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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적명 스님 입적, 실족사로 추정 中: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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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적명 스님 입적, 실족사로 추정 中

한국 불교계의 대표 선승으로 평가받는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적명 스님이 입적했다. 법납 59세, 세납 81세의 나이였다.

서동우 기자 | 기사입력 2019/12/25 [21:28]

봉암사 적명 스님 입적, 실족사로 추정 中

한국 불교계의 대표 선승으로 평가받는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적명 스님이 입적했다. 법납 59세, 세납 81세의 나이였다.

서동우 기자 | 입력 : 2019/12/25 [21:28]
한국 불교계의 대표 선승으로 평가받는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적명 스님이 입적했다. 법납 59세, 세납 81세의 나이였다.
사진=조계종 홈피

경북 문경 봉암사의 수좌 적명 스님이 24일 오후 436분쯤 봉암사 근처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다. 이날 오전 사찰 뒤 희양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른 승려들과 떨어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계곡에서 발견 당시 적명 스님은 심정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39년 제주도에서 출생한 적명 스님은 21살에 출가했다.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통도사 선원장, 백양사 선원장을 지냈으며 2007년부터 조계종 종립선원인 봉암사 수좌로 지냈다.

불교계 관계자는 “24일이 동안거(겨울 석 달 선방에서 하는 참선 수행) 결제의 반결제날(결제의 반이 지난 날)이라 동료 스님들과 사찰 뒤 희양산에 산행을 갔는데, 용추쪽 바위에 가보고 싶어 혼자서 가신 듯하다. 점심 공양 때까지도 오시지 않아 찾아나섰고 119신고를 했다발견 당시 나무에 걸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족하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적명 스님은 봉암사에서 후학들과 함께 정진해 온 조계종단의 존경 받는 스님이다. 적명스님은 평생 선원과 토굴에서 참선 수행에 집중한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봉암사의 수장인 조실 자리에 추대를 받았지만 이를 마다하고 조실 다음 소임인 수좌를 맡아왔다.

2009년 봉암사 대중들의 간곡한 청에 따라 은해사 기기암을 나와 봉암사에 주석했다. 그러나 적명 스님은 스스로 봉암사 조실에 오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며 끝내 봉암사 수좌로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20185월 대구 동화사에서 종단 최고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됐다.

스무살 약관의 나이에 출가한 이후 평생 토굴과 암자에서 수행정진해 온 적명스님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봉암사 대중들을 이끌며 간화선 중심의 조계종 수행 전통 계승과 수행 가풍 진작에 앞장섰다.

봉암사는 1년에 딱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산문을 열고 1년 내내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참선 수행도량이다.

적명 스님은 일상의 깨달음을 중시했다. 스님은 지견이나 지혜는 행동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인품도 밖으로 드러난다금광에서 캐낸 금도 금인 것은 맞지만, 이를 단련하고 단련해서 순금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불교적 사상 중에서도 중도(中道)’를 중요하게 생각한 적명 스님은 우리는 완전한 나 혼자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아니다. 주위에 내 아닌 것들이 도와줘서 내 존재가 빛나는 것이다. 이게 불교의 중도이고, 연기법이다그렇게 말하면 차별성이 없어진다. 그래서 중도다고 말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적명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에 불교 신자들이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다""승가에서도 존경 받는 선승을 상실한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불교계 한 관계자는 "조계종 선원의 대표 선승이셨다""수행 정신과 개혁의 상징이었다"고 적명스님의 입적을 가슴아파했다.

경찰에서는 적명 스님이 입적한 것에 대해 발을 헛디뎌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봉암사측은 장례위원회가 구성되는 대로 장례 일정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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