 작가의 전작(前作)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에서도 ‘삶의 무게와 침묵’, ‘고요한 잔혹극’ 등의 열쇠 말로 해설된 바 있다. 신작『고요한 인생』에서도 그런 관점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소설가 신중선 작가 [고요한 인생]
소설가 신중선 작가 [고요한 인생]

 

가전제품 광고 속에서는 세련된 장식의 깔끔한 집 안에서 따뜻한 햇살 속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이 최첨단 제품의 기능을 마음껏 즐기며 화목하게 웃는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일 것이라고 기대되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가족이 그만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부장제의 폐해가 이제야 조금씩 구체적인 언어로 발화(發話)되면서 세상에 겨우 얕은 금 한 줄 균열을 내고 있는 시절이다. 우리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 시공간은 위안, 편안한 휴식 등의 말과 얼마나,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

『고요한 인생』 속 아이들은 아이여도 아이 같지 않다.  「아들」의 여자아이 는 아이답지 않은 ‘짐짓 어른스런 말투’로 아들을 대하고, 「고요한 인생」의 수은은 노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은 아이에게 아이다움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시선이 머문 가난의 모습은 그렇다. 가난 탓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모에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아들」의 아들은 한 번 실수로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고요한 인생」의 아이는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였다. 그리도 험한 날씨였던 날 태어났고, 그때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사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 무렵만 되면 몸이 붓고 아파온다. 원죄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의 존재가 희망이거나 축복이지만은 않은 암울한 현실이다. 「아들」의 ‘엄마를 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아버지의 육체까지 망가뜨’린 아들은 ‘단 한 차례도 행복하고자 희망한 적이 없다.’ 희망과 기대 속에서 맛본 좌절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예 희망 자체도 부재했다. 
「언니의 봄」의 난희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이사를 갔다. 난희언니에 대한 식구들의 부채의식은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게도 했는데, 화자인 셋째딸도 난희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사건당일로부터 반년 정도 전쯤’이었으니 이들 가족에게도 ‘함께함’의 시공간은 거의 부재했다. 난희언니가 재력 있는 형부를 만나 결혼하는 동안 가족은 그들의 가난을 난희의 결혼으로 극복해 보려 했을 뿐이었고, 난희언니의 집안이 점차 어려워졌을 때에는 그들 각자 아파트를 사고 팔면서 재력을 키워갔고, 피부 관리에 공을 들이면서도 정작 난희언니의 상태에는 무관심하였다. 
『고요한 인생』에서 시간과 공간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함께함’이 소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뽀얀 먼지 속에서 독립적인 개체들이 각자자신의 고뇌의 시공간을 채울 뿐이었고, 그 속에서 관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남겨진 아이들은 아이다운 시간을 얻지 못한 채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다.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고요한 인생』은 유독 특정 모티프 하나가 강렬하게 인상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언더독」은 제목 자체가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를 뜻하는 용어이다. 존중받지 못한 삶 탓에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인’ 갑석의 자격지심이 ‘언더독(under dog)’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낮술」의 오징어 다리나 「그 집 앞」의 전화기는 타인의 신호를 잡기 위해 뻗어내는 더듬이와도 같다. 전직 피디, 상무, 부장들이 여전히 그 직책으로 서로를 부르며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 낮술을 하면서 오징어 다리가 여덟 개인지 열 개인지 하는 질문이 제시되었다. ‘볼품없이 얄따란 두 다리와 듬성듬성 나 있는 털들’ 따위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권부장은 유독 길게 뻗은 두 개의 오징어 다리가 더듬이 팔이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먹이를 잡을 때나 사랑을 나눌 때 사용한다는 그 길다란 오징어 팔을 흔들며 암컷 오징어나 껴안는 환상에 빠진다. 
「그 집 앞」의 전화기와 벨소리는 타인을 향한 남자의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나, 결정적으로 홍은동 이층집 여자가 전화를 해왔을 때 남자는 늘 그랬듯 환청이라 생각하고 무시하였다. 「아이 러브 유」에서 인형 배를 누르면 튀어나오는 ‘아이 러브 유’ 하는 청명한 목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는 마음이다.

『고요한 인생』작품 속 인물들에겐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소거되어 있고, 절망에 기반한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현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죽음 혹은 사라짐은 먼지와도 같이 인물들의 삶을 감싼다. 평범한 일상인 듯 자연스러운 도입부를 지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성이 흡입력 있어 술술 읽히는 맛이 있고 ‘언더독 효과’처럼 가망 없어 보이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 가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는 『고요한 인생』 통해 최소한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아파하는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이라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차 례

고요한 인생
아들
언니의 봄
언더독
낮술
아이 러브 유
그 집 앞

작품해설
작가의 말

신중선 소설가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출판잡지를 전공했다.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문학〉추천을 받고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특별한 하루」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우수문학으로 소설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선정되었다
장편소설 『하드록 카페』『비밀의 화원』『돈워리 마미』『네가 누구인지 말해』가 있고,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누나는 봄이면 이사를 간다』『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과 『고요한 인생』이 있다. 


작품해설 – 권도영(문학박사)
건국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건국대학교 강의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사의 구성원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여 서사의 치유적 효과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박사학위논문 주제는 「복합서사 형성원리에 기반한 자기서사 변화에 대한 연구」이다.  
지은 책으로는 『배또롱 아래 선그믓-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에서 페미니즘을 읽다』 『옛이야기로 전하는 마음 치유-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 『인문 콘텐츠와 인문 스토리텔링』(공저) 『행복한 삶과 문학치료』(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책 속에서

너는 많은 욕심은 없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면서 책 읽으며 아주 고요한 삶을 영위하는 것, 엄마 돈을 몰래 훔쳐내는 아버지 없이,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 당하지 않고 교양 넘치는 식탁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것, 그 정도만 충족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중략) 그래서 너는 네 현재의 삶에 자신이 붙었고 이상적인 가정의 친자녀와 진배없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네가 락스를 먹인 적 있는 연년생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의 네 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고요했다. - 「고요한 인생」

얘야. 나는 겁이 났다. 겁이 난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얘기지. 잃을 것이 없는 사람한테 겁이란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내게 소중한 것은 바로 너였다. 내 육신이 네게 거추장스런 존재가 될까 봐 나는 그것이 정말 겁이 났다. 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떠났으며, 또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다 너를 위해 그랬다. - 「아들」

언젠가는 도와야 해, 때가 되면 말이야. 우리 형제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러다 포기할 거야,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헛된 소망을 단념하고 제 분수에 맞춰서 살 날이 올 거야, 제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저라고 못할 게 뭐람. 차마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훗날 우리는, 우리를 마음 쓰이게 했던 어떤 인물 하나가 스스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홀가분하게 여기지나 않을까요. 그 생각을 하노라니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언니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더 이상 죄 짓기 싫어서 이 세상을 하직했을 수도 있어요. - 「언니의 봄」

갑석은 송달수 씨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송달수 씨가 싫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가장 혐오스러웠던 건 모친을 대하는 송달수 씨의 태도였다. 경제적 자립만이 집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겨서 송달수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업계고교에 진학했다. - 「언더독」

“저는 크게 바라는 거 없어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 술이 용기를 부여해준 덕도 있지만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다. 아파트 벨을 눌러대는 낯선 방문객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찬란한 햇살 아래 드러누워 있는 자신이 싫었다. 아니 부끄러움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중략) 사내놈이 그러고 살고 싶으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이렇게라도 아내 옆에서 아이들 옆에서 살고 싶다. 살아내고 싶다. 눈물이, 투둑 떨어진다. - 「낮술」

결혼이야말로 최대의 희망이자 도피처였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기대와 상상과 희망을 갖게 만들었던지. 살아오는 동안 분에 넘치게 뭔가를 바란 적 없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녀온 명희의 소망이었다. 하지만 그, 대단치도 않은 바람조차 환상이었고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잔인할 만큼이나.  
- 「아이 러브 유」
어쩌다 보니 아내도 얻지 못했고 따라서 귀여운 아이도 없다. 가족조차 만들지 못했는데 이제는 안부를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마저 없다! 이대로 변고가 생겨 죽는다 해도 쉬이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남자도 한때는 친구가 있었으며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업무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남자는 베란다에서도 자꾸만 전화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자신을 느껴야 했다. 벨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보면 전화기는 조용히 초기화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땀이 났다. - 「그 집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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