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量)을 좇다 망친 질(質), 샤인머스캣이 드러낸 농정 실패포도계의 에르메스에서 ‘물포도’ 논란까지, 무너진 시장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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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인머스켓 가격 폭락 누구책임(사진=ai생성) |
국내 시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때 2kg 한 상자에 3만~4만 원을 호가하던 샤인머스캣 가격은 최근 6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가격 하락의 직접적 원인은 공급 과잉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품질 저하다.
유통 구조는 포도의 맛보다 크기와 중량을 우선했다. 당도, 향, 식감보다 알의 크기와 송이 무게가 가격 결정의 핵심 기준이 되면서 농가들은 과다 착과와 조기 수확에 나섰다. 그 결과 샤인머스캣 특유의 망고 향과 아삭한 식감은 약해지고, 껍질만 질기고 맛은 밍밍한 이른바 ‘물포도’가 시장에 유통됐다. 소비자의 신뢰는 빠르게 무너졌다.
문제는 이를 농가 개인의 선택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소득 작물이라는 명분 아래 시설 지원과 재배 확대를 장려했지만, 품종 쏠림을 조정하거나 중장기 수급을 예측하는 역할에는 소홀했다. 신규 농가 유입은 늘었지만, 품질 관리 체계와 시장 안정 장치는 뒤따르지 못했다.
특히 생산량 증가가 예상되는 시점에 당도 하한선, 수확 시기 관리, 프리미엄 등급 기준, 출하 품질 인증 체계 등이 마련됐어야 했다. 그러나 농정 당국은 면적 확대와 생산량 증가라는 양적 지표에 집중했고, 시장 신뢰를 지탱할 질적 관리에는 사실상 실패했다.
샤인머스캣 사태는 한국 농정의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농산물 지원 정책은 더 이상 재배면적 확대와 시설 보조 중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품질 인증, 브랜드 관리, 수급 조절, 소비자 신뢰 회복을 중심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농산물 표준규격 역시 크기와 무게 위주의 낡은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도, 식감, 향, 숙도, 저장성 등 소비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품질 요소를 반영한 정교한 등급 체계가 필요하다. 고급 과일은 이름값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반복 구매를 가능하게 하는 맛과 신뢰가 뒷받침될 때만 시장에서 살아남는다.
일본의 실수로 얻은 기회는 한국 농가에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산업 전략이 될 수 없다. 품종 하나의 성공에 기대어 생산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제2, 제3의 샤인머스캣이 등장하더라도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샤인머스캣의 추락은 녹색 과일 하나의 몰락이 아니다. 양적 성장에 취해 질적 관리의 본질을 놓친 농정의 경고음이다. 농정 당국이 이 신호를 외면한다면, 한국 농업은 또 다른 고소득 작물의 이름 아래 같은 비극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