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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왜곡 미화 김성수 생가 안내판 왜 안바꾸나?: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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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왜곡 미화 김성수 생가 안내판 왜 안바꾸나?

고창 위치한 김성수 생가일본 제국주의 편에 섰던 김성수안내판 후손들 세운 것으로 짐작

편집부 | 기사입력 2019/12/16 [16:13]

친일파 왜곡 미화 김성수 생가 안내판 왜 안바꾸나?

고창 위치한 김성수 생가일본 제국주의 편에 섰던 김성수안내판 후손들 세운 것으로 짐작

편집부 | 입력 : 2019/12/16 [16:13]
전북 고창에는 인촌 김성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김성수는 미당 서정주와 함께 고창을 자랑하는 인물로 꼽힌다.
전북 고창에는 인촌 김성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김성수는 미당 서정주와 함께 고창을 자랑하는 인물로 꼽힌다.

 

고창 위치한 김성수 생가

인촌 김성수 생가와 서정주의 생가 옆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미당 시문학관은 고창의 내로라하는 관광지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주목받는 곳으로 김성수와 서정주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그들의 비루한 삶을 더듬어보며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곳으로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답사 장소다.

김성수를 수식하는 직함은 다양하다. 2대 부통령을 지낸 정치인이자, 동아일보를 설립한 언론인으로 중앙학원을 세우고 현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운영한 교육자이며, 굴지의 경성방직 회사를 꾸린 기업인이다.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김성수는 중일전쟁이 발발하던 1937년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일본 제국주의 편에 섰다. 막대한 국방헌금을 납부한 것은 물론 전쟁을 미화하는 시국강연회를 열었고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는가 하며 조선 청년들의 징병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언론에 실었다.

일본 제국주의 편에 섰던 김성수

일본 제국주의 편에 섰던 그는 해방 이후에 미군정의 한국인고문단 의장으로 선임되는가 하면, 한국민주당 수석총무가 되어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우익의 거물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좌익 세력은 물론 중도파가 대부분 거세된 뒤 6.25 전쟁의 혼란 속에서 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김성수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친일 혐의를 세탁한 뒤 독재정권에 결탁해 승승장구를 이어온 우리나라 기득권 세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보수 언론인 동아일보는 김성수의 직계 후손이 세습 운영하고 있다. 김재호 사장은 김성수의 증손으로 고려대학교의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성수의 생가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생가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면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가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일제에 부역한 사실을 '공사(公事)에 헌신했다'고 왜곡했고 민족을 배반한 대가로 축적한 부를 '민족자본 육성의 수범'이라고 표현했다.

안내판 후손들 세운 것으로 짐작

안내판의 제작자, 관리기관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실과 다른 안내판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데도 문화재청이나 지방자치단체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정부가 제작한 안내판이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가 앞에 자리한 안내판과는 크기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내용 역시 네 줄로 축소되어 있어 눈길을 끌기 어렵다. 또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에 대한 내용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형 김성수와 5년 터울인 동생 김연수는 일본 최고의 명문인 교토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해서 형의 사업을 이어받아 방직과 고무 산업, 농장 운영을 했으며 일제강점기 내내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나갔다.

전북 고창과 전남 영광, 장성, 함평 등지에서 광대한 농장을 운영했고, 서해안 곳곳의 갯벌을 매립한 간척지를 사유화했다. '김연수의 땅을 밟지 않고선 호남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동생 김연수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총독부가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추원과 관선 도평의회, 국민정신총동원연맹 등 수많은 총독부 관변 단체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도, 천문학적인 국방헌금과 위문금을 자발적으로 낸 이유도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안내판을 문제 삼은 뉴스가 여러 차례 나왔다. 문화재청에 대한 건의와 민원 게시판에 항의글이 올라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안내판의 내용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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