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국가정원 유치전 과열…‘생태 명소’인가 ‘적자정원’인가도내 9개 지자체 경쟁 가세…대선 공약 이후 국가정원 기대감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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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정원의 상징적 그림 |
9곳이 뛰어든 국가정원 경쟁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경기도 국가정원 추진방안 기초연구’에 따르면 국가정원은 국가가 직접 지정해 조성하는 방식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정원을 국가정원으로 승격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지방정원으로 등록하려면 부지 면적이 10만㎡ 이상이어야 하고 전체 면적 가운데 녹지공간이 4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주제정원을 갖추고 전담 조직과 전문관리인을 배치하는 등 자체적인 품질·운영관리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이후 국가정원으로 승격하려면 정원 부지가 30만㎡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국내 국가정원은 2015년 지정된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과 2019년 지정된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등 두 곳뿐이다. 경남 거제시 동부면 간척지에는 국가가 직접 조성하는 한-아세안 국가정원이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안산 새로숲 지방정원, 양평 세미원 지방정원, 가평 자라섬 지방정원, 광명·안양·군포·의왕을 연결하는 안양천 지방정원, 연천 세계평화 지방정원, 포천 한탄강 지방정원, 남양주 다산생태 지방정원 등이 국가정원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남시는 당정섬 일원에 가칭 ‘K-국가정원’을 국가가 직접 지정·조성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양시도 북한산에서 창릉천과 행주산성을 거쳐 한강까지 연결하는 ‘고양 블루웨이’ 사업을 기반으로 창릉천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경쟁에 합류했다.
각 지역은 저마다 생태적·역사적 자산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안산은 수도권 최대 규모의 산림·수변 생태축을, 양평은 세미원의 수생식물과 두물머리 관광자원을 강조한다. 가평은 자라섬의 축제 기반과 북한강 수변 경관을, 연천과 포천은 각각 접경지역의 평화 상징성과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가치를 앞세운다.
승격 실패하면 지방재정의 장기 부담
문제는 하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지방정원을 먼저 조성한 뒤 국가정원 승격에 도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정원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토지 확보와 기반시설 조성, 정원 관리, 전문 인력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자체가 감당해야 한다.
국가정원 유치가 지역 정치권의 대표 공약으로 부상하면 사업 타당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경쟁적으로 예산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국내에서는 공항과 철도, 공공기관 이전, 산업단지 등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자체 간 경쟁이 지역 갈등과 행정력 소모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정원은 조성보다 관리가 중요한 시설이다. 수목과 습지, 수변공간, 편의시설을 지속해서 관리해야 하며 계절별 콘텐츠와 전시·축제 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 초기 시설비뿐 아니라 매년 투입되는 유지관리비가 지자체 재정에 구조적인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순천만과 태화강의 성공 사례를 외형적으로 모방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정원박람회와 순천만 습지를 결합해 생태관광 체계를 구축했고, 태화강 국가정원은 오염된 도심 하천을 생태공간으로 복원한 상징성을 확보했다. 정원의 규모보다 해당 지역만이 제시할 수 있는 생태적 서사와 국가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방문객 수와 관광 수입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산정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수도권은 배후 인구와 교통 접근성에서는 유리하지만 비슷한 관광·휴식 시설이 많아 방문객을 장기간 붙잡아 둘 차별화된 콘텐츠가 부족하면 일회성 방문지에 머물 수 있다. 입장료와 임대료, 축제 수입만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국가정원이 아니라 ‘적자정원’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도 단일 전략과 객관적 평가 필요
경기도 내 경쟁이 소모전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면 개별 지자체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유치 선언보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생태적 보전 가치, 국가적 상징성, 부지 확보 가능성, 교통 접근성, 지역경제 파급효과, 운영 재원, 주민 참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경기도가 후보지별 장단점을 분석하고 국가정원과 광역정원, 지방정원, 생태공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모든 지역이 국가정원이라는 동일한 목표만 좇기보다 각 지역의 환경과 재정 여건에 맞는 정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을 하나의 광역 생태관광망으로 연결하는 전략도 검토할 만하다. 안산의 산림과 습지, 양평·가평의 수변 관광, 연천·포천의 접경지역 생태자원, 고양·하남의 한강 생태축을 연계하면 국가정원 유치 여부와 관계없이 경기도 전체의 정원·생태관광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국가정원은 지역 이름을 알리는 대형 간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생태를 복원하고 시민이 참여하며 지역경제와 공존해야 하는 공공자산이다. 유치 경쟁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지속해서 운영할 수 있는 재정과 콘텐츠를 갖추는 일이다.
경기연구원이 국가정원을 생태·문화·경제를 통합하는 국가적 상징 사업으로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도와 각 지자체는 국가정원이라는 명칭을 얻는 데 집중하기보다 어떤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고 시민에게 어떤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부터 제시해야 한다. 철저한 타당성 검증과 후보지 간 조정 없이 경쟁만 확대된다면 기대했던 국가정원이 지역 재정에 부담을 주는 ‘적자정원’으로 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