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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켜면 극우, 부채질하면 진보?…폭염에 흔들리는 유럽의 ‘기후 이념전쟁’

기록적 폭염 속 냉방시설 부족이 생존 문제로 떠오르며 유럽 정치권 정면충돌

보수 진영은 에어컨 규제 완화, 진보 진영은 녹지·단열·친환경 냉방 확대 주장

기후정책도 생명 보호가 우선…‘에어컨 금기’ 넘어 지속 가능한 냉방 전략 필요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6/07/15 [08:35]

에어컨 켜면 극우, 부채질하면 진보?…폭염에 흔들리는 유럽의 ‘기후 이념전쟁’

기록적 폭염 속 냉방시설 부족이 생존 문제로 떠오르며 유럽 정치권 정면충돌

보수 진영은 에어컨 규제 완화, 진보 진영은 녹지·단열·친환경 냉방 확대 주장

기후정책도 생명 보호가 우선…‘에어컨 금기’ 넘어 지속 가능한 냉방 전략 필요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6/07/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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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열돔은 장기간 맑고 건조한 날씨를 만들며 가뭄과 산불을 키우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한국은 뜨거워진 바다에서 공급되는 수증기가 대기 불안정과 만나면 짧은 시간에 강한 비로 쏟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사진=ai합성)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에서 에어컨이 단순한 가전제품을 넘어 정치적 이념을 가르는 상징으로 변하고 있다. 에어컨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보수 진영과, 냉방기기 보급이 기후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진보 진영의 주장이 충돌하면서 폭염 대응 정책이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유럽 소셜미디어에서는 “여름에 부채를 사용하면 녹색당이고, 에어컨을 켜면 극우냐”는 조롱 섞인 표현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게시물에는 에어컨과 극우 이미지를 연결하는 합성물까지 등장했다. 냉방기기 사용 여부가 개인의 정치 성향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소비되는 기묘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폭염 피해가 현실화하면서 에어컨 논쟁은 단순한 문화 갈등을 넘어 생명과 안전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남부지역에서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크게 상승했고,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등 취약계층의 피해가 집중됐다. 병원과 요양시설에도 냉방시설이 부족해 정부의 대응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 앞에서 무너진 ‘에어컨 없는 유럽’의 자부심

 

유럽은 오랫동안 에어컨 사용을 환경 파괴적인 생활방식으로 인식해 왔다.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문화적 배경과 강력한 탄소 감축 정책이 맞물리면서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미국이나 한국보다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약 25%로 알려졌으며, 비교적 더운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에어컨이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유럽에서는 여전히 사치품 또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시설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문제는 기존의 여름 기후를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와 건축물이 최근의 극단적인 폭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 자연환기에 의존한 유럽식 건축물은 과거에는 더위를 견디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열대야와 40도를 넘나드는 고온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폭염이 반복되면서 에어컨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프랑스와 북유럽에서는 중국산 에어컨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냉방용품과 휴대용 선풍기, 냉감 제품의 주문이 급증했다. 환경적 금기보다 당장의 생존과 건강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독일 선거판 흔드는 냉방정책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에어컨 보급 확대가 차기 대선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보수·극우 진영은 그동안 좌파 정치권이 에어컨을 이념적으로 금기시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연합은 공공시설과 노인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에어컨 보급을 확대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폭염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냉방시설 설치를 가로막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기후정책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무분별한 에어컨 보급이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을 증가시켜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도시 녹지 확대, 건물 단열 개선, 그늘막 설치, 공공 급수시설 확충, 태양광 발전과 연계한 친환경 냉방체계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 규제와 건축 기준 때문에 냉방시설 설치가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보수 진영은 기존의 기후정책을 ‘기후 이데올로기’라고 공격하고 있다. 녹색당은 에어컨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지만, 재생에너지와 연계하지 않은 무분별한 보급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쟁점은 에어컨을 설치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냉방을 시민의 기본적인 안전권으로 인정하되, 전력 효율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기후정책의 목표는 인내가 아니라 생명 보호

 

유럽의 에어컨 논쟁에는 미국 보수 진영까지 가세하고 있다. 미국 일부 언론과 경제계 인사들은 유럽의 낮은 에어컨 보급률이 과도한 규제와 현실을 외면한 친환경 정책의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현재 살아 있는 시민들을 치명적인 폭염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유럽에서는 미국이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국가라는 점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심화시킨 미국이 유럽의 환경정책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에어컨 논쟁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과 유럽의 정치·문화 갈등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폭염을 좌우 이념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고령자와 장애인, 저소득층, 야외노동자 등 취약계층에게 냉방시설은 정치적 상징이 아니라 생존 장비다. 병원과 학교, 요양시설, 대중교통, 공공임대주택 등에는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안전한 냉방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에어컨 사용을 무조건 억제하거나 반대로 제한 없이 확대하는 방식 모두 지속 가능한 해답은 아니다. 고효율 냉방기기 보급,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 연계, 건물 단열 개선, 지역 냉방 시스템, 가로수와 녹지 확대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책은 시민에게 더위를 참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에너지로도 누구나 안전하게 여름을 견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에어컨을 극우와 진보의 상징으로 나누는 순간, 정작 사라지는 것은 시민의 생명과 실용적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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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인천본부 기자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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