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뿔난 유시민?‘뉴이재명’은 정치공작인가, 시대 변화의 새로운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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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민 작가 (사진/위키백과) |
유시민 작가가 다시 여권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유 작가는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뉴이재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벌이는 행동이 단순히 자칭 친명 인사들의 난동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과 알려지지 않은 참모들이 기획해 시작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어떤 비판도 하지 않고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내버려 두면 모든 어물전은 다 썩는다”며 “썩은 내가 나기 전에 빨리 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썩은 냄새를 먼저 맡고 경고하는 ‘후각이 예민한 사람’에 빗댄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인 김민석 전 국무총리는 강하게 반발했다.
김 전 총리는 “동지의 언어에 ‘필패’와 ‘썩은 내’라는 단어는 없다”며 유 작가의 발언을 비판했다.
대통령의 육성과 진심을 왜곡하고 평론의 선을 넘어섰으며, 절제와 품격마저 놓았다고 지적했다. 유시민 작가의 발언이 정치 평론의 영역을 넘어 사실상 이재명 정부를 향한 정치적 공격이 됐다는 의미다.
김 전 총리의 지적처럼 유 작가의 발언은 단순한 내부 비판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 지도자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뉴이재명’이라는 언어를 대통령과 참모들이 기획한 정치공작처럼 규정하고, 이를 어물전의 썩은 냄새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비판을 넘어 새로운 정치 흐름 전체를 부패의 징후로 규정한 셈이다.
그러나 유시민 작가에게 묻고 싶다.
그가 맡았다는 냄새는 정말 부패한 어물전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익숙했던 정치와 평론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나타나는 시대 변화의 낯선 향기인가.
‘뉴이재명’은 단순한 홍보 구호가 아니다.
야당의 투사였던 이재명과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 이재명 사이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정치적 언어다. 대결과 저항의 정치인에서 통합과 실용의 국정 책임자로, 강한 지지층의 언어에서 국민 전체를 향한 언어로 이동하는 변화를 포착하려는 개념이다.
이런 언어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평론가들만이 아니다.
AI와 검색, 영상자료와 데이터를 활용하는 새로운 시민 논객과 평론가들이 정치인의 과거 발언과 현재 행보를 비교하고, 기존 언론과 유명 지식인이 놓친 변화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아마 유시민 작가는 이들을 AI를 활용해 여론과 담론을 만들어내는 신종 평론가들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AI에 기대 그럴듯한 문장을 생산하고, ‘뉴이재명’이라는 정치 이미지를 포장해 유통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구가 달라졌다고 생각의 가치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평론가는 책과 신문, 방송자료와 보좌진의 도움을 활용했다. 오늘의 시민과 논객은 검색과 데이터, AI를 활용한다. 만년필로 썼다고 모두 명문이 되는 것이 아니듯, AI로 다듬었다고 모든 글이 거짓이나 선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다. 어떤 사실을 근거로 삼았고, 어떤 질문을 던졌으며, 어떤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냈느냐가 중요하다.
오히려 AI는 일부 작가와 교수, 방송인에게 집중돼 있던 정치 해석의 권한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있다.
과거에는 방송에 출연하거나 신문에 칼럼을 써야만 정치적 담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제는 평범한 시민도 AI를 활용해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정치인의 발언을 검증하며, 자신의 문제의식을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어물전이 썩어가는 현상이 아니다.
소수 지식인이 독점했던 정치 해석의 시장에 새로운 시민과 새로운 도구가 들어오는 변화다. 오래된 평론 권력의 벽이 허물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정치적 언어의 생산자가 되는 과정이다.
물론 AI는 완전하지 않다. 허위정보와 사실 왜곡, 저작권 침해, 데이터 독점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AI가 정치적 선전과 여론조작에 이용될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AI의 위험을 비판하는 것과 AI를 활용하는 새로운 평론가 전체를 의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유시민 작가의 시선에서는 기술의 오류보다 자신의 익숙한 세계가 무너지는 데 대한 불편함이 먼저 읽힌다. 글을 쓰고 지식을 정리하며 정치와 사회를 해석하는 일은 오랫동안 유명 작가와 지식인의 권위가 작동하던 영역이었다.
이제 AI는 몇 초 만에 자료를 분석하고 복잡한 정보를 시민의 언어로 바꾼다. 정치 해석과 담론 생산의 높은 담장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시민 작가가 진짜 뿔난 이유는 AI가 자주 틀리기 때문인가. 아니면 AI를 활용하는 새로운 시민 평론가들이 자신의 영역까지 들어왔기 때문인가.
시대가 변할 때마다 기존 권위는 새로운 매체를 불온하고 위험한 것으로 규정했다. 인쇄술은 지식의 독점을 무너뜨렸고, 인터넷은 신문과 방송의 영향력을 분산시켰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는 시민을 정보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바꾸었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변화를 막으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낸 사람이었다.
AI 시대에도 유시민 작가와 같은 지식인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경험과 고통, 책임과 윤리, 공감과 성찰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역할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다만 유명 지식인이 사회의 정답을 독점하고, 시민에게 일방적으로 해석을 내려주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지식인은 시민 위에서 훈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김민석 전 총리가 지적했듯 동지를 향한 언어에는 최소한의 절제와 품격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에 잘못이 있다면 구체적인 사실과 근거로 비판하면 된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기획설을 제기하고 새로운 정치적 흐름 전체를 ‘썩은 내’로 규정하는 것은 평론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언어의 과잉에 가깝다.
유시민 작가에게 충고하고 싶다.
‘뉴이재명’이라는 언어와 AI를 활용해 등장한 새로운 평론가들은 썩어가는 어물전의 풍경이 아니다. 시민들이 정치 해석과 담론 생산의 주체로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의 풍경이다.
자신에게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부패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불편함을 시대 전체의 타락으로 오인해서도 안 된다.
유시민 작가가 맡았다는 것은 어물전의 썩은 냄새가 아닐 수 있다.
오래된 권위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정치 언어가 등장하면서 퍼지는 시대 변화의 향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