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민주주의의 파이를 키우는 영리한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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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수 기자 |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쉽게 “존경한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이재명 대통령을 보게 됐다. 성남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보여준 치열한 열정, 그리고 정치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현직 대통령이지만, 그 성장의 궤적을 보며 존경이라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지금 전당대회를 둘러싼 논쟁도 결국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정청래 후보가 말하는 가치와 정체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정치의 문제다.
한쪽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정치가 국민의 삶을 바꾸는 현실적인 정치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당이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와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그 우려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민주당은 단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존재해 온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거리로 나섰고, 약자의 목소리가 외면받을 때 그 곁에 섰으며, 공정과 정의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원칙을 이야기했던 정당이다.
수많은 당원이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고, 때로는 가족과 주변의 비난까지 견디며 민주당을 지켜온 이유도 권력 그 자체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도 민주당은 달라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가 가치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가난해지고, 청년이 일자리를 잃고, 소상공인이 문을 닫고, 지방이 소멸하는데도 원칙만 외친다면 그 정치는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다.
가치는 국민을 살릴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도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용은 가치를 포기하는 기술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가치를 현실로 만드는 방법이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지만 외환위기 앞에서 시장과 기업, 외국 자본을 외면하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감수하면서도 정보통신과 벤처산업을 키웠다. 그 선택은 진보와 보수의 낡은 경계를 넘어 대한민국을 정보기술 강국으로 이끄는 토대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도 원칙의 정치인이었지만 국가의 장기 경쟁력을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다. 지지층 내부의 거센 반발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하려 했다.
민주당 정부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치는 늘 실용을 통해 국민의 삶으로 들어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
기업을 살리고 산업을 키우는 이유는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여야 한다. 인공지능과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이유도 일부 기업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년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서여야 한다.
규제를 풀더라도 특권을 위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막고 있는 낡은 벽을 허무는 개혁이어야 한다.
성장을 말하더라도 성장의 열매가 대기업과 자산가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청년, 소상공인과 지역 주민에게도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민주당식 실용이다.
하지만 실용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면허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가치와 충돌하는 인물을 무리하게 받아들이고, 결과가 좋다는 이유로 절차와 과정을 가볍게 여긴다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 편의주의다.
반대로 원칙을 지킨다는 이유로 당의 문을 닫고, 자신과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도 현명한 정치가 아니다.
민주당의 문은 넓어야 한다. 그러나 문턱에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람, 약자를 조롱한 사람, 공정의 가치를 무너뜨린 사람까지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해 끌어안는다면 국민은 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보수정당과 무엇이 다른가.”
반대로 민주당의 가치에 동의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소속이나 작은 차이만으로 배척해서도 안 된다.
정치는 사람을 잘라내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민주주의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어야 한다.
내가 정청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정청래 개인을 부정하거나 그의 정치적 열정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민주당을 위해 싸워온 시간과 지지층의 신뢰 역시 존중한다.
다만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지도력은 지지층을 더 단단히 묶는 정치만이 아니라, 민주당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 안으로 끌어오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강한 말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 밖의 국민이 등을 돌리면 민주당의 외연은 넓어지지 않는다.
정치는 이미 내 편인 사람을 더 흥분시키는 일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망설이는 사람을 설득하고, 실망한 사람을 돌아오게 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던 청년이 자신의 미래를 민주당에서 발견하게 만드는 일까지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파이를 키우는 정치다.
민주당 안에서 누가 더 진짜 민주당원인지 따지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믿는 국민을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더 강한 말을 하는지를 경쟁하기보다 누가 더 많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지를 경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기업을 적으로 규정하는 방식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다. 기업이 성장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돕되 그 성장의 이익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가도록 만드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환경의 가치만 강조해서는 부족하다.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수익이 돌아가고, 농어촌 경제가 살아나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청년 주거정책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집값을 비판하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공공주택, 장기저리 대출, 지역 일자리, 자산 형성 지원을 하나로 묶어 실제로 독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영리한 실용주의다.
영리한 실용주의는 원칙을 버리고 그때그때 유리한 편에 서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실적인 언어와 정책으로 바꾸는 일이다.
상대를 모욕해서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드는 정치다.
한정된 지지층 안에서 자리를 나누는 정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정치다.
민주당이 지금 가장 절실하게 바라봐야 할 곳은 청년 세대다.
오늘의 20대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기억만으로 정당을 선택하지 않는다. 취업할 수 있는지, 집을 구할 수 있는지,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미래 산업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를 묻는다.
청년에게 민주당의 가치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긴 연설이 아니다.
청년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부모의 재산이 인생의 출발선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 지역에 살아도 수도권 청년과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년의 삶을 바꾸는 정책이야말로 민주당의 가치가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청년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당은 결국 미래를 잃는다.
개혁의 언어가 청년의 취업과 주거, 교육과 자산 문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청년에게 그 정치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당이 청년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젊은 후보 몇 명을 공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청년을 정치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그동안 모든 것을 잘한 것은 아니다.
도덕성을 말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일도 있었고, 공정을 외치면서 내부의 특권에 침묵한 적도 있었다. 청년의 고통을 말하면서 정작 청년을 결정의 자리에서 배제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잘못은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가치는 민주당이 항상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잘못했을 때 반성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따라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이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가치다.
그리고 우리는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정권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와 노동, 언론과 사법개혁의 성과가 얼마나 빠르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았다.
가치를 아무리 소중히 간직해도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국정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정책이 될 수 없다.
정권을 빼앗기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절박함을 민주당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 민주당다움을 버리는 순간, 승리의 이유 또한 사라진다.
반대로 민주당다움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국민과 멀어지고, 지지층 안에서만 옳음을 확인한다면 그 가치 역시 현실에서 힘을 잃는다.
승리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치 없는 실용은 방향을 잃고, 실용 없는 가치는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정치는 민주당의 가치를 지우는 정치가 아니라 민주당의 가치를 국민의 밥상과 일자리, 주거와 미래 속에서 증명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은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며, 기업이 성장하되 노동자가 함께 웃고, 수도권이 발전하되 지역이 소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실용이고, 그것이 가치이며, 민주당이 다시 국민 앞에 서야 할 이유다.
이번 전당대회는 단순히 한 사람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민주당이 기존 지지층 안에서 더 강한 목소리만 경쟁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의 파이를 키우고 더 많은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내가 정청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에는 분노를 더 크게 외치는 정치보다, 국민의 마음을 더 넓게 얻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한 민주당은 목소리가 큰 정당이 아니다.
더 많은 국민이 함께할 수 있는 정당이다.
민주당의 경쟁력은 실용과 가치 중 하나를 버리는 데 있지 않다.
가치를 품은 실용, 국민을 향한 실용, 청년의 내일을 만드는 실용, 그리고 민주주의의 파이를 키우는 영리한 실용주의에 있다.
그 길을 지켜온 사람들은 언제나 당원들이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민주당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 이름도 없이 거리와 골목에서 민주주의를 지켰던 사람들, 패배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이야기했던 당원들이었다.
이제 다시 당원들의 선택 앞에 민주당의 미래가 놓여 있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의 가치를 내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의 가치를 더 많은 국민의 삶 속으로 가져갈 것인가.
민주당은 다시 민주당다워야 한다.
그리고 그 민주당다움은 더 많은 사람을 품고, 더 넓은 민주주의를 만들며, 국민의 삶을 바꾸는 정치로 증명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